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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정부가 과연 잘하고 있느냐고 물을 것 같다"
2010년을 '국격 높이는 원년'으로 삼은 이명박 대통령이 '법질서 확립' 의지를 강하게 표명내고 있다. 내년 G20 정상회의 유치와 OECD DAC(개발원조위원회) 가입 등을 계기로 선진일류국가 도약을 위한 기초 요건으로 법질서가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법치 기초가 탄탄하지 않으면 나라가 성장할 수 없다"는 이 대통령 신념이 집권 중반기 국정운영 핵심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법무부 법제처 국민권익위원회 내년도 업무보고에서 강도높은 표현으로 '권력형 비리' 척결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공직자, 고위직, 정치를 포함한 지도자급 비리를 없애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국격을 높이기 위한 여러 사안 중 기본적인 것"이라며 "국격은 경제력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분야가 선진화돼야 한다는 측면에서 그 기본은 법질서가 지켜지고 도덕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소리 높였다.
이 대통령은 또 "국민 모두가 정권이 바뀌면서 무엇보다 법질서를 지키게 좀 해달라고 했다. 고위직 공직자 비리를 좀 없애야 한다는 게 많은 국민 바람이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권력형 비리, 고위공직자를 포함한 사회지도층 비리와 범죄에 검찰이 더욱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한 뒤 "그래야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이 위로받을 것"이라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같은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 가운데 이 대통령은 "잠시 짚고 넘어가야겠다"며 "걸핏하면 정치수사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수사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지 않나. 다만 1심에서 2심, 3심까지 무죄가 선고된 사건은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한다. 검사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일해라"고 당부했다.
특히 이날 이 대통령이 사회지도층 비리 근절을 역설한 것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뇌물수수 의혹과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 불법자금 의혹 등과 맞물리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지난 전국철도노조 파업 등에서 정부가 보여준 원칙있는 대응에 국민적 지지가 모아진 것과 같이 정치권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의 '엄정한 대응'을 간접 주문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실제로 당연히 당당해야 하는 수사도 오해받고 힘든 경우가 있다고 이야기한 것이지 다른 함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으며, 김은혜 대변인은 "꼭 특정사안과 연계할 게 아니라 일반적 원칙을 밝힌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사회각계의 연이은 사면 건의에 대한 정부대응과도 무관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문제와 경제위기 극복 후 재계 사기 등을 감안했을 때 필요성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지만 "생계형 범죄가 아닌 대상의 사면은 없다"는 원칙과 이른바 '국민정서'를 고려할 때 판단은 쉽지 않은 대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지도층 비리'에 대한 이 대통령의 언급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일각의 '1월 사면설'과 관련해 "물리적으로 1월 1일 특별 사면.복권은 어려운 상황인 데다 특히 여론 부담이 큰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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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대통령이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법무부, 법제처, 권익위원회의 내년도 업무보고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뉴데일리 <=청와대 제공>
아울러 이 대통령은 중앙과 함께 지방 토착비리를 뿌리뽑겠다는 의지도 재차 천명했다. 지난 8.15 경축사에서도 "토착 비리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권력형 비리와 토착 비리 근절을 위한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모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이 대통령은 구체적인 사실까지 거론, "홍성군청만 해도 670명 중에 108명이 집단으로 예산을 빼돌리는 데 가담했다. 어떤 직원은 4496만원을 빼돌려 유흥비로 다 썼고, 어떤 직원은 3941만원을 빼돌려 1700만원을 고급유흥주점에서 썼다고 한다"면서 "또 지난 4대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230명 중 10%가 당선 무효로 중도에 물러났고 올해 공기업에 근무하는 임직원 180명중 51명이 구속됐다"고 지적하면서 구조적 비리 대책을 요구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이 볼 때 우리 지역도 그렇지 않을까 의구심이 생길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사람은 심장이 병이 들면 죽지만 모세혈관이 썩어도 결국 괴사하는 이치와 마찬가지"라며 "예산을 아무리 잘 내려보내도 지역에서 공무원이 예산을 빼돌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연고제로 배치되면 제대로 단속이 이뤄질 수 없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편안한 일자리가 보장된 사람이 이렇게 비리를 저지르면 없는 사람은 어깨가 처진다. 이들은 비리를 저지른 권력층 중에서 잡히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국민에게는 법을 지키라 하고 정작 위에서는 범죄가 저질러지면 이런 일을 국민이 어떻게 보겠나"
이 대통령의 법질서 원칙 강조는 결국 국민의 신뢰 강화, 그리고 국격 제고로 귀결됐다. 김 대변인은 "KDI 보고서를 보면 법질서만 제대로 지켜져도 GDP 1%가 상승한다는 보고가 있다"면서 "경제와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법치가 국격을 높이고 국력을 키우는 토대가 될 것이라는 점,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따뜻한 법치를 말한 것"이라고 정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