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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의 수도이전론, 박의 수도분할론, 이의 세종시 신안, 충돌의 역사
     
     
    2002년 9월 30일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대선 선대위 출범식에서 "한계에 부딪힌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 경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 청와대와 중앙부처부터 옮겨가겠다"고 공약했다. 노 후보는 “수도권 집중과 비대화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국가적 결단이 필요하다"면서 "고속철의 건설과 정보화 기술의 발전, 청주국제공항 등은 행정수도 건설의 여건을 성숙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노 후보는 "특히 청와대 일원과 북악산 일대를 서울시민에게 되돌려 줌으로써 서울 강북지역의 발전에 새 전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010년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세종시 문제의 시작이었다.

    노무현 후보가 대선을 3개월 가량 앞두고 불쑥 행정수도 이전론을 던진 것은 지역균형발전의 소신도 있겠지만, 충청권 득표 전략의 일환이었다. 실제로 수도 이전 수준의 공약이라면 선대위 내부의 치열한 정책토론이 필요했음에도, 이 과정이 없었다. 당시 노후보 캠프에서 경제 정책을 담당했던 한 인사는 “지역균형 발전은 노 후보의 원칙과 신념이긴 하나, 충청지역에 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는 것은 사실 상 득표 전략의 일환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2003년 11월 6일 노대통령은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열린 신행정수도건설 국정과제 회의에서 “(충청권) 신행정수도 건설을 주제로 내가 지난 대선에서 좀 재미를 봤다”면서 “신행정수도를 반대하면 한나라당이 정치적으로 계속 불리해질 수 있다”며 두고 두고 문제가 되는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노대통령은 “한나라당에서 ‘너만 (행정수도를 건설)하느냐’ 이렇게 나오면서 ‘우리도 추진한다’고 하면 이 문제에 대한 정치적인 독점권은 해제되는 것이다”면서 “행정수도 이전을 다음 총선에서 이용하지 않을까 걱정하는데 야당이 당론으로 채택해 버리면 정부의 정치적 독점권은 해소돼 버린다”며 한나라당을 압박했다.

    노대통령의 수도이전론은 통일이 늦을 거라는 전망에서 시작

    특히 “행정수도를 이전하면 통일 이후에는 어떡하나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면서 “그러나 지금 내 생각에 우리는 한번에 정부가 통합되는 독일식으로 통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남북 격차가 있는 상태가 오래 지속될 텐데 남북이 각기 구심점을 갖고 개성쯤에 접점을 찾아가는 게 좋을 것이다”라며 본인의 통일관을 밝혔다. 수도 이전이 통일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을 노대통령 스스로 인정한 것. 반대로 이야기하면 행정수도 이전은 남북통일이 빠르게 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시작된 것이므로,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정책의 정당성이 흔들릴 사안이었다. 현 정부와 여당이 세종시 수정안을 마련하면서도 ‘통일’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하고 있고, 현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통일수도는 서울이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수도이전이든 수도분할의 성격을 띈 세종시 원안이든 만약 통일이 빠르게 진행된다면 곧바로 중단해야 되는 사안이라는 점을 노대통령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이러한 노대통령의 압박에 굴복하여 수도이전론을 찬성했다는 점이다.
    2003년 11월 20일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 자민련은 신행정수도건설특별위원회 설치에 합의한다. 그러나 그 다음 날인 2003년 11월 21일 신행정수도건설특별위원회 본회의 표결에서는 179명 중 찬성 84명, 반대는 70명, 기권 25명으로 부결되었다. 반대표 70명은 모두 한나라당 의원들이었다. 이러한 반대표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오세훈 현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 등이 주도했다.

    그러자 당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충청권 의원들로부터 극심한 압박을 받게 된다. 이완구·윤경식·신경식·유한열·송광호·이재선·함석재·이양희·전용학 의원 등 충청권 출신 한나라당 의원 9명은 표결 부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정기국회 회기 안에 지방분권특별법,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등 3대 특별법을 심의하기 위한 특위가 구성되지 않으면 일체의 당무에 참여하지 않고 의원직도 사퇴하겠다고 천명한다.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수도이전 약속, 박근혜도 찬성

    충청권의 압력에 시달리던 최병렬 대표는 2003년 11월 30일  "신행정수도 건설에 대한 충북도민들의 관심과 열망이 매우 큰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신행정수도 특별법이 반드시 이뤄지도록 할 것이므로 염려하지 말라"며 통과를 약속했다. 수도이전론은 결국 한나라당의 권고적 당론으로 확정된다.

