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일전쟁이 일어나 다시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번지고, 일본이 패전국이 되면서 한반도는 8·15 해방을 맞았다. 그렇지만 곧 남북으로 분단되는 등 격동의 세월이 이어졌다. 이 격랑 속에서, 어린 시절 호랑이 이야기와 꿩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이 자라서 청년이 되었다.

    그 중의 한 청년은 신생 대한민국의 육군사관학교를 제7기로 졸업하여 1948년 11월 11일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육군 중위로 진급을 했다. 1949년 8월, 38선을 넘어 관대리(冠垈里)로 남침한 북한공산군과 격전을 벌일 때에는 소총중대장으로서 싸웠다. 그가 바로 나였다.

    1950년 3월 하순, 북한에서 약 500명의 무장특공게릴라부대가 인제를 출발하여 38선을 넘어, 홍천군 현리(縣里) 동쪽 산줄기를 타고 매봉(=응봉산)을 거쳐 흥정산(興亭山)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 부대의 사령관은 중공 제 8로군 출신의 조선족 김무헌(金武憲)이고, 참모장은 역시 중공 제 8로군 출신의 조선족 천석(千石)이었다. 둘은 모두 게릴라 전투 경험을 중국 본토에서 충분히 겪은바 있는 유능한 장교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게릴라 전술은 뛰어나게 돋보였다. 남한 육군 4개 대대가 이들을 완전 소탕하는 데는 1개월 이상이 걸렸다.

    우리들은 높은 산줄기를 타고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싸웠다. 4월 중순이 되니, 내려다보이는 산간 마을이나 산기슭에는 온갖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아름다운 봄의 평화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군인들이 있는 해발 1천~1천 200미터의 산줄기 일대에는 흰 눈이 30여 센티나 두텁게 쌓여있었다. 그리고 밤에 부는 바람은 차가웠다. 이런 속에서 군인들은 연일 전투에 임했다.

    ◆ 코주부 씨, 코로 꿩을 잡다

    4월 하순 어느 늦은 오후, 잔적(殘敵)이 예상되는 야간 진격로를 비밀 차단하기 위해, 우리 대대는 흥정산 정상으로 이동하라는 작전명령을 받고 즉시 행동을 개시했다. 우리가 있는 위치에서 조금만 가면 목적지가 나온다. 장병들은 한 줄로 늘어서서 경사가 완만한 능선을 타고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쌕’ 하고 자그마한 제트 전투기가 지나가듯, 어떤 물체가 내 철모 위를 스치며 우측에서 좌측으로 번개같이 지나갔다. 매(鷹) 였다. 동시에 들꿩 한마리가 내 군화 앞에 툭 떨어졌다. 꿩은 푸득거리지도 못하고 덜덜 떨고만 있었다.

  • ▲ 꿩 ⓒ 연합뉴스
    ▲ 꿩 ⓒ 연합뉴스

    나는 순간적으로, 매가 꿩을 채서 실신시킨 후 잘못하여 내 발 밑에 떨어뜨린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허리를 굽혀 꿩을 손으로 집어 올렸다. 꿩은 계속 경련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꿩의 목이 180도 돌아 주둥이가 등 방향으로 뒤틀려 있었다. 꿩을 지상에 세워놓는다면 주둥이가 하늘을 향하고 있는 셈이었다. 매가 꿩을 낚아채며 한 짓이었으리라. 그런데 바로 이때 사람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보니 내 앞에서 60미리 박격포 포탄을 짊어지고 종군하던 대한청년단원 한명이 쪼그리고 앉아서 코피를 쏟고 있었다.

    당시 각 군과 면에는, 군에 입대하지 않은 청년들로 대한청년단이 조직되어 있었다. 이들은 자기 거주지역 내에서 군 작전이 있을 때마다 동원되어 군의 실탄 운반, 식사 운반 등의 지원을 해주고 있었다. 코피를 쏟고 있는 청년은 흥천군 서석(瑞石)청년단의 일원으로 몸집도 꽤 크고 뚱뚱하며, 특히 코가 보통 사람의 2배 이상 컸다. 그리고 코의 끝부분이 불그스레  했다. 장병들은 그를 ‘코주부 씨’라고 불렀다. 매의 추격을 받으며 다급하게 지상 1미터 65센티 정도로 낮게 땅과 스칠듯 말듯 전속력으로 도망치던 그 꿩이 천만 뜻밖에도 걸어가는 코주부 씨의 코를 우측에서 머리로 들이받은 것이었다.

