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황제의 밀사 (27)

     「어느 대학에 입학하실 계획입니까?」
    아카마쓰가 물었으므로 나는 먼저 김윤정을 보고나서 대답했다.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장학생으로 추천 해드릴 수가 있는데요.」
    하고 아카마쓰가 정색하고 말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면 학비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사양하겠습니다.」
    그러면서도 내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런 말을 조선공사관 쪽에서 들었다면 오죽 기뻤을 것인가? 국력(國力)의 차이 때문이라고 자위를 했지만 답답한 것 같다.

    그때 김윤정이 말했다.
    「유학을 목적으로 오셨으니 아카마쓰 영사께서 도와주신다면 영광이지요.」

    김윤정은 내가 유학을 목적으로 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았지만 내 의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다 말해놓고 시치미를 떼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잠깐 인사만 하고 갈 것이라던 아카마쓰는 김윤정이 권하는 바람에 주저앉았다. 나도 가만있을 수가 없어서 동석을 청했으므로 셋은 같이 식사를 했다.

    「아십니까?」
    문득 씹던 것을 삼킨 아카마쓰가 유창한 조선말로 운을 떼었다. 우리 둘의 시선을 받은 아카마쓰가 말을 잇는다.
    「일본국 천황폐하께서도 백제계이십니다. 우리 조선인의 핏줄이란 말씀입니다.」

    나도 들은 적이 있지만 감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카마쓰의 얼굴은 상기되었다.
    「그것을 전 일본인이 압니다. 알면서도 공경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일본과 조선인이 하나로 뭉칠 수가 있다는 증거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김윤정이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번에는 김윤정이 말을 잇는다.
    「백제 유민 수십만 명이 일본에 뿌리를 내린 후에 아마 지금은 수백 만으로 늘어났을 것입니다. 조선과 일본은 한 핏줄이나 같지요.」

    그때 나는 회중시계를 꺼내보았다. 김윤정에 대한 살의(殺意)가 치솟았기 때문인 것 같다. 황제의 밀서를 품고 온 내 앞에서까지 이런 행각을 벌이는 조선 관리는 처단해야 될 것이다.

    회중시계는 8시 31분을 가리키고 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 선 내가 말했더니 아카마쓰가 머리를 끄덕이며 웃었다.

    방을 나온 나는 곧장 화장실 옆쪽 비상문을 열었다. 그러자 실외 계단이 드러났고 찬바람이 피부에 닿자 정신이 났다. 내가 계단을 반쯤 내려갔을 때였다. 계단의 꺾어진 모퉁이 어둠속에서 조선말이 들렸다.

    「나으리, 방으로 돌아가시지요.」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내는 김일국이다. 다가선 김일국이 서두르듯 말했다.
    「왕자께서 오늘 작전은 보류시키셨습니다. 왜냐하면,」
    김일국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었다.
    「조금 전에 아카마쓰가 일층으로 내려오더니 오늘 작전을 취소시키고 올라갔다고 합니다.」
    「오늘 작전이라니?」

    갈라진 목소리로 내가 묻자 김일국은 어둠속에서 번들거리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으리를 암살하는 작전인 것 같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지만 아카마쓰의 수행원 중 하나가 저희들 정보원입니다. 그자한테서 들었으니 틀림없습니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10분쯤 전에 아카마쓰가 수행원을 만나고 오겠다면서 잠깐 자리를 비운 적이 있는 것이다. 그때 작전 중지 명령을 내린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