    그해 12월 29일 본회의에서 신행정수도특별법 199명 중 167명의 찬성으로 재적 의원 3분의 2를 가볍게 넘어서며 통과었다. 박근혜 전 대표도 이때 찬성표로 입장을 바꿨다. 노무현 대통령의 수도이전 공약이 당시 제 1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주도로 국회 통과가 되었고, 훗날 한나라당을 이끌게 된 박근혜 대표까지 이 안에 동참했던 것이다.

    2004년 3월 12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전격적으로 노대통령 탄핵안을 제출했고, 상상을 초월하는 역풍에 시달리며, 한나라당은 박근혜 체제로 개편된다. 박근혜 대표는 총선거를 이끌면서 충청권 유세에 갈 때마다 수도이전 공약 질문공세를 받게 된다. 박대표는 그때마다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으니 아무런 걱정 안 해도 된다”며 충청지역의 우려를 다독였다.

    실제로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충청지역에서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2003년 12월 29일 박근혜 대표 스스로 찬성했던 수도이전안을 2004년 4월 총선에서 뒤엎었다면, 탄핵세력으로 낙인찍힌 한나라당은 전멸당했을 공산이 크다. 현재 박대표가 세종시 수정안 절대 불가를 주장하며 내세운 국민과의 신뢰 부분이기 때문이다. 2004년 총선은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과반을 차지하면서 승자가 되었다. 그러나 탄핵 이후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졌던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의 맹활약으로 121석을 차지하며 존립을 지켜냈다.

    그러나 총선 뒤 2개월 만에 열린 2004년 6월 5일 전남지사, 경남지사, 부산시장 등 광역자치단체장 재보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참패한다. 전남지사는 민주당 소속 박준영, 경남지사는 한나라당 소속 김태호, 부산시장 역시 한나라당 허남식 등이 당선되었다. 이 선거가 바로 노대통령 재임 기간 중 있었던 각종 재보선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44:0으로 연전연패하는 그 시작이 되었다.

    박근혜, 2004년 6월 지자체 재보선 승리 뒤, 수도이전 공약 뒤집어

    재보궐 선거 승리로 자신감을 갖게 된 한나라당은 이때부터 수도이전 공약을 뒤집기 시작한다. 한나라당 최병렬 전 대표는 “당시 17대 총선을 앞두고 ‘충청표’를 의식해서 합의해준 것은 사실”, “총선 이후 부지 선정 등 예산 문제로 발목잡으면, 수도 이전은 사실 상 불가능할 것이라 의원들 설득했다”고 고백했다. 즉 총선용 국민사기극이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표는 지자체 선거 승리로 인한 자신감을 확보하여 수도이전 공약을 조금씩 뒤집기 시작한다. 박대표는 2004년 6월 21일 “지난해 법을 통과시키는 과정에 우리 실책이 컸다”면서 “무엇보다 국가 중대사를 놓고 충분한 공감대 형성이나 의견수렴, 타당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갖지 못한 것이 사실”, 그는 “대통령이 타당성에 대한 논의 없이 정략적인 대선 공약을 내놓은 것에 대해 반성해야 하지만 한나라당도 반성해야 하며, 그때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책임이 더 크다”, “사과는 백 번,천 번이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책임지느냐”라면서 “한나라당의 안은 후세들에게 타당하고 옳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안이 돼야 한다”며 행정수도 이전안 공약을 뒤집고 새로운 안을 논의할 것을 제안한다.

    박대표 "국민과의 약속이라도 잘못되었으면 바꿔야한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2004년 8월 9일 국회 수도이전 특위 구성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여 원점부터 재논의할 것 주장한다.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박대표의 한나라당 행보는 더욱 가속화된다. 2004년 8월 12일 박근혜 대표는 당 상임운영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경제가 나날이 어려워지는데, 국회 차원에서 충분히 논의하고 국민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국가사업을 왜 이렇게까지 서둘러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국회 차원의 논의를 촉구하지만, 여당이 끝까지 거부하면 한나라당 독자적으로라도 타당성 검토를 해서 대통령 승인 이전에 우리 당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노대통령을 압박했다.

