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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선 김민성이 안방에서 울리는 아버지 목소리를 듣더니 벽시계를 보았다.
오후 5시 반, 이 시간에 집에 들어온다는 것은 일이 없다는 의미다. 따라서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오늘도 아버지는 어머니한테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는데 시장에서 사온 돼지고기에 비계살이 너무 적어서 고기맛이 안난다는 것이 쟁점이었다. 그런데 발소리를 죽이고 방으로 들어갔지만 아버지가 눈치를 챈 것 같다.
「야, 민성아. 너 일루와봐.」
아버지가 버럭 소리쳤으므로 김민성이 잇사이로 욕을 했다. 물론 아버지한테가 아니라 혼잣욕이다.이맛살을 찌푸린 채 김민성이 안방으로 들어갔더니 어머니가 풀려난 듯 눈을 끔벅여 보이고는 엇갈려 나온다. 어머니 기분은 나쁜 것 같지가 않다. 다른 때 같으면 애를 뭐하러 부르냐고 하면서 내보냈을 테니까.
아버지는 어머니하고 돼지고기 안주로 소주를 마시고 있었던 것 같다.
김민성이 술상 옆쪽에 앉았더니 아버지가 불쑥 술잔을 내밀었다.「아나, 받어라.」
「아, 나 공부 해야돼.」
했지만 김홍기는 손을 거두지 않고 눈을 부릅떴다.「받어, 인마. 버르장머리 없이.」
「에이.」
하면서 술잔을 받은 김민성에게 김홍기가 소주를 따라주며 물었다.
「야, 다음주에 우리 동네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 허는거 알지?」
「모르는데.」금방 대답한 김민성이 술잔의 술을 한입에 삼켰다. 물론 머리를 김홍기의 반대쪽으로 돌렸다. 군에 가기 전에는 김홍기 앞에서 똑바로 턱을 치켜들고 마셨었다. 제대하고 나서 이렇게 했더니 김홍기가 그렇게 대견해 하는건 처음 보았다.
김홍기가 은근한 시선으로 김민성을 보았다.
「야, 이번 선거에 투표해라. 자유당 후보가 믿을만 하니까 내 말을 믿고...」
「싫어.」일언지하에 말을 자른 김민성이 힐끗 김홍기를 보았다.
「나도 이젠 스물다섯이야. 어린애 취급 말라구. 다 내가 알아서 선택할테니까.」
「야, 이새끼야.」눈을 부릅뜬 김홍기가 말을 잇는다.
「스물다섯 좋아허네. 상놈의 새끼같으니. 니가 지금까지 세금 한푼 낸 적 있냐? 무슨 권리로 누굴 찍는단 말여? 이 빌어먹는 새끼야. 니가 세금 낼 때까지 널 키워준 애비가 시키는대로 찍어. 임마.」
「아, 못해.」지난번 대선 때는 김홍기가 돈 10만원을 용돈 쓰라고 주면서 자유당 후보를 찍으라고 했던 것이다. 그때는 용돈이 궁해서 받았지만 투표는 하지 않았다. 만일 투표를 했다면 민족당 후보를 찍었을 것이다.
김홍기가 김민성의 빈 잔에 소주를 채워주면서 말을 잇는다. 소주를 한병 쯤 마신 김홍기의 코끝이 붉다.
「내 자식도 맘대로 못하는 놈이 무슨 사업을 헌다고. 에라, 이 새끼야. 니 맘대로 혀라.」김홍기는 뒤끝도 없지만 말주변도 부족하다. 그래서 꼭 이런 식으로 끝난다. 김민성이 술 잔을 집으면서 문득 아버지가 화를 낼 만 하다는 생각을 했다. 뼈 빠지게 일해서 벌어 먹이는 아버지하고 자신이 똑같은 한 표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거지도, 도둑놈도, 사기꾼도 한 표다. 나라는 세금으로 운영되는데 아버지가 열이 날 만 했다.
그때 아버지가 한모금 술을 삼키더니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어, 거참. 손님 줄어서 환장 허겄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