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황제의 밀사 ⑱ 

     다음 날 오전 나는 미션하우스에서 장을호(張乙浩)라는 사내를 만났다. 큰 키에 멀끔한 용모를 지닌 40대쯤의 사내였는데 마당에 서있던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청했던 것이다.

    「난 조선독립당 부당수(副党首) 장을호라고 합니다.」
    사내가 내민 명함을 받은 내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전 우남이라고 합니다.」

    내 본명 대신으로 호를 말한 것은 어제 신흥우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황제의 밀서를 품고 나왔다는 소문이 났을지도 모르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중혁은 제 이름을 말했는데 인사를 마친 사내가 묻는다.
    「미국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유학 왔습니다.」

    눈치 빠른 이중혁이 대답하자 사내가 머리를 끄덕였다. 얼굴에는 부드러운 웃음기가 지워지지 않는다. 사내가 다시 묻는다.
    「오신 지 얼마나 되십니까?」
    「닷새쯤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대답했더니 사내가 헛기침을 했다.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미국 땅의 조선 동포들을 등쳐먹는 매국노, 악질 사기꾼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각별히 조심하셔야 될 것이오.」
    「충고, 감사합니다.」

    내가 머리까지 숙였더니 사내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우리 조선독립당 당수는 한영복 선생으로 지난번 일본놈들이 국모를 시해했을 때 경기도 광주에서 의병장을 지내셨던 분이시오.」
    「아, 그러십니까?」
    「나도 의병 부대장(副隊將)으로 한영복 대장을 모시고 일본군과 싸웠습니다.」
    「몰라 뵈었습니다.」
    「한영복 당수님과 나는 고종 황제 폐하로부터 각각 표창을 받고 친히 내리신 어주(御酒)를 마시는 광영을 입었소.」

    기가 막힌 내가 입을 다물었더니 사내는 말을 잇는다.
    「조선독립당은 황제의 밀명을 받아 설립된 단체요. 귀공께서 조선독립당에 가입하신다면 황제 폐하의 신하가 되는 것이나 같소.」

    그때 이중혁이 헛기침을 하고 나서려는 눈치가 보였으므로 내가 서둘러 사내에게 물었다.
    「가입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사내가 어깨를 폈다.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그리고는 힘주어 말한다.
    「폐하의 신하가 되시려면 입회비가 필요합니다. 각각 20불씩 독립당 후원비를 내셔야 되오.」
    「......」
    「그러면 황제께서 친히 보내신 독립당원증이 옵니다. 그것은 조선 땅에 돌아가면 7품 벼슬을 인정받게 된다는 증표나 같습니다.」
    「50불씩 내면 어떻습니까?」

    내가 물었더니 사내는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다가 숨구멍으로 잘못 들어가 재채기를 세 번이나 했다. 겨우 숨을 돌린 사내가 붉어진 얼굴로 나를 보았다.

    「폐하께서 틀림없이 정5품 벼슬을 보장한다는 증서를 내주실 것이오. 한달이면 이곳에 닿습니다.」

    그때 뒤쪽에서 벽력같은 외침이 들렸다.
    「네 이놈! 내가 학교 간 사이에 또 쥐새끼처럼 숨어들었구나!」

    신흥우다. 옆쪽 나뭇사이로 나타난 신흥우가 다시 소리쳤다.
    「이 도적놈! 내가 오늘은 네놈을 경찰에 넘길 것이다.」

    그때 부당수, 부대장이 몸을 돌려 뛰었다. 도망질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