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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엔 면죄부 준 감사원 보고
왜 사건 발생 직후부터 청와대가 국민들에게 "북한 특이 동향 없음" "북한 개입 증거 없다"는 허위, 축소 보고를 계속해왔는가에 대한 해명이 없다.
趙甲濟
감사원이 오늘 발표한 천안함 爆沈 사건 관련 軍의 대응과정에 대한 감사 보고엔 가장 중요한 대목이 빠져 있다. 왜 사건 발생 직후부터 청와대가 국민들에게 "북한 특이 동향 없음" "북한 개입 증거 없다"는 허위, 축소 보고를 계속해왔는가에 대한 해명이 없다.
감사원은 천안함 사건 대응과 관련하여 청와대 비서실을 조사하지 않은 것 같다. 이는 일종의 직무유기이다. 천안함 폭침에 대한 중요한 조치는 軍이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 한다. 대통령과 안보 및 홍보 관련 참모들을 조사하지 않고서 발표한 보고서는 어차피 반쪽이다.
국민 입장에서 가장 황당하였던 것은 근 보름간 지리하게 계속되었던, 청와대의 '북한 개입 증거 없다"는 발언이었다. 천안함 爆沈에 관한 정부 발표를 아직도 믿지 않는 이들이 이렇게 많은 이유중의 하나가 청와대의 이상한 태도였다.
감사원은, 폭침당한 천안함 선장과 해군 현장 지휘관들은 처음부터 '북한 어뢰 공격으로 당하였다'는 요지의 보고를 올렸으나 왜곡, 축소 과정을 거치면서 합참과 청와대에 의하여 '북한 개입 증거 없다'는 식으로 국민들에게 전달된 과정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對국민 발표 창구였던 합참과 청와대의 축소 보고에 대한 설명이 없는 감사원 발표는 만만한 사람들에게만 책임을 轉嫁(전가)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국군 장교단이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나 국회처럼 독립된 권한을 보장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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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5월호 기사 인용.
지난 3월 26일 밤 9시22분 해군 초계함 천안함(天安艦) 침몰 이후 드러난 수많은 사후(事後) 정보에 의하여 우리는 당시 대통령이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를 역산(逆算)할 수 있게 되었다. 침몰 다음 날(3월27일) 아침 이명박(李明博) 대통령과 청와대는 다음과 같은 사안을 보고받아 알고 있었다.
1. 천안함 함장이 침몰 직후 “뭔가에 맞았다”고 보고한 사실.
2. 천안함 생존자들이 “꽝 하는 폭음과 함께 배가 솟구치고 순식간에 두 동강 났다”고 증언한 사실. 승조원 46명이 동강 나 가라앉은 함미(艦尾)에 갇혀 있다는 사실.
3. 김태영(金泰榮) 국방장관이, 천안함을 공격한 뒤 북한으로 달아나는 것으로 판단, 정체불명의 물체에 대하여 사격명령을 허가한 사실. 그는 국회에서 당시 “북한의 도발로 생각했기 때문에 적(敵) 잠수정의 탈주를 막기 위해 백령도 인근 해상의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속초함을 북방한계선(NLL)으로 보냈다”고 증언하였다.
4. 대잠(對潛)헬기가 즉시 백령도 해역(海域)에 투입되어 잠수함정 수색에 나선 사실.
5. 천안함 침몰 한 시간이 지나서야 서해안의 공군기지에서 비상출격이 이뤄진 사실.
6. 북한 군용기가 이례적(異例的)인 야간비행으로 남하(南下)한 사실.
해난사고 발표문 같은 청와대 발표
한밤중에 접적해역(接敵海域)에서 입체적인 실전(實戰)상황이 벌어졌다는 이런 보고를 받고 참모들과 대책을 논의한 대통령은 대변인(김은혜)을 시켜 27일 오전 기자들에게 이렇게 설명하도록 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늘 아침 7시30분부터 안보 관계 장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한 명의 생존자라도 더 구조할 수 있도록 군(軍)은 총력을 기울여서 구조 작업을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또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철저하고 신속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늘 회의에서는 아직까지 북한의 특이동향은 없는 것으로 보고됐다.”
긴박한 현장의 전투태세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영락없는 해난(海難)사고 발표문이었다.
전날 밤 천안함 침몰 직후 합참(合參) 정보작전처장 이기식 준장도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북한이 했다고 아직 증명할 수 없다. 원인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순간적으로 일어나서 아직 원인 규명이 안 되는 상황이다. 날이 밝아야 한다.”
KBS, MBC, 연합뉴스는 즉시 이 두 발표를 근거로 ‘북한 무관설(無關說)’을 확산시키기 시작하였다. 일반 국민들은 북한 개입 가능성은 없으니 안심해도 되겠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북한 전투기의 深夜 비행
‘특이동향은 없는 것으로 보고됐다’는 문장은 문법에도 맞지 않다. ‘특이동향은 감지(感知)되지 않았다고 보고하였다’가 맞다. ‘금강산은 없다’와 ‘금강산은 보이지 않는다’는 매우 다르다.