    현 국회의장이자 당시 한나라당 김형오 사무총장은 "대선후보까지 여론조사로 결정한 열린우리당이 국민의 60% 가까이 반대하는 수도이전 문제에 대한 여론조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은 정치적 배신행위"라며 "국회에서 만들어준 법대로 한다는 걸 금과옥조인양 하는데, (여당이 개정하려는) 친일진상규명법과 국가보안법도 국회에서 만든 법이다. 입맛에 맞으면 영양식품이요, 맞지 않으면 불량식품이라는 희한한 입장"이라며 국민여론을 수용하여 행정수도 이전안을 변경할 것을 촉구했다.
    박대표와 김형오 사무총장의 이 당시 발언은 정확히 2010년 1월, 세종시 수정안을 주장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계의 입장과 똑같다. 자신들이 만든 법이고, 선거 당시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이라도 잘못되었으면 바꿔야한다는 것이다.

    세종시 원안은, 헌재 위헌 판결 이전에 박근혜 측이 주도해서 만들었다

    2004년 9월 22일 박근혜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부 전체가 옮겨가는 정부의 신행정수도 건설은 반대하며 충청권에 행정의 주요 부처를 옮기되, 청와대와 외교통상부, 국방부 등 외교.안보 라인은 이전 대상에서 제외하는 ‘행정 특별시’를 조성해야 한다”며 행정수도 이전 포기 선언 및 수도기능 분할 안을 제시했다. 지금의 세종시 원안의 모태이다. 급기야 2004년 9월 24일 한나라당은 충청권에 ‘행정특별시’를 건설, ‘제2의 수도’로 육성하는 내용의 충청권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이전대상 기관은 교육인적자원·과학기술·정보통신·산업자원·노동·환경·여성부 등 교육부총리와 과학기술부총리 산하 7개 부처와 농촌진흥청, 식품의약품안전청 등 산하 25개 기관으로 한나라당 당론을 확정한다. 박대표의 수도분할 발언 이후 단 이틀만에 나온 한나라당 당론이었다. 이러한 한나라당 당론은 2005년 3월 2일 여야 합의로 통과된 세종시 원안의 기반이 되었다. 지금의 세종시 원안은 노대통령의 수도이전안과 판이하게 다른 박근혜 대표가 주도적으로 만든 안이라는 것이다. 박대표가 원안 수정에 대해 민주당보다 더 강력히 반대하는 것도 바로 자신의 법안이기 때문이다.

    2004년 10월 1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안상수 인천시장은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며 ▲정부 여당이 말하는 천도에 반대하고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안을 적극 마련하며 ▲충청권 발전방안을 지속적으로 강구키로 하는 등 4개항을 결의했다. 그러나 당시 이명박 시장이 박근혜 대표의 안에 찬성한 것은 아니다. 2005년 3월 2일, 세종시 원안 통과 뒤 이명박 시장은 “수도분할은 수도이전보다 더 나쁘다”며 강력히 반발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오히려 박대표와 수도권 자치단체장들의 선언은 두고두고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발목을 잡는다. 손 전 지사가 민주당으로 적을 옮겨 대선 당내 경선에 출마했을 시, 정동영 후보와 이해찬 후보는 수도이전을 반대했던 손학규 지사가 과연 노무현 정권을 승계할 수 있냐는 측면에서 비난했다.

