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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할아버지들이 일고여덟 살 때쯤의 이야기라니까 역산을 해서 올라가면, 아마도 조선조 수난의 임금님이신 제26대 고종 10년쯤의 일일 것으로 추산된다.
◆ 닭이 품은 꿩알, '꿩 병아리' 꾸베이의 탄생
당시 20세가 채 안된 동네 젊은이가 어느 봄 날, 나무를 하러 산에 갔다가 꿩알 두개를 발견했다. 꿩알을 가지고 집에와서 자세히 보니, 가지고 올 때 실수하여 한 알은 금이 가있고 한 알은 온전했다. 젊은이는 금이 간 꿩알은 먹어치우고, 온전한 꿩알은 닭이 알을 품을때 달걀과 함께 품게하였다. 병아리가 부화할 때, 꿩알도 부화되어 꿩 병아리인 꾸베이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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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꿩 ⓒ 연합뉴스
꾸베이는 어미 닭을 어미로 알고 따라다니며 병아리들과 함께 먹고 자랐으며, 어미 닭도 꾸베이를 자기 새끼로 알고 잘 보살펴 주었다. 그러나 커갈수록 꾸베이는 야생의 본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미 닭이 끌고 다니는 병아리 무리로부터 가끔씩 이탈하여 외톨이가 되어 홀로 고독을 즐겼다. 그러다가 어미 닭이 자꾸 부르면, 뺀들뺀들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따라가곤 하였다.
병아리들이 커서 어미닭의 품을 떠날 때, 꾸베이도 어느덧 장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후에 그 꿩은 훨훨 날아서 산으로 가버렸다. 하지만 장끼는 어릴때의 고향을 잊지 못하는 듯, 태어나 놀던 옛집을 자주 찾아와서 놀고갔다. 장끼가 한동안 오지 않으면, 길러준 젊은이는 꿩이 혹시라도 다른 짐승들에게 잡혀먹히지나 않았나 하고 걱정을 했다.
그러다가 꿩이 찾아오면 젊은이는 콩을 뿌려주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꿩이오는 시간은 대개 해가 지기 두 시간 쯤 전이었다. 하늘이 드높은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되면서, 꿩은 당당하고 힘센 장끼로 성장했다. 서북풍이 매섭게 몰아치고 눈이 내리면서 동네 사람들은 감기에 걸리기 시작했다. 젊은이의 어머니도 감기 몸살을 심하게 앓고 겨우 막 일어나셨다.
◆ 정든 고향집 찾은 꿩, 저녁 밥상에 오르다
이무렵, 장끼는 못된 짓을 하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같이 오후 늦게 고향집에 내려와서 집에서 키우는 큰 수탉과 싸움을 하고 산으로 날아가곤 했던 것이다. 장끼와 수탉의 싸움에서 수탉은 벼슬과 목 언저리와 날갯죽지를 심하게 쪼여 유혈이 낭자했다. 며칠만 더 싸우면 수탉이 죽을 것만 같았다.
그 수탉은 새벽마다 활개를치며 길고 고운 목소리로 힘차게 시간을 알려주는 소문난 수탉이며, 젊은이 부모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수탉이 장끼에게 쪼여 죽는 것은 시간 문제인것 같았다. 젊은이의 부모님은 젊은이에게 장끼 잡을 궁리를 빨리 하라고 말씀하셨다.
다음날, 젊은이는 수탉의 다리를 끈으로 붙들어 매어 닭장 속에 가두어 넣고 닭장 문을 열어 놓았다. 오후 늦게 고향집을 찾아 온 장끼는 젊은 주인이 뿌려놓은 콩알을 쪼아먹고 두리번 두리번 수탉을 찾더니 수탉이 있는 닭장 안으로 쏜살같이 쳐들어갔다. 수탉과의 싸움에 여념이 없을 때, 젊은이가 닭장 안의 꿩을 사로잡았다. 그날 저녁 밥상에는 쇠약해진 초로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젊은 효자가 바치는 보신용 꿩고기가 고소한 고기냄새를 풍기며 김을 모락모락 피워올리고 있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아이들은 “꿩이 불쌍해요”라고 했다. 어른은 새벽을 알려주는 수탉이 죽으면 큰일이므로 수탉을 쪼아 죽이려는 장끼를 없애버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사람이 잡아먹지 않아도, 산에 사는 독수리와 매같은 날짐승이나 여우, 살쾡이, 족제비, 늑대같은 네발가진 동물들에 의해 언젠가는 잡아먹힌다고 했다. 꿩이란 날짐승은 제 명을 다 살지 못하고, 결국은 사람이나 짐승의 먹이가 되기위해 태어난 것이니 사람이 잡아먹는다 해서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하기야 장끼도 생명을 스스로 단축시킨 것이었다. 제까짓 것이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기에 힘자랑을 하며 수탉을 쪼아대며 그런 소동을 일으켰으니, 확실히 잘못을 저지른 셈이었다. 그러나 그렇다 치더라도 그리운 정든 고향집을 찾아왔다가 잡혀죽어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다니, 꿩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이러한 ‘말 간다’ 시골 문화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구문명의 물결이 서서히 두메산골에도 스며들기 시작했다. 금천군 우봉면 우봉리 고우봉동 30여호에서 어린이 세명이 고개넘어 약 5킬로미터 떨어진, 개교한지 얼마 안되는 보통학교 1학년에 입학한 것은 1932년 4월의 일이었다. 1937년에는 동네에서 한분이 <동아일보>를 우편으로 배달받아 구독하는 경이로운 개화의 선구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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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베트남전 두 死線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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