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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당장 죽더라도, '자유'를 향한 발걸음 멈추지 않으리
지루한 비판회가 끝나고 밤 9시 30분경 내 신병은 검찰로 넘겨졌다. 모두들 웅성거리며 서류들을 책보자기에 싸거나 가방에 집어넣고 있었다. 나는 옆에 있는 김검사의 오른팔을 두손으로 붙들고 허리를 90도쯤 깊게 굽혀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시늉을 하면서, 문을 가로막고 있는 보안대원을 곁눈으로 보았다. 그는 오랜시간의 보초근무가 고단했는지 피곤한 자세를 취하고 한눈을 팔고 있었다.
바로 이때라고 판단한 나는 김 검사의 팔을 잡아당기는 척하다가 그 팔을 탁 놓고, 총알같이 뛰어서 보안대원을 떼밀어 버리고 문을 나와 비 내리는 칠흑 같은 어둠속으로 달아났다. 결사적이었다. 보안대원이 쏘는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유세계를 향하여 한발짝이라도 달리고 싶은 욕구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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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무장지대 내 판문점 남측에서 바라본 북한의 선전마을 ⓒ 연합뉴스
전속력으로 800미터쯤 달아나다보니 발이 휘청했다. 그와 동시에 둥근 것이 두 팔에 안겼다. 공동묘지의 무덤이었다. 때를 같이하며 금천내무서의 사이렌이 열 번 금천의 밤거리를 흔들었다. 보안대원·민청대원·공산당원들을 긴급 소집하는 비상 사이렌이었다. 다급해진 나는 여우가 파먹은 무덤이 있으면 그 굴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려고 이리저리 뛰며 무덤을 더듬거려 보았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둥근 무덤들은 하나같이 잔디가 덮여있었고, 여우가 뚫은 무덤은 없었다.
다음순간 머릿속으로 또 하나의 공포가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비록 여우가 파헤친 무덤속에 피신한다 하더라도 추격해오는 자들이 플래시를 들고 비 내린 땅 위에 남겨진 내 발자국을 따라 이 공동묘지로 온다면, 꼼짝 못하고 여우가 파놓은 무덤 속에서 그들에게 붙들리고 말것 이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무덤을 버리고 산으로 뛰어 올라갔다. 산을 넘고 넘으니, 박연폭포에서 흘러내리는 예성강의 지류가 앞을 가로막았다. 날은 맑아오고 있었다. 장마철이라 수량이 많은데다가 더욱이 7, 8시간 폭우가 쏟아져서 물은 평상시보다 엄청나게 불어있었다. 물이 얕은 곳에는 여기저기 보안대원이나 민청대원들로 추정되는 검은 그림자들이 중얼거리며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피해 깊은 곳으로 건너려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쪽 산기슭을 불과 10미터도 안남겨 놓고 물의 깊이는 발돋움을 해도 코 위에 이르렀다. 나는 옷을 입고 구두를 신은 채 물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 이럴 수가! 전혀 수영이 되질 않았다. 허우적 거리다가 일어서 보니 물의 깊이는 내 키를 넘었다. 큰일 났구나, 죽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돌발적인 위기의식과 함께, 나는 방향을 반대로 틀어 온 힘을 다하여 앞으로 허우적거렸다. 기진맥진하여 바닥에 발을 딛고 서보니, 물이 턱밑으로 찰랑거려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물속에서 물가로 되돌아 나온 나는, 얕은 곳을 찾아가 보안대원과 민청원들의 눈을 피해가며 개울을 건너서 제석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 “여기 반동분자가 왔다가지 않았습니까?”쏟아지던 굵은 비가 가랑비로 바뀌고 날은 하얗게 밝아왔다. 제석산을 10분의 2쯤 올라가니 가랑비마저 멎었다. 제석산은 산림이 울창해서 숨어 다니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숲속에서 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단잠을 몇 시간 자고 일어나니 점심때가 넘은것 같았다.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으며, 제석산 꼭대기에 올라간 것이 엷은 구름속의 태양의 위치로 보아 오후 두시쯤 이었다. 여기에는 제석들이 여러개 세워져 있고, 멀리 떨어진 곳에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나는 38선으로 가는 정확한 길을 알아보기 위해서 그 집으로 조심조심 접근해 갔다.
다행히 보안대원이나 민청맹원은 없었고, 40대 후반의 아주머니 한 분이 있었다. 나는 38선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비에 맞아 초췌하고 창백한 얼굴의 젊은이 모습에 그 아주머니는 깊은 동정을 하면서, 만약 어머니가 이런 아들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가슴 아프겠냐고 말했다. 어머니는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고 했더니, 아주머니는 나를 더욱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38선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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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군 기관지 '조선인민군'에 게재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군복 입은 동상 ⓒ 연합뉴스
아주머니와 작별인사를 나눈 후 산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한 지 30초쯤 되었을까? 어느 방향으로 부터 나타났는지 추격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산위에서 들려오더니 발자국 소리가 내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놀라 산길 왼쪽으로 몸을 날려 숲속으로 들어가자마자 길에서 5미터쯤 떨어진 약간 움푹 파인 곳에 바짝 엎드렸다.
그들이 내 옆을 지나갈 때 얼핏 보니, 총을 둘러멘 자가 두명이고 몽둥이를 가진 자가 대 여섯명 되었다. 나는 그들의 방향 반대쪽 풀을 조용히 뜯어서 내몸 위에 얹어 놓으며 숨을 죽였다. 보안대원들과 민청맹원들은 내가 방금 떠난 그집으로 가서 큰소리로 아주머니에게 묻고 있었다.
“여기 반동분자가 왔다가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반동분자가 입은 옷을 설명했다. 아주머니의 말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으나 추격자들의 큰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옛! 왔다갔습니까. 오늘 몇 시쯤 이에요?”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제 끝장이구나 싶어 이판사판 일어서서 뛸까 하는 망설임도 들었다. 하지만 이미 비는 멎고 약간의 햇빛까지 비치는데다가, 밑에 있는 추격자들의 눈에 내가 있는 곳이 훤히 올려다 보일 것이었다. 게다가 직선거리로 불과 30미터 정도 밖에 안 되는 곳이어서 일어났다가는 총에 맞아 죽거나 붙들릴 것이 뻔했다. 나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이번에도 아주머니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으나 추격자들의 큰소리가 들려왔다.
“서너 시간 전이라고요? 아, 그럼 벌써 38선까지 거의 다 갔겠네.”
추격자는 실망어린 혼잣말을 했다. 그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낮에 움직이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저녁이 되어서야 일어나 남쪽으로 달렸다. 비는 좍좍 내리다가는 한참 만에 멎고, 얼마 있다가는 또다시 내리다가 그치곤 하는 단속(斷續)의 순환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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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베트남전 두 死線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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