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해 전 스페인을 갔을 때다. 낮에는 관광을 하고 밤에는 스페인 친구들과 현지탐방을 나섰다. 밤에 할 수 있는 현지탐방이라곤 놀이문화, 술이 전부였다.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신나게 클럽에서 춤을 추고 술을 마시고 또 마셨다. 술이 얼큰하게 취해 정신이 멍멍할 즈음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닿자 정신이 조금 드는 듯 했다. 그때 친구 하나가 내 손에 츄러스를 집어줬다.

  • ▲ 스페인 사람들의 숙취음식 츄러스 ⓒ 뉴데일리
    ▲ 스페인 사람들의 숙취음식 츄러스 ⓒ 뉴데일리

    이 길고 늘씬한 도넛에 초코시럽을 찍어 먹으면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셨어도 다음날은 멀쩡하다나 뭐라나. 달달한 맛에 이끌려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맛있게 츄러스를 먹었다. 거짓말처럼 다음날 집에 오는 비행기를 무사히 탈 수 있었다. 물론, 정신도 멀쩡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이 말처럼 술과 잘 연관되는 사자성어가 또 있을까. 아무리 술이 센 주당이라도 흔들어 마시고, 섞어 마시고, 또 마시는데 장사 없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촌 모든 술꾼들이 겪는 일이다. 그러나 숙취로 쓰린 속을 달래는 방법은 나라별, 유형별로 각양각색이다.

    TYPE 1. 속풀이엔 국물이 최고!

    점심시간. 회사 근처 해장국 집이 만원이다. 뜨거운 국물로 해장하려는 사람들이 몰렸기 때문.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러시아도 우리와 비슷하다. 영하 30도 까지 떨어지는 낮은 기온 때문에 음주운전은 처벌감이 아니라는 보드카의 원산지 주당들도 따뜻한 고깃국을 즐긴다.

  • ▲ 한국인이라면 숙취엔 해장국이다 ⓒ 뉴데일리
    ▲ 한국인이라면 숙취엔 해장국이다 ⓒ 뉴데일리

    오이피클이나 고추피클로 만든 절임 국물을 마시는 걸로 해장하는 이들도 있다.

    생김새가 닮아서 그럴까. 가까운 중국과 일본의 경우도 국물로 해장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인들은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주로 차를 마신다고 알려졌지만 사천지방은 좀 다르다. 잉어를 고아 뽀얀 국물에 마늘과 향채를 넣고 시원하게 끓어낸다. 광둥지방도 우리나라의 라면과 가까운 완탕멘으로 속을 푼다. 일본은 나베(국물)요리로 해장할 것 같지만, 가격이 비싸 보통 라멘 국물을 마시며 속을 푼다. 매실장아찌인 우메보시를 숙취용으로 먹는 사람들도 많다.

     

    TYPE 2. 위장을 보호하려면 느끼하게

    그리스 사람들은 술을 잔뜩 마실 것 같은 날에는 미리미리 대비를 한다. 우리나라처럼 숙취 관련 음료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음주 전 날계란과 버터를 먹는 것. 느끼한 버터가 위장내벽에 닿으면 알코올 흡수가 낮아진다고. 이는 홍콩도 마찬가지다. 다음 날 숙취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위 보호하는 방법’으로 널리 사용된다고 한다.

  • ▲ 느끼파들은 이것으로 위장보호 한다. 버터. ⓒ 뉴데일리
    ▲ 느끼파들은 이것으로 위장보호 한다. 버터. ⓒ 뉴데일리

    태국에서는 ‘카이룩퀘이’를 먹는다. 삶은 달걀을 기름에 튀겨 매콤한 소스를 듬뿍 얻은 음식이다. 장모가 술 마신 사위에게 만들어 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우리말로 하면 ‘사위 달걀’이 된다.

    TYPE 3. 토마토 너만 있으면 돼

    미국인들은 토마토 주스에 날계란과 소금, 후추, 브랜드 진을 넣은 프레리 오이스터(Prairie Oyster)를 마신다. 미국의 전통적인 숙취해소 음료라 할 수 있다. 또 토마토 주스와 맥주를 섞어 만든 ‘레드아이’를 마시기도 한다. 술이 취해 눈이 빨개진 눈을 ‘레드아이’라 부르는데, 토마토 내 함유된 비타민과 무기질이 숙취해소에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토마토는 영국에서도 빠질 수 없다. 토마토 주스에 보드카를 넣은 ‘블러드 메리’로 해장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또 특이하게 영국은 어제 마신 술집에서 다시 술을 마시면 숙취가 해소된다고 믿는 풍습이 전해온다. 이 해장술은 개털(Hair of the dog)라 불린다. 개에 물려 아플 때 자신을 문 개의 털을 뽑아 덧대면 상처가 낫는다는 속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술을 깨기 위해 개털을 마시는 영국의 술 문화는 해장술을 즐기는 우리와 닮았다.

    연말연시. 오늘도 당신의 다이어리엔 ‘술자리’가 약속돼 있다면 국가별 이색적인 속풀이로 당신에게 맞는 해장방법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