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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가문이 좋은 양반의 집안에서 태어나기는 했으나 경제적으로는 몰락한 가난한 농부의 딸이었다. 또한 시집온 집도 마찬가지였다. 한때는 내로라하는 양반집안이었으나 경제적으로도, 관직신분으로도 크게 기울어져 시아버지는 겨우 조선조 말단 공무원인 풍헌(風憲, 면장)을 하고있는 사양족 집안이었다.
조선조 말기 시골 부인들의 글공부가 일반적으로 그러했듯이, 어머니도 한글로 쓴 이야기 책을 읽을 수 있는 정도의 문자 해독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보통 키에 얼굴이 아주 희어서 동네에서는 미인으로 꼽혔다. 현명하다고 알려져 이웃 아낙네들이 근심거리가 생기면 찾아와서 의논하고 돌아가는 것을 여러번 봤다.
하지만 어머니는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슬픈 여인이기도 했다. 나는 가끔 어머니가 눈물을 닦으시는 것을 보았다. 잃은 자식을 그리워 하는 눈물이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두 명의 형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큰형이 여섯살, 작은형이 네살때 홍역을 앓다가 며칠 간격을 두고 모두 저세상으로 떠났다고 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둘다 잘생기고 착하고 현명해서 부모뿐만 아니라 동네사람들로부터 귀염과 사랑을 받고있었다고 한다. 짧은 생애를 보내고 이미 가버린 가엾은 그들에게 못 다한 사랑을 나에게 쏟아 붓는 것일까, 나에 대한 사랑은 지극하였다.
그러나 맹목적인 사랑은 아니었다. 어느 날 나는 옷 투정을 심하게 하다가 버릇을 고치려는 아버지의 회초리를 맞았다. 이때 어머니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계시다가 나중에 가서야 회초리 자국을 어루만져 주셨다.
개화기 였다고는 해도 그 당시 두메산골은 서구문명의 불모지대였다. 내가 살던 금천군 현내면에서는 학교라는것이 하나도 없었다. 한문을 가르치는 사랑방 서당이 몇 개 있을 뿐, 보통학교에 다니려면 이웃 백마면으로 가야했다.
이런저런 이유때문에 우리 우봉리에서는 보통학교 다니는 학생이 한명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만 여섯살때 백마 보통학교 1학년에 입학함으로써 이 신화는 깨졌다. 그 학교의 1학년 신입생들의 평균연령은 열살쯤 되었다. 나는 제일 나이 어린 꼬마 학생으로서, 나보다 10개월쯤 먼저 태어난 백마면장의 딸과 교실 제일 앞 줄 책상에 앉아 학교공부를 시작했다.
우리집에서 학교까지는 5킬로미터가 조금 넘었으며, 도중에 꽤 높고 가파른 고개가 있었다. 만 여섯 살의 어린이에게는 아주 힘겨운 통학길이었다. 하교할 때는 어머니가 집에서 약 1킬로미터 전쯤 마중을 나와 지친 나를 업고 집으로 갔다. 나는 어머니의 등에서 따뜻하고 자비로운 모정을 느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집에와서 어머니가 나를 내려놓을때 단잠을 깨곤 했다.
그렇지만 이 같은 달콤한 나날은 오래가지 않았다. 여러달 전에 해산을 하시고 산후조리 잘못으로 얻은 병환이 악화됨에 따라, 늦가을이 되자 나를 업을수 있는 힘이 어머니에게는 없어지고 말았다. 이때부터는 마중나왔다가 내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것이 고작이었다. 가끔은 지팡이를 짚고 마중을 나오시기도 했다.
내 손을 잡으신 어머니의 손에서도 나는 따뜻한 사랑을 느꼈다.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의 병환이 하루빨리 나아지기를 빌었다. 그러나 내가 2학년 겨울 방학때인 음력 11월 26일 아침, 어머니는 어젯밤에는 소화가 잘되었다고 이불을 걷고 일어나 앉으셔서 조반을 드셨다. 그러나 점심나절부터 병세가 급전직하로 악화되었다.
이날 오후, 철 없는 내가 밖에서 동네아이들과 함께 뛰어놀고 있는데 누님이 나를 데리러 왔다. 어머니가 나를 찾고 계신다고 했다. 약 200미터 떨어진 집으로 가서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머니는 안방 아랫목에 반듯이 누워 이불을 가슴까지 덮고 계셨다. 어머니가 손짓으로 나를 머리 맡으로 부르셨다. 나는 어머니 왼쪽 어깨에 바짝 다가앉았다. 어머니는 어린, 그러나 맏아들인 내 고사리 손을 잡으셨다.
“공부 잘해서, 곧고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가쁜 숨결 속에서도 말은 그런대로 알아 들을 수 있게 이어졌다. 나는 “네”하고 대답했다. 이것이 나와 어머니의 마지막 대화였으며, 그 다음부터 약 한시간 반 동안 어머니는 한 마디 말씀도 못하시고 누워 계시다가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나는 어린 두 손등으로 흐르는 눈물을 번갈아 닦으면서 울고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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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베트남전 두 死線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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