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월사태가 이렇게 악화되자 주월 한국대사관은 본국정부의 승인을 받아 대사관 내에 재월한국인 철수본부를 설치했다. 이 철수본부는 총지휘관인 대사를 보필하여 철수계획을 작성하고, 이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기구였다. 철수 본부장에는 내가 임명되었다.
우리 철수본부가 철수시킬 재월한국인 수는 외교관 21명, 외교관가족 59명, 농업사절단 20명, 의료사절단 21명, 수자원사절단 4명, 민간인 1천 9명으로 합계 1천 134명이었다. 재월한국인 철수계획은 이들을 단계적으로 각종 수송수단을 이용하여 철수하는 것으로 작성되었다. 이 철수계획에 따라 나를 제외한 우리가족은 4월 6일 오전에 민간 항공기를 타고 출국하게 되었다.
-
- ▲ 베트남 메콩강변
4월 5일 저녁 식사 후, 아내가 무슨 예감이 들었는지 나에게 말했다.
“당신은 너무 겁이 없어 걱정이에요. 당신 혼자만 남겨놓고 떠나려니 불안해요. 모든 것을 조심해서 하세요. 용감한 것이 전부는 아니에요. 용감한 행동도 좋지만 신중하게 생각해서 하세요. 당신은 혼자 몸이 아니에요. 당신 옆에는 아내와 네 명의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마세요.”
잠시 헤어지는 마당에 왜 그런 불길한 소리를 하느냐고 나는 언성을 높였다. 4월 6일 아침, 사이공 탄산눌 국제공항을 향하여 집을 떠나기 직전에 아내가 또 충고의 말을 했다.
“당신은 눈이 작아서 그런지 겁이 너무 없어요. 툭하면 나라위해 희생하겠다고 하는데, 여기서 죽는 것은 개죽음이에요. 나라 위해 죽는 것도 값있는 장소와 값있는 데라야 해요. 당신을 여기 남겨놓고 가는 것이 강가에 어린애를 혼자 놔두고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교민들 철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아요. 그러나 쓸데없이 마지막까지 남아서 만용을 부리다가 희생이 되어서는 안돼요. 여기가 죽자살자 결판낼 장소가 아니에요. 당신은 적절한 시기에 꼭 나와야 해요. 명심하세요.”
정말 쓸데없는 잔소리를 늘어놓는다고 나는 어젯밤보다도 더 언성을 높이며 야단을 쳤다. 옆에서 열 살 먹은 막내아들이 부모의 언쟁을 새까만 눈으로 바라보며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내는 나에게 항상 청렴결백하고 성실하며 자유조국에 충성을 다하라고 했다. 그러나 남편의 저돌적 용맹에는 제동을 걸며 나섰다. 공항에 도착해보니, 월남을 떠나는 피난민 인파들로 붐비고 있었다. 부모가 말다툼 하는 것을 옆에서 시종 지켜본 막내는 내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언제 비행기 타고 우리한테 오세요?”
“응, 아버지는 아마 스무날쯤 있다가 너 있는데로 갈거야”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막내는 미국정부가 미국군의 월남참전을 발표하여 사이공 시내가 발칵 뒤집혔던 1965년2월3일, 사이공 시환딘풍가에 있는 성바오로 병원에서 출생했다. 이제 미국이 손을 떼고 월남에서 물러가는 시기에, 이 아이는 사이공을 떠나는 것이다. 묘한 일치였다. 막내아들은 민항기 탑승을 위해 출구를 나가면서 여러 번 뒤를 돌아보았다.
4월 17일, 월남의 인접국 캄보디아에는 공산군이 프놈펜을 점령함으로써 자유 캄보디아가 패망했다. 이때 캄보디아의 김세원(金世源)대사는 한국인들을 미국 헬리콥터로 모두 철수시키고, 마지막으로 주 캄보디아 미국대사와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태국으로 철수함으로써 그곳에서의 철수작전을 성공리에 끝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
<6.25와 베트남전 두 死線을 넘다>
[도서 출판 기파랑]
주소 : 서울 종로구 동숭동 1-49 동숭빌딩 301호
전화 : 02-763-8996 (편집부)
홈페이지 : http://www.guiparang.com/
E-mail : info@guipar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