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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궐선거일에 김민성은 투표장에 나가 자유당 후보를 찍었다.
자유당 후보의 학력이나 경력 등을 투표장 옆의 벽보를 보고 나서야 알았으니 정책 따위는 관심도 없다. 오직 아버지를 믿고 찍어준 것이다.투표를 하면서 이것은 아버지를 존경하기 때문은 아니라고 자위했다.
비약해서 말한다면 밥 얻어먹고 찍어주는 경우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부끄럽거나 꺼림직하지도 않았다.
다만 아버지는 오늘밤 행복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투표장에 가서 자유당 후보를 찍었다고 말해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김민성이 양천구 목동 도서관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오후 3시쯤 되었다.
도서관 안을 둘러보던 김민성이 곧 다시 발을 떼어 구석 쪽 자리로 다가가 섰다.「야.」
김민성이 낮게 부르자 머리를 돌린 박재희와 시선이 마주쳤다.놀란 박재희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굳어졌다가 곧 붉게 달아올랐다. 카멜레온 같다.
박재희가 몸을 굳히고만 있었으므로 김민성이 이맛살을 찌푸렸다.「시발, 그러고만 있을껴?」
하고는 몸을 돌려 열람실을 나왔다.김민성이 로비 끝쪽의 유리벽 앞에 서있었더니 뒤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서 박재희가 다가와 옆쪽에 섰다. 이제 둘은 나란히 서서 도서관 정원을 본다. 한낮의 햇살이 깔린 정원은 텅 비었다.
그때 김민성이 앞을 향한 채로 물었다.
「그 시키 연장 크디?」
「아니.」박재희도 앞을 향한 채로 대답했다. 둘의 표정은 담담해서 망치가 크냐 적냐를 묻는 것 같다.
다시 김민성이 묻는다.
「기술은 어뗘? 좋았어?」
「아니.」
「오래 해주디?」
「아니.」
「몇번 쌌니?」
「안쌌어.」그리고는 둘이 약속이나 한 듯이 머리를 돌려 서로를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김민성이 눈을 부릅떴다.
그 순간 김민성은 박재희의 콧구멍이 희미하게 벌름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부분은 굳어져 있다.김민성이 잇사이로 말했다.
「웃지 마, 이년아.」그 순간 박재희가 팍 웃었다. 얼굴이 갑자기 펴지는 것 같더니 입이 딱 벌어지면서 이가 다 드러났다. 그리고는 짧고 크게 웃었다.
그러자 김민성이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리고는 긴 숨을 뱉는다.
김민성의 얼굴은 아직도 굳어져 있다.「내가 계속해서 그걸 물을지 몰라.」
김민성이 말하자 박재희는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짜증 안내고 다 대답 해줄게.」
「내가 싫으면 걍 떠나도 돼.」
「마음에도 없는 소리 마.」그러더니 박재희가 앞으로 다가와 김민성의 목을 두 팔로 감아 안는다.
도서관 로비에는 서너명의 학생이 있었지만 박재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미안해 오빠.」
박재희가 얼굴을 김민성의 가슴에 묻으면서 말했다.
「헤어지고 나서 오빠가 소중한 사람이란 걸 느꼈어.」
「문장 쓰지 말고 그시키 연장 크기는 얼마나 돼?」
「오빠의 절반 정도 밖에 안돼.」김민성은 그때서야 박재희의 허리를 두 팔로 감아 안는다.
그렇게 스물다섯, 스물 둘의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스토리 1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