    열린우리당, 박근혜 측의 국민약속 파기에 맹공격

    한나라당이 수도이전 안을 뒤집자 열린우리당도 반격을 시작한다. 2004년 10월 12일, 열린우리당은 공식 성명서 통해 “수도이전 사업이 대국민 사기극이면 과반을 넘는 의석으로 신행정수도 특별법 통과에 가장 큰 기여를 했던 박근혜 대표와 한나라당은 사기극의 공범인가? 이런 말 하면서 스스로 낯뜨겁고 부끄럽진 않았는가?”, “ 한나라당은 더 이상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숭고한 대의를 악의적으로 매도하지 말라. 현재 진행중인 신행정수도 건설사업은 국회에서 당신들이 다수로 통과시켜준 법에 의해 지극히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며 한나라당의 수도 이전 말뒤집기를 맹공격하였다.
    이 당시 열린우리당의 박근혜 대표에 대한 공격은, 2010년 1월의 박대표 측이 이명박 대통령을 공격하는 논리와 똑같다. 본인 스스로 약속하고 찬성한 법안을 뒤집지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 측면에서는 세종시 원안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조금 더 자유롭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 세종시 원안을 찬성한 것이 아니고, 자신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되면서 떠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박대표의 경우 수도이전 법안에 자신의 이름으로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에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이다.

    박대표 측과 열린우리당이 공방전을 벌이는 사이 2004년 10월 21일 헌법재판소는 “수도이전은 관습헌법 사안임으로 국민투표와 국회동의를 거쳐야 한다”며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판결을 내린다. 헌법재판소의 논리는 “우리 헌법전상으로는 ‘수도가 서울’이라는 명문의 조항이 존재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서울은 사전적 의미로 바로 ‘수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며 수도 이전은 개헌 사안이라는 것이다. 즉 대한민국의 국기가 태극기라는 헌법 조항은 없지만, 국기는 관습적으로 인정받고 있기에 국기를 국민적 동의없이 국회가 바꿀 수 없다는 논리이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수도이전은 통일의 사안이라는 점을 못박았다.

    헌법재판소, “수도 이전은 통일의 사안이다” 판시

    “또 우리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대한민국의 수도는 현실적인 지배력이 미치는 군사분계선 이남만이 아니라 군사분계선 이북지역까지를 포함하는 한반도 전체의 상징도시이고, 따라서 군사분계선 이북에 대한 현실적인 지배력을 회복하는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다른 결정이 없는 한, 대한민국의 수도는 통일된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지위를 가진다. 그러므로 수도의 위치는 통일 후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수도의 위치는 통일의 전후 및 통일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수도이전문 제는 통일에 관한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일찍이 노대통령이 통일이 늦어질 것이므로 남쪽으로 수도이전을 해도 무방하다고 주장한 논리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반박인 셈이다. 통일이 예상보다 빨라졌을 경우도 대비하여 수도를 정해야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수도이전이 통일과 국방에 관련된 사안이므로 국민투표에 해당이 된다고 판시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은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을 국민투표에 붙일 의무가 있으므로, 국민은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을 국민투표에 붙이도록 대통령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고, 대통령이 현실적으로 이를 부의하기 전이라도 위 의사결정에 대한 구체적 국민투표권을 헌법 제130조에 의한 국민투표가 가지고 있다”며 아예 의무사항이라 명시한 것이다.