그날 있었던 가장 큰 ‘북측 특이동향’은 비행기의 야간기동이었다. 밤에는 좀처럼 뜨지 않는 북한 군용기(軍用機)가 평양 부근에서 이륙, NLL로 접근하다가 레이더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2002년 6월 서해에서 북한 함정이 무력 도발을 할 것이란 특수 정보를 입수, 국방부에 보고하였던(국방부에선 이를 묵살) 당시 국군감청부대(5679부대)의 한철용(韓哲鏞) 예비역 소장(少將)은 이 군용기의 남하(南下)를 중요 정보라고 해석하였다.
“나는 천안함이 김정일 특명에 의하여 북한노동당 차원의 대남(對南)공작으로 파괴되었다고 본다. 확대 개편되었다는 정찰국과 같은 대남공작 기관에서 잠수함정을 이용하여 우리를 친 것이다. 잠수함정을 투입하면 통신은 무조건 침묵시킨다. 천안함을 격침한 북한 잠수함은 성공 보고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한 잠수함이 교신하면 우리가 위치를 알아내 공격할 수 있다. 잠수함은 속도가 느리므로 위치만 확인되면 간단하게 파괴할 수 있다.
김정일은 아마도 그날 밤 남한 텔레비전을 보고 작전의 성공을 알았을 것이다. 궁금해진 그는 두 가지 목적으로 미그 29와 같은 신예 전투기를 밤중에 내려보냈을 것이다. 하나는 작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것, 둘째는 남한의 보복에 대비하기 위한 전진(前進) 배치. 2002년 6월 29일 그들이 우리 고속정을 침몰시켰을 때도 보복에 대비하기 위하여 신예 전투기를 황해도 공군기지에 배치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밤중에 평양에서 내려온 편대가 그때처럼 황해도의 한 공군기지에 착륙하였다고 판단된다.”
이런 중대 사안에서는 청와대와 국방부의 최초 발언이 그 후 사건의 흐름을 결정한다. ‘북측 특이동향 없음’이란 최초 설명이, 그 뒤 북한 무관설을 확산시키고, 따라서 천안함 침몰은 암초충돌, 기름탱크 폭발, 금속피로에 의한 선체(船體) 파괴 등 내부요인에 의한 것이란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한 것이다.
대통령도 북한 개입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은 채 인명(人命)구조의 중요성만 강조함으로써 군함(軍艦)침몰이란 거대한 안보(安保)사건을 해난사고 정도로 취급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지난 3월 27일 안보장관회의를 주재하는 이명박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豫斷 말라”
김태영 국방장관은 4월 8일 국회 답변에서 “함포사격. 이런 문제는 대통령이 통제하는 상황이 아니라 야전(野戰) 교전규칙에 따라 2함대 사령관이 권한을 갖고 있고, 대통령에게는 사후에 보고된다”면서 “우리가 (26일 밤 북한 함정으로 간주하고) 사격을 했고 이후에 새떼로 판명됐다고 보고하자 대통령께서는 오히려 너무 과도한 조치가 아닌지 하는 걱정까지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자국의 영해(領海)에서 자위권(自衛權) 차원에서 이뤄진 사격에 대하여 국군통수권자가 ‘과도한 대응이었다’는 걱정을 하면 군은 소극적이 되거나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처음부터 무슨 정보를 받았는지, 군처럼 천안함 침몰이 북한 도발에 의한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지 않았던 것 같다.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은 지난 3월 30일, 백령도 연안 천안함 침몰사고 현장 독도함 상황실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내부 탄약고 폭발 정황(情況)은 확인이 안 되고 있다”면서 “탄약고는 폭발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설명하였다.
김 총장이 이런 답변을 하게 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앞뒤에 있는) 탄약고는 폭발 안 한 건가”라는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함미는 확인이 안 된 상태”라고 밝히면서 “(함수 쪽) 케이블이나 침대시트를 보면 (외부) 폭발이나 큰 압력에 의해 절단된 것이 아닌가 본다”고 말했다.
배석한 다른 군 관계자도 “함수(艦首) 쪽 절단 부위 사진과 떠오른 물체를 보면 (내부) 폭발이나 그을음 흔적은 없다. 불에 탄 물체도 없다”면서 “내부폭발은 없었던 것으로 본다”고 부연 설명했다.
“기뢰(機雷)가 터졌더라도 흔적이 남느냐”는 이 대통령의 물음에 김 총장은 “인양(引揚)해 봐야 알 수 있다”며 “어뢰(魚雷)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어뢰 가능성에 대하여는 대통령이 묻지도 않았는데, 김 총장이 스스로 언급한 것이 특이하였다. 김 총장의 답변에 대하여 이 대통령은 “아주 과학적이고 종합적으로 조사해야 한다”면서 “절대 예단(豫斷)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