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와 함께 사의를 표명한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민주당 간사장은 당내 최고 실력자로서 지난해 54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끈 1등 공신으로 평가받았다.
그만큼 일본 민주당에서 오자와 간사장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으며 그의 계파가 중의원과 참의원을 합해 120명에 달한다는 관측이 나올 정도였다.
'선거의 달인'으로도 통했던 오자와 간사장은 지난해 5월 정치자금 문제로 당 대표직을 사임하고 나서도 같은 해 총선에서 정책공약, 선거전략, 후보공천, 후보 자금지원 등 선거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하토야마 총리의 취임 역시 그의 '선택'이었다.
13선 중의원에 민주당 3선 대표로서 화려한 정치 이력의 소유자인 오자와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권모술수와 흑막정치, 계파정치의 전문가라고 비판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관료정치 혁파, 세습정치 청산, 자민당 1당 지배 타파를 통한 양당정치 실현 등의 정치 목표를 위해 싸워온 신념과 승부의 정치가라는 평가도 공존한다.
1942년생으로 게이오(慶應)대학을 졸업한 그는 약관 27세에 중의원이었던 부친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선거구를 물려받아 정계에 발을 디딘 후 이미 40대에 일본 정계를 좌지우지하는 실력자로 성장했다.
일본 정계의 파벌 영수였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총애를 받으면서 힘을 키워 최대 계파인 다케시타파(竹下派)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1989년에는 자민당 간사장에 올랐다.
1993년 오자와의 정치인생에 큰 변화가 온다. 당내 권력투쟁에서 밀리면서 자민당을 탈당한 것. 선거구제 개편 등 개혁법안 처리를 싸고 당론에 반대, 내각 불신임안에 동참하면서 반란자가 됐다.
이 정변 직후 총선에서 자민당이 과반을 얻지 못하면서 오자와가 말을 갈아탄 신생당 등 8개 정파의 비(非)자민 연립정권이 들어섰다. 이 연립정권의 막후 실력자 역시 오자와였다.
이후 신진당을 만들었다가 해산하고 1998년 1월 자유당을 창당해 당수가 됐으며 자민당, 공명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했으나 정권 운영을 둘러싼 갈등으로 2000년 4월 연립정권에서 이탈했다.
그는 결국 민주당을 이끌고 있던 하토야마와 의기투합해 2003년 9월 자유당을 해체하고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지난해 정권교체의 토대를 닦았다.(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