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렬한 공산당원이자 평화운동가로 알려진 스페인 출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가 1950년대 후반 당시 프랑코 장군의 스페인 우파정부와 비밀협상을 가졌었다고 그의 전기작가인 존 리처드슨 등이 밝혔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을 존경하고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로부터 전보를 받는 등 50년대 좌파 진영의 대표적 옹호자로 기록되고 있는 피카소는 그러나 실상은 평소 혐오했던 프랑코 장군의 스페인 파시스트 정권과 비밀 협상을 벌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가디언지가 28일 리처드슨 등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50년대 후반 남프랑스 해안 지역에 체류중이던 피카소는 자신의 회고전을 고국에서 열기 위해 프랑코 정권이 파견한 대표와 비밀 협상을 벌였다는 것.
    리처드슨과 예술사가인 히스 판 헨스베르겐 등에 따르면 피카소는 공산주의자로서 프랑코 정권을 맹비난해오면서도 한편으로 조국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으며 아울러 모국에서 당시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가로서 자신에 대한 인정을 받고 싶어했다는 것.
    따라서 본국 정권과 협상을 열 당시 피카소의 견해는 "모호하기 그지없었으며 이 시기의 역사는 회색지대의 그것"이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프랑코 정권은 피카소와의 귀국 회고전 협상을 위해 스페인의 예술비평가인 호세 마리아 모레노 갈반을 피카소가 체류 중인 남불(南佛)로 파견했으며 갈반은 협상결과를 파리주재 스페인 대사관의 문화관에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협상은 비밀리에 진행됐으나 상당 부분 진척되면서 스페인 소수 저명인사들 가운데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이에 일부 스페인 인사들은 피카소에 서한을 보내 정부의 유혹에 말려들지 말도록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협상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협상은 중단됐으며 스페인 정부는 협상 사실을 부인하고 나섰다.
    리처드슨 등은 만약 피카소가 프랑코 정권의 요청을 받아들여 마드리드에서 귀국 회고전을 열었다면 스페인 좌파에 큰 타격이 됐을 것이며 아울러 그는 좌파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박탈당하고 배신자로 낙인찍혔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따라서 50년대 후반 피카소의 유명 작품들은 대부분 그가 귀국 회고전을 염두에 둔 상황에서 그려진 것들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957년 피카소는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대표작 '시녀들'(Las Meninas)를 재해석한 연작 시리즈를 시작했는데 이는 그가 스페인 및 스페인 예술사와의 관계복원을 희망하는 증거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리처드슨은 피카소가 고국에서 전위적 예술가로서 신임을 얻기 위해 스페인 황금시대의 예술을 이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피카소의 이 작품들은 현재 리버풀 테이트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 전시회에 임대돼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