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25일자 조간신문들은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 23일자 보도 내용을 인용하여 지난 4월에 있었던 <최고인민회의>에서 개정된 북한 헌법의 일부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북한은 이번 헌법 개정을 통해 헌법 조문에서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그 대신 김정일(金正日) 시대의 새로운 통치 이데올로기로 등장한 ‘선군사상(先軍思想)’이라는 용어를 등장시키고 김정일이 맡고 있는 ‘국방위원장’과 ‘국방위원회’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보도에 접하면서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은 “황당하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헌법’은 그 나라의 모든 국민은 물론 관심 있는 모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당당하게 공개되어야 할 문건이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헌법’은 또 하나의 ‘대외비’의 비밀문건이어서 북한 사회 안에서 공개되지 않는 문서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는 007 영화를 연상시키는 온갖 비밀공작적 방법으로 그 내용을 파악하려고 애쓰는 황당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RFA 보도는 이번 북한 개정헌법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주체사상’에 더 하여 ‘선군사상’에 대한 언급을 첨가하고 ‘공산주의’에 대한 언급을 삭제했다는 사실을 중점적으로 전하고 있다. 이번에 개정되기 이전의 1992년 개정 북한헌법에는 다음과 같은 3개 조항에 ‘공산주의’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었다. 제29조(“사회주의, 공산주의는 근로대중의 창조적 로동에 의하여 건설된다”)와 제40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사람들을…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자로 만들며… ”) 및 제43조(“국가는… 후대들을… 공산주의적 새 인간으로 키운다”) 등이다. RFA 보도에 의하면 이번 헌법 개정에서 북한은 이 3개 조항에서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들어냈다는 것이다.
     
     이 보도 내용을 가지고 남한사회의 항간에서는 왈가왈부가 시작되고 있다. 북한 헌법에서 ‘공산주의’라는 용어가 사라진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가 그 중심 화두(話頭)다. 이명박(李明博) 정부에서도 그 뜻이 무엇인지를 놓고 “분석 중”이라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북한에 대하여 호의(好意)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즉 레닌이 말한 '쓸모 있는 바보들'에 해당하는 남한 사회의 '친북·종북‘ 세력들은, 아니나 다를까, 북한 헌법에서 ‘공산주의’라는 용어가 사라졌으니 “북한은 이제 더 이상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이제는 같은 민족의 입장에서 북한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이들의 이 같은 주장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헛소리다. 북한의 경우 ‘헌법’이 갖는 위상은 대한민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이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북한은 ‘헌법’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령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고 명시(제11조)하고 있는 특이한 나라다. 이에 의하면 북한은 <조선로동당>이 ‘국가’ 위에 군림하고 있는 나라다. 그렇다면 “국가의 모든 활동을 영도”하는 실체인 <조선로동당>은 이 문제에 관하여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조선로동당> 규약을 통하여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조선로동당> 규약은 <조선로동당>을 “주체형의 혁명적 마르크스-레닌주의당”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이름은 <조선로동당>이지만 그 실체는 ‘공산당’이라는 것이다. 규약은 이어서 “<조선로동당>은 로동자, 농민, 근로《인테리》를 망라하는 근로인민들 가운데서 근로대중의 리익과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의 승리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복무하는 선봉적 투사들로서 조직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규약은 또 “<조선로동당>은 자본주의 사상과 마찬가지로 국제공산주의 운동과 로동계급 운동에서 나타난 수정주의, 교조주의를 비롯한 온갖 기회주의를 반대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순결성을 고수한다”고 다짐할 뿐 아니라 <조선로동당>의 ‘최종목적’은 “(전국적 범위에서)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고 선언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북한 ‘헌법’에 ‘공산주의’라는 용어가 등장하나, 하지 않나의 여부와 상관없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의 북한은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임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결국, 북한이 이번 헌법개정에서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삭제했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옹” 하는 것에 불과하다. 명백한 사기행위인 것이다. 북한 동포들보다도 남한 동포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기행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