    순간 코주부 씨의 코가 터지며 피가 쏟아졌고, 꿩은 모가지가 뚝 부러지며 180도로 돌아 하늘을 향하면서 내 발 밑에 떨어진 것이다. 나는 위생병을 불러서 코주부 씨의 코피를 멈추게 했다. 나는 코주부 씨가 코로 꿩을 잡았으니 꿩의 소유권은 그에게 있다면서, 꿩을 먹고 쏟은 코피를 몸에서 재생산하라고 했다. 그러나 코주부 씨는 꿩을 손으로 먼저 주운 나에게 소유권이 있다면서 한사코 받지 않았다. 나는 연락병에게 꿩을 들고 다니게 했다.

    좀 걸어 나갔더니 대대장 박태운(朴泰云) 소령이 앉아 쉬고 있었다. 대대장은 꿩을 보자마자 “이 중위, 왜 쓸데없이 총을 쏴서 꿩을 잡나. 총을 쏘면 우리 위치가 적에게 발각되지 않나? 공비토벌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치를 숨기고 매복하는 거야. 쓸데없이 총 소리를 내면 되나” 하고 타이르는 말을 했다.

    내가 “대대장님, 총을 쏴서 잡지 않았습니다”면서 추가 설명을 하려는데, “아니, 총을 안쏘고 날짐승을 어떻게 잡아?”하고 물었다. 박소령은 나와 허물없이 지내는 분이었다.

    “대대장님, 이 꿩은 코로 잡았습니다.”
    “에끼 이 사람, 농담하나. 코로 꿩을 어떻게 잡나?”
    나는 정색을 하고 꿩 잡은 이야기를 소상히 말씀드렸다. 내 설명이 끝나자 박 소령은 웃으면서 “아니, 어디 꿩 좀 보자”하고 꿩을 받아들고 부러진 목을 살피더니 “야 참, 별의 별 희한한 일이 다 있구나. 코로 꿩을 잡다니, 이런 일은 몇 만년, 아니 몇 억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야. 이 중위, 그거 신문에 한번 내봐. 흥정산에서 서석 코주부 씨가 코로 꿩을 잡았다고! 하하,  참” 하고는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러나 높은 산 위에 신문기자는 없었고, 차일피일하다가 기사화하지 못한 채 그 일은 세월 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코로 잡은 꿩은 산 밑 마을에 있는 대대 취사장으로 내려가, 꿩고기 조림이 되어 다시 대대장에게로 올라왔다.

    대대장 박 소령은 맛있다면서 나보고 몇 점 집어먹으라고 했다. 나는 꿩고기를 싫어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먹지 않았다. 그 꿩이 숨을 거둘 때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눈으로 본 나는 도저히 꿩 고기에 수저를 갖다 댈 수가 없었다. 그 후 두 달이 되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나는 제 7연대 제 1중대장으로서 춘천전투·삼마치고개전투·신림고개전투 등을 무사히 끝냈다. 하지만 음성지구전투에서 적탄을 여러 군데 맞고 중상을 입어 청주도립병원을 거쳐, 부산에 있는 제 5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여러 군데 수술을 받았으나, 신기하게도 적탄은 모두 신체의 급소를 아슬아슬 빗겨나가 불구가 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때 낙동강 전선에서는 국가존망이 걸린 사생결단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낙동강 전선이 뚫리면 부산이 함락되는 것이다. 조바심이 난 나는 재수술한 환부에 붕대를 감은 채, 군의관 동의 없이 자진 퇴원하여 일선을 달려가서 제 7연대 제 1중대장에 복귀했다.

     

  • ▲ 꿩 ⓒ 연합뉴스

    <6.25와 베트남전 두 死線을 넘다>

    [도서 출판 기파랑]

    주소 : 서울 종로구 동숭동 1-49 동숭빌딩 301호
    전화 : 02-763-8996 (편집부)
    홈페이지 : http://www.guiparang.com/
    E-mail : info@guipar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