• 5장 끝없는 도전 ⑯  

     그 동안 태산은 김윤정에게 잠깐 맡겼다가 햄린 목사의 소개로 알게 된 필라델피아의 보이드 부인이 나서 주었다. 햄린 목사로부터 내 사정을 들은 보이드 부인이 보호자로 나서서 태산을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보육원에서 생활하도록 해 준 것이다.

    곤궁한 유학생 신분으로 기숙사에서 무료 숙식을 제공받는 내 입장에서 보면 고마운 일이었지만 만리타향까지 애비를 찾아온 여덟살짜리 태산은 그것이 서럽고 서러웠으리라.

    나는 태산을 보육원에 두고 오면서 눈물을 쏟았다.
    아마 내 일생에서 그날만큼 많이 운적도 없다. 워싱턴에서 필라델피아로 가는 동안에는 태산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참았지만 돌아오는 차안에서 내내 울었다.

    그리고 태산 어미를 원망했다. 태산을 던져 놓으면 저를 부를 줄로 알았단 말인가?
    그 어린 것이 이국땅에서 어떤 고초를 겪을지 생각지 못했단 말인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단 말인가? 민영환, 한규설 두 대신이 내 뒤를 봐준다는 것은 알고 있을테니 미국에서 하인 여럿을 부리며 떵떵거리고 사는 줄 아는가? 그리고 연로하신 아버님은 내 팽개칠 작정인가?

    내가 지아비, 애비 노릇을 못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죄인이다.
    그러나 만리타국에 여덟살짜리 아들을 이렇게 미끼처럼 던져 놓는 것이 아니다.
    나는 보육원에서 나하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매달리며 울던 태산을 떠올리면서 울고 또 울었다.

    「리, 시설이 좋은 곳이니 아이는 금방 적응을 할 것이네.」
    필라델피아에서 돌아온 내가 인사를 갔더니 햄린 목사가 말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곧 잊는다네. 그것으로 자위를 하게나.」
    「고맙습니다. 목사님.」

    햄린은 내 은인이다. 일요일이면 나에게 조선 실정과 동양 문화에 대한 강의를 시키고 성금을 모아 주었는데 사흘 동안 그릇 닦는 보수보다 많았다.

    내 안색을 살핀 햄린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주께서는 공평하시네. 시련을 주시면 꼭 그 댓가를 받게 될 것이네.」

    나는 아직도 햄린의 이 말을 기억하고 있다. 이 말은 내 머릿속에 깊게 박혀서 나에게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인생을 살도록 힘을 일으켜 주었다.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만이 역경을 헤치고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워싱턴에서 필라델피아는 먼 길이다. 거의 반나절을 차를 타야만 한다.
    태산이 수용된 보육원 웨스턴 홈(Western home)에 보이드 부인이 자주 들러 나에게 연락을 해주기로 했지만 나는 며칠간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시도 때도 없이 태산의 울음소리가 귀에 울려서 강의 시간에도 벌떡 일어나 강의실을 나올 때도 있었다.

    내가 두 번째로 필라델피아의 웨스턴 홈을 찾아갔을 때는 닷새가 지난 후였다.
    본래 열흘 후에 오기로 했던 것을 견디지 못하고 찾아간 것이다. 내 얼굴을 본 태산이 내달려 오면서 울음을 터뜨렸으므로 나는 이를 악물었다.

    태산을 부등켜안은 내가 마룻바닥에 함께 주저앉았더니 웨스턴 홈의 원장 머피부인이 말했다.
    「미스터 리, 처음에는 자주 오시는 것이 좋지 않습니다. 태산을 우리한테 맡겨주시고 다음에는 한달 후에 오시죠.」

    지난번에도 그 말을 들었지만 애비 심정이 어디 그런가? 내가 한성감옥서에 갇혀있을 때 어린 태산이 할아버지 등에 업혀 와서 나하고 놀다가 돌아갔다.

    지금 태산이 여덟살이지만 내가 감옥서에 5년 7개월 갇혔다가 석달만에 미국으로 왔으니 애비 낯을 본 적도 며칠뿐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