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북동포 김진 씨가 북한에 진입한 로버트 박 씨와의 인연과 그의 앞날을 예측한 글을 27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올렸다. 김씨는 “박 씨가 미국 여기자들과 대조되는 것은 죽기를 각오한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북행’을 강행했다는 점”이라며 “이럴 경우 북한 당국자들의 주특기인 상대방에 대한 공포, 위협과 공갈 등이 무력화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박 씨 이야기는 케런트TV 소속 미국인 여기자들처럼 세간의 화제가 되어 미국 정부를 움직일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 박 씨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김정일 독재정권이 무기력한 순간을 맞게 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진씨의 글이다.        
        
    로버트 박과 “자유와 생명 2009”

    성탄절인 12월 25일, “나는 미국 시민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왔다”고 소리치면서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북한으로 들어간 로버트 박(28세. 한국명 박동훈)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박씨가 전 세계 북한인권 및 탈북자관련 단체들의 네트워크(100여개 단체)임을 주장하는 ‘자유와 생명 2009’(이하 자유와 생명)의 대표라는 것과 ‘자유와 생명’ 주도로 국내외에서 30여회의 “북한 인권을 위한 기도회”와 관련 행사들이 벌어졌다는 것이 전부이다.
    그나마 미국과 일본, 캐나다의 소수 NGO 단체, 그리고 국내에 유학중인 외국인 학생들을 빼고 나면 ‘자유와 생명’이 주도하는 크고 작은 행사에 동참한 한국교회와 탈북자들은 언제나 ‘소수’였다.
    대신 ‘자유와 생명’의 홈페이지 http://www.unifykorea2009.com에서 확인되듯이 ‘운동’을 위한 국제적 네트워크(미국, 우크라이나, 일본, 브라질, 중국, 이스라엘, 몽골, 스웨덴, 영국, 프랑스, 오스트랄리아, 멕시코, 케니아, 싱가포르, 우간다, 브라질 등)는 비교적 원만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국제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단체는 ‘전 세계 북한 대사관에 북한 동포 해방을 촉구하는 편지 보내기’운동 및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의 즉각적인 석방과 김정일을 국제 형사 재판소에 제소를 촉구 등 다각적 활동을 벌려왔으며 북한구원을 위한 ‘서울시청 앞 걷기대회’와 ‘서울역 기도모임’, ‘탑골공원 앞에서의 사진전시회’ 등 다양한 형태의 국내행사들도 주도해왔다.

    국내에서 진행된 단체의 첫 행사는 지난 9월 4일, 마흔 일곱 개의 단체들이 모여 진행한 북한인권 관련 ‘사진전시회 및 기도회’. 관계자들의 말을 빈다면 “1989년 9월 4일 독일의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회가 동독에서 시작되었고 1년 후, 독일은 통일을 맞게 되었으니 독일통일 20주년이 되는 오늘, 한국에서도 통일을 위한 기도운동이 벌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로부터 매달 27일 북한을 위한 ‘금식기도운동’이 벌어졌고 매주 금요일 예비 된 교회와 단체들에서의 북한구원기도운동이 벌어졌다. 하지만 해외 단체들과 외국인들에 비해 국내 교회와 단체들의 동참이 상대적으로 저조함을 느낀 “운동”의 지도자들은 이른바 북한구원의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게 된다.

    필자에게 처음 로버트 박을 소개한 사람은 탈북자단체들에 K교수로 통하고 있던 50대 초반의 여인, 현재까지 ‘자유와 생명’ 관계자로만 알려져 있는 K씨는 실질적으로 로버트 박과 ‘자유와 생명’을 이끌어 오고 있는 북한인권 운동가다.
    지난 몇 해 동안 북한의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벌려왔으며 특히 탈북자 국내입국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인물이다. 그의 도움으로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수가 1000여명을 웃돌고 있다는 사실이 K씨의 활동성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한 K교수의 통역과 중간 중간 간신히 번지던 한국어로 북한의 복음화를 역설하던 로버트 박이 끝내는 장장 30여 분간의 기도를 영어로 “때려”치웠다. 하나님의 뜻은 언어가 다르더라도 충분히 전해질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그러던 그가 불과 몇 개월 뒤, 나의 어깨를 툭 치며 “요새 고생 많지요?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이야기 늘 듣고 있습니다”고 하는 것이었다. 늘어버린 한국어 실력에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그로부터 또 며칠이 지난 뒤, 어느 “행사”장에서 로버트 박의 의사가 전해졌다.
    “북한으로 들어간다. 자유북한방송에서 동행취재를 할 수 있는가?”
    2009년 10월 29일의 일이다. 하지만 본 방송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단정했고, 설사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죽음으로 가는 그를 말려야 한다는 쪽으로 논의의 가닥이 잡혀졌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고, 로버트 박의 진심을 몰랐던데 기인한 섣부른 판단이었다.

    “저는 오늘 당신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를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는 자비로우시고 관대하십니다”라며 김정일의 회개를 촉구하는 편지를 품고 북으로 들어간 로버트 박의 운명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번 일을 ‘탈북자 문제를 취재 하던 중 의도하지 않게 북한 국경에 진입했던 미국 여기자 사건’과 비교하고 있지만 박 씨가 미국 시민권자라는 것 외에 저들과 비교될 것은 하나도 없다.
    특히 박 씨가 미국 여기자들과 대조되는 것은 죽기를 각오한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북행”을 강행했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북한 당국자들의 주특기인 상대방에 대한 공포, 위협과 공갈 등이 무력화 된다.
    케런트TV 소속 여기자들과 과거 북한당국자들에 의해 자행된 이른바 “관련사건”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고립무원한 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회유하고 협박함으로 이른바 자백을 받아내고 그것을 ‘목적’에 사용했다는 점인데 박 씨의 경우는 너무나 명백한 행위에 그 동기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박 씨가 만일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면 비밀스런 처형 따위 등으로 손쉽게 처리해 버릴 확률이 높지만 자국민보호를 우선시하는 미국 시민인 고로 골치 아픈 일은 벌써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꼴이다.
    사건의 확산을 막기 위해 박 씨를 도강지점인 중국으로 돌려보냄으로 중국의 ‘보호’ 하에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상책일 수 있으나 아직은 두고 보아야 할 터. 어떤 형태로든 박 씨를 추방할 수밖에 없는 북한 당국자들이 혹시 박 씨를 반기독교 선전에 이용할 확률도 없지 않다.
    만에 하나, 미국인 여기자들처럼 ‘조선민족적대 죄와 비법국경출입 죄’를 들씌워 교화형을 집행한다 해도 “내가 북한에 억류되더라도 미국 정부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원치 않는다”고 명백히 밝힌 미국시민 박 씨의 신병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박 씨의 이야기는 케런트TV 소속 미국인 여기자들처럼 세간의 화제가 되어 미국정부를 움직일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하지만 박 씨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김정일 독재정권이 무기력한 순간을 맞게 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