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人類(인류) 역사상 조직이 아닌 한 개인의 초인적 용기와 노력이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경우가 예수와 마틴 루터이다.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 대학 교수이던 루터가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항의하는 글을 쓴 1517년은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 기술이 퍼지고 있던 시기였다. 루터의 항의문은 신속하게 인쇄되어 독일과 유럽으로 퍼져갔다. 루터는 자신의 주장을 글로써 표현했고 이 글들은 역사상 최초의 대중 선전물이 되었다.
     
     루터는 라틴語 성경을 독일語로 번역하여 보통사람들도 읽을 수 있게 하였다. 교회와 신부들의 知的 독점이 붕괴되는 계기였다. 루터는 독일어 성경을 번역할 때 정확하면서도 직설적인 표현을 했다. 이때 쓰여진 낱말들과 文法이 독일어 발전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루터가 유럽에서 가장 거대한 권력을 행사하던 로마 교황청 및 신성로마제국의 칼 5세와 대결하여 이길 수 있었던 힘은, 그의 知的 능력과 용기, 이를 담을 수 있는 문장력과 이 문장력을 선전의 무기로 삼게 해준 인쇄술, 그리하여 형성된 與論(여론)의 힘이었다.
     
     그는 독일인답게 교회 음악을 重視(중시)하여 많은 찬송가를 작곡하였다. 교회 음악이 서양음악의 요람이 된 데는 루터의 영향이 크다.
     
     루터는 이렇게 말하였다.
     "세상을 바꾸고 다면 펜을 들어라, 그리고 써라!"
     
     "음악을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물로 알아주지 못하는 인간은 무지렁이와 같으며 인간으로 대접 받을 가치도 없다. 그런 사람은 당나귀의 울음소리나 돼지의 꿀꿀 거리는 소리만 듣게 해야 한다."
     
     그는 "맥주는 인간의 작품이고, 포도주는 神의 작품이다"는 말도 남겼다. 名言을 많이 남긴 루터는 주례사에서 써 먹을 만한 이런 말도 했다.
     
     "아내는 남편이 즐겁게 집으로 돌아오도록 해야 하고, 남편은 자신이 집을 떠날 때 아내가 아쉬워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좋은 결혼보다 더 사랑스럽고, 친근하며, 매력적인 관계, 結社(결사), 친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