    헌법재판소 “개헌안 나오기 전이라도 국민투표 먼저 해라”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개헌은 헌법 제 72조에 의해 국회 재적 3분의 2의 동의를 거쳐 국민투표에 붙여하는 반면, 대통령의 국민투표권은 헌법 제 130조에 규정되어있다. 즉 대통령이 국민투표에 붙이게 되면, 국회의 3분의 2의 동의를 얻은 뒤, 다시 국민투표를 해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헌법 제130조에 의한 국민투표가 실시된 후에는 더 이상 헌법 제72조에 의한 국민투표를 실시함이 무의미하므로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은 헌법 제130조의 국민투표가 실시됨을 해제조건으로 하여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헌법개정을 요하는 사안이라도 헌법개정안을 제안하기 전에 국민의 현실적 의사를 문의하는 내용의 국민투표를 헌법 제72조에 의하여 실시할 수 있다. 이 국민투표에 의하여 정책의 방향이 결정된 다음 이를 기초로 구체적인 헌법개정절차를 진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즉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가장 먼저 수도이전에 대해 국민투표를 붙여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표의 한나라당은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다르게 해석했다. 박대표는 헌법재판소 판결 다음날인 2004년 10월 22일 한나라당이 지난 16대 국회에서 관련법 통과에 협력한데 대해 공식 사과했다. 박 대표는 관훈클럽 초청 토론의 기조연설을 통해 "작년 말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데 대해 참으로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무엇보다 충청도민 여러분이 받았을 충격과 상실감에 대해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드린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정치권은 헌재 위헌판정을 자성의 계기로 삼고 민생을 살리는 새 출발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국민 모두가 피해자가 된 이 문제를 두고 여야 모두는 겸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헌법재판소 판결 이전에 이미 수도이전 공약을 뒤집고, 수도분할안을 제출한 박대표로서는 국민투표에 붙일 이유가 없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유시민 등 친노강경세력들이 국민투표를 주장했으나, 이를 더 이상 밀어붙이지 못한다. 왜냐하면 2004 10월 30일에 열린 지방 재보선에서 또 다시 참패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설사 국민투표에서 이기더라도 박대표가 반대하는 한 국회 3분의 2 동의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무의미한 국민투표가 되어버리게 된다. 실제로 헌법재판소에서도 “이미 2003년 12월 29일 법안이 통과될 당시 재적 국회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였으므로, 개헌 선을 넘은 것”이라는 소수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즉 산술적으로는 국민투표만 붙여서 동의받게 되면, 국회 통과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열린우리당은 박대표의 한나라당이 이미 당론으로 확정한 수도분할안을 보완하는 선에서 타협한다.

    한편 박근혜 대표는 2004년 10월 25일 한나라당 의총에서 “수도이전과 관련해 당이 취해온 태도에 대해 다같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작년말 법이 통과됐을 당시 우리가 다수당이었기 때문에 그때 반대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 “우리가 저쪽보다 책임이 크다”며 다시 한번 공식 사과했다.

    박근혜, “수도 이전 잘하겠다” 총선 때 공약한 것 사과

    특히 박대표는 이어 “지난 총선 때 충청도민들이 수도이전을 잘 해달라고 하면 저는 ‘그러겠다’고 말하고 다녔다”면서 “지금 우리가 반대한다고 해서 어떤 대안도 내놓지 않는다면 무책임한 당이 될 수 있다”며 수도 이전을 총선 선거운동으로 이용했음을 고백했다.
    이러한 박대표의 태도는 역시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충청권에 보이고 있는 태도와 똑같다. 이 대통령 역시 세종시 원안을 대선 공약으로 약속한 뒤, 이를 번복하자 충청권 민심을 고려하여 기업과 교육기관을 대거 유치하는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게 된다. 즉, 수도이전 공약을 뒤집은 박대표가 수도분할안을 통해 충청권에 손짓했다면, 수도분할안을 뒤집은 이대통령은 기업과 교육도시 안으로 충청 민심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수도이전안이 박근혜 대표의 주도로 수도분할이 된 이후, 노대통령과 친노세력의 태도이다. 노대통령은 2007년 7월 20일 연기군에서 열린 행정도시 기공식에서, “청와대와 정부 부처 일부가 공간적으로 분리되게 된 것은 업무 효율상 매우 불합리한 결과이며,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꼭 행정수도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정부부처는 모두 이 곳으로 오는 것이 순리”라며 수도기능 분할의 위험성을 퇴임 직전까지 지적했다. 즉 수도분할로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청와대 등 모든 행정기관을 옮기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노대통령의 방향을 대선 후보 당시 정책으로 구체화시킨 인물은 유시민이다. 유시민은 대선후보로 활동하던 2007년 8월 22일 충청북도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대통령이 되면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에 대통령 집무실 분소를 마련해 일주일에 3일은 집무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다.

    2007년 대선, 유시민, 이해찬, 한명숙, 정동영, 모두 수도 이전 다시 주장

    유시민은 이에 더해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결정됐지만 세종시는 사실상의 행정수도 기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헌법재판소 결정도 존중하고 세종시 건설의 원래 취지도 살리기 위해 대통령이 되면 화, 수, 목 3일은 세종시에서 집무할 계획"이라며 "당장은 아니지만 정부기관 입주가 본격화되는 2012년에는 다른 기관의 추가 이전과 국회, 청와대의 이전도 검토해야 한다"며 사실 상 수도이전을 재공약했다. 친노세력의 좌장격인 이해찬 역시 2007년 9월 1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행정수도에 준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도시를 건설해야 한다. 여야합의로 만든 법에 따라 정부기관이 이전하면 된다. 다만 국회의 경우는 의원들 스스로 합의해서 이전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입법과 행정이 행정도시에 모여 유기적인 관계가 유지될 것이다. 또 대통령의 집무도 행정도시에서 한다면, 기능상으로는 행정수도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라며 수도이전론을 제안했다.

