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작(燕雀)이 대붕(大鵬) 흉내 내면 몸이 찢어진다

    자,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고사에 나오는 부차나 구천 같은 절대 권력을 손에 쥐고있는 국왕도 아니고, 그랜트 장군처럼 전쟁터에서 엄청난 일을 독단으로 처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군 총사령관도 아니다. 그사람들에게 비하면 까마득히 하위직에 있는 보통사람인 것이다.

    연작(燕雀)이 대붕(大鵬)의 흉내를 내면 몸이 찢어진다는 옛말이 있다. 각자의 신분과 처지가 천차만별인 사람들은 저마다 걸맞은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판단을 해서 당면문제를 처리해 나가는 것이 올바르리라.

    이제 내가 채택하여야 할 합리적인 최선의 방책은 무엇인가. 세월이 약이 되어 치화에서의 치욕의 아픈 상처는 가슴속 깊이 침잠되어 묻혀있는데, 이제 와서 가해자를 만나게 되면 옛일이 확 되살아나지 않겠는가.

    내 눈은 불꽃을 튀기며 뒤집히고 주먹을 불끈 쥐며 치를 부르르 떨게되지 않겠는가. 그렇게되면 아픈 치욕의 상처를 다시 헤집는 일이 된다. 또한 그때 상대방의 말과 태도 여하에 따라서는 잠재해 있던 원한의 감정이 순간적으로 폭발하여 혹시라도 과격한 언동이 일어날지도 모를일이다. 인내와 용서는 마땅히 복수하여야 할 입장에 놓여있는 피해자로서의 책무를 유기하는, 쓸개 빠진 비겁하고 무책임한 변명일 수도 있다. 정말로 착잡했다.

    깊이 깊이 고민한 끝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라의 이익을 최우선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라고 결론 지었다. 따라서 나 개인의 증오스러운 원한의 복수는 우선 삼가기로 했다. 그리고 가해자를 만나지도 않기로 했다. 내 아픈 상처를 쑤시는 일을 피하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가해자가 서울에 와도 그만 가도 그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덤덤히 지내면 된다. 마음을 정리하고 평정을 되찾으니 잔잔한 행복의 나날이 흘러갔다.

  • ▲ 즈엉징 특 前 주한 베트남 대사 ⓒ 연합뉴스
    ▲ 즈엉징 특 前 주한 베트남 대사 ⓒ 연합뉴스

    ◆ 기구한 운명에 맞선 힘찬 도전

    즈엉징 특 대사가 서울에 부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면서 망각의 공간에 묻어버렸다.

    그러던 어느날 안희완 교수와 자리를 함께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는 한때 주월한국대사관 영사였으며, 치화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곤욕을 치르고 나와 함께 석방된 외교관이었다. 지금은 대학에서 베트남어를 가르치는 교수이다. 그가 나에게 특 대사를 만났는데 내 안부를 묻더라고 하면서, 한번 특 대사를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나는 안 만나는 것이 약이라면서 이를 거절했다. 그 후 손우식 은행지점장도 나에게 특대사를 한번 만나보라고 권유했다. 손우식 지점장은 여러 대학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유학오는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일을 했던지라 주한베트남대사관과 친밀했다. 나는 안희완 교수에게 한 이야기를 되풀이 하면서 이를 거절했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원수가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는 기구한 운명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2002년 8월 하순 어느 금요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서울남서로타리클럽 조찬 주회에 참석하여 주보를 자세히 읽어보니, 9월 6일 조찬 주회에는 주한베트남특명전권대사인 즈엉징 특 대사가 연사로 나와 ‘한·베트남 수교 10주년을 맞이한 양국관계’라는 연제로 강연을 하게 되어 있었다. 나로서는 뜻밖의 일이었다.

    알고보니 대우건설주식회사 회장이며 서울남서로타리클럽회장을 겸무하는 장영수 회장이 즈엉징 특 대사에게 요청하여 성사시킨 일이라고 했다. 대우그룹 총수인 김우중 회장은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중심지에 거대한 대우호텔을 건설하고, 그 호텔을 운영중에 있었다.

    주회가 끝나자 나는 국제로타리 제3640지구 총재를 역임한 클럽의 대들보이며 서울 남서로타리클럽을 창립한 초대회장이었던 예비역 장성 김유복 장군과, 현재의 장영수 회장을 만나 즈엉징 특 대사와 나와의 원한관계를 설명했다. 즈엉징 특 대사로부터 대략 들어서 장 회장은 나와 특 대사와의 관계를 웬만큼 알고 있었다. 또한 특 대사는 내가 서울 남서로타리클럽의 제3대회장을 역임한 클럽의 중진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고 했다.

    김유복 장군과 장영수 회장은 입을 모아 그것은 이미 먼 옛날의 일이고, 지금은 양국관계가 아주 가까운 우방으로서 좋은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 넓고 넓은 마음으로 구원을 모두 훌훌 털어버리고 관용으로 그와 화해하는 것이 진정으로 국가를 위한 일이 아니겠는가, 어렵겠지만 그렇게 용단을 내려달라고 당부했다.

    내가 정녕 특 대사를 만나지 않으려면 그날 주회에 결석하면 된다. 그렇다면 그가 와도 그만, 가도 그만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기구한 운명이 닥쳐오면 힘찬 도전, 또는 응전을 하여 이를 극복하고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내 인권을 무자비하게 짓밟은 원수와 외나무 다리에서 마주치는 운명이 눈 앞에 다가오고 있다. 역사의 피해자인 내가 이렇게 된 마당에 현장을 회피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당당하게 주도권을 가지고 당찬 모습을 상대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방법을 강구하여야 한다.

    2002년 9월 5일 밤 10시가 좀 지나서 우리 집 전화벨이 울렸다. 송수화기를 들어보니 생면부지의 조선일보 C기자였다. 그는 나에게 내일 아침 서울남서로타리클럽주회 장소에 출석하는지를 문의했다. 27년만에 철천지원수가 만나는 극적장면을 취재하기 위해서 자기가 내일 아침 일찍 신라호텔로 가겠다는 이야기였다. 별로 비밀사항도 아니어서 나는 그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답변해 주었다.

     

  • ▲ 즈엉징 특 前 주한 베트남 대사 ⓒ 연합뉴스

    <6.25와 베트남전 두 死線을 넘다>

    [도서 출판 기파랑]

    주소 : 서울 종로구 동숭동 1-49 동숭빌딩 301호
    전화 : 02-763-8996 (편집부)
    홈페이지 : http://www.guiparang.com/
    E-mail : info@guipar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