    친노세력과 조금 다른 독자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당시 정동영 대선후보도 “2002년 2월27일 민주당 후보 정동영의 공약이었다. 당시 노무현 이인제 후보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으나 9월달 노무현 후보에 의해 행정수도 공약이 채택됐다"며 수도 이전을 재추진할 것을 시사했다.

    현재 서울시장 후보로 사실 상 출마선언을 한 한명숙 역시 2007년 7월 10일 대전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는 신행정수도특별법이 위헌판정이 나자 '법치주의의 승리'라고 격찬했다”, “이같은 언행에 대해 깊은 사과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 와서 표를 의식해 말과 행동을 바꾸는 것은 지도자 자격이 없다"고 박근혜 대표를 맹공격했다. 이러한 한명숙 후보의 비판은 현재 박대표 측이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논리와 똑같다. 한명숙은 이에 더해 ”세종도시특별법의 방망이를 두드렸던 사람으로 행정도시를 미국의 워싱턴 디씨를 뛰어넘는 세계적인 명품도시로 만들 것"이라며 "행정도시를 행정 서비스와 의료 첨단과학기술이 어우러진 미래형 첨단도시로 발전시키겠다"며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언급, 수도이전을 상기시켰다.

    이와 같이 친노세력인 이해찬, 유시민, 한명숙은 2007년 대선 당시 행정수도건설을 주장하면서 박근혜 대표의 수도분할안인 세종시 건설과는 차별점을 부각시켰다. 이들이 현재 박대표의 원안 사수 주장에 힘을 합치고 있는 것은 이 자체가 또 한번의 국민사기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이들 친노세력의 주장은 일단 정부부처부터 옮겨간 뒤, 국회, 청와대 등을 차근차근 옮겨 수도를 건설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수도이전론을 박대표의 수도분할안으로 슬쩍 눈속임하겠다는 것이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당시 불쑥 주장한 수도이전론은 박근혜 대표가 총선 때 공약으로 내세운 뒤, 뒤집고 세종시 원안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때 공약으로 내세운 뒤, 뒤집고 세종시 수정안까지 제출되었다. 이 과정에서 친노세력들은 수정안들이 제출되고 있지만, 여전히 수도이전안을 구상하고 있다. 현 이명박 대통령의 안이 서울을 수도로 하고, 세종시는 기업과 교육도시로 성장시킨다는 안이라면, 친노세력들은 워싱턴을 모델로 새로운 수도건설안을 제시하고 있다. 박근혜 대표는 이 중간에서 수도를 분할하는 안을 관철시키고, 이에 대한 일체의 수정불가론을 고수하고 있다.

    박대표의 수도분할안, 친노세력과 친이계 사이에서 압사당할 수도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에서는 박대표와 친노세력이 손을 잡고 있지만, 수도분할은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이대통령과 친노세력이 손을 잡게 되는 수도 있다. 노대통령이 퇴임 직전까지 수도분할의 위험성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박대표의 안은 서울 수도론과 세종시 수도론의 사이에서 절충을 했다는 점에서 형식적인 면으로는 가장 원칙이 없는 안일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친노세력들이 수도이전안을 내세웠을 때, 오히려 박대표의 설 자리가 없어진다. 지금 박대표가 이 대통령을 공격하는 논리 그대로 친노세력으로부터 총선 때 국민에 사기친 뒤 말을 바꿨다며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의 상황만 보면, 박대표의 원칙이 살아있을 수 있지만, 2003년과 2004년의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박대표의 원칙은 빛을 잃는다. 이는 두고두고 원칙을 가장 큰 자산으로 삼고 있는 박대표의 원죄가 될 수 있는 중요 사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