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쿠자’의 실체

     

                권력이 있는 곳에는 폭력집단이 기생하게 된다. 그런 집단의 구성원을  서양에서는 ‘마피아’라 하고, 일본에는 ‘야쿠자’라고 하며, 우리의 경유는  ‘깡패’하고 한다. 폭력집단의 구성은 처음부터 끝까지가 힘을 위주로 성립된다. 따라서 그들의 세계에는 출신 지역도, 재산도, 학력도 아무 소용이 없다. 오직 상대를 제패(制覇)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프로 축구나 야구와 같은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5패나 10패를 안고서도 우승에 도전할 수가 있으나, 폭력집단에선 단 1패가 파멸로 이어질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폭력집단의 조직이나 행태를 보면 이웃나라 일본의 ‘야쿠자’조직을 흉내 내고 그 행태를 따르려는 경향이 많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천양지차가 있다. 가령 영화나 TV드라마에서 묘사되는 폭력집단의 형태는 그 조직의 본질이나 관행과는 사뭇 다르게, 아니 대단히 엉터리로 묘사되어 있어 잘 아는 사람의 눈에는 아이들 장난같은 치기로 보일 때가 많다.
               
                우선 ‘야쿠자’라는 용어부터가 그렇다. 우리는 항용 깡패라는 뜻으로 쓰고 있고, 더러는 건달이라는 뜻으로도 쓰는 경향이지만, 어느 경우도 야쿠자의 본뜻과는 거리가 멀다. 또 ‘야쿠자’가 일본어여서 거기에 해당하는 한자(漢字) 표기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 또한 가당치 않다. 야쿠자라는 말은 일본에서만 씌어지는 특수한 말로 <8 · 9 · 3>이라는 숫자에서 비롯된다.  

              <8 · 9 · 3>을 일본말로 읽으면 ‘야쿠자’로 발음이 된다. 본시 야쿠자  조직의 똘마니들은 놀음판(도박장)에 가서 활동자금을 마련하던가, 혹은  조직에서 도박장을 운영하여 조직의 자금을 마련하는 등, 야쿠자와 놀음판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데, 그 놀음판에서 <8 · 9 · 3>의 패를 잡으면  ‘멍통’이 되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패가 된다. 그러므로 ‘야쿠자’라는  말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뜻이 된다.

              소위 명치유신 이전의 일본에서는 고향을 떠나(脫藩했거나)서 떠돌아다니는 무사를 로오닝(浪人)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칼싸움에 능해야 되고, 때로는 패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조직화된 힘이 필요하였다. 결국 상하의 위계가 확실하고 의리를 소중히 하는 그런 집단이  ‘야쿠자’ 조직의 원형이 되었다. 그러므로 폭력조직의 대명사와 같은 야쿠자의 역사는 1백년을 조금 상회한다.

               지금의 일본 열도에는 <야마구치구미山口組>, <사카우메구미酒梅組> 등과  같은 거대한 야쿠자의 조직이 상존하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야쿠자의 조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행범이 아니면 체포하지 않는다는 당국과의 묵계가 있어 도심 한가운데에 무슨무슨 구미組라고 씌어진 금빛 찬란한 간판이 걸려 있을 정도의 이율배반이 연출되고 있다. 그 이율배반은 일본의 공안당국이 야쿠자 조직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특정한 사건이 발생되지 않으면 그들을 체포하거나 소탕하지 않는데서 입증된다.

                  야쿠자 조직의 단위를 구미(組)라고 한다. 그러나 그 구미에도 급이 있다. 가장 말단의 조직인 ‘구미’를 이끄는 이른바 오야붕(組長:구미쪼)이 되기 위해서는 최하 20명의 부하를 거느려야 한다. 하나의 조직이 탄생하는  경우 말단의 조직원들이 스스로 상전으로 모실 오야붕을 선택하게 된다.  소위 쿠렌타이(愚聯隊)라 불리던 똘만이가 스스로 목숨을 바쳐서 떠받들  ‘구미초’를 선택하여 ‘오야붕’으로 섬기는 까닭으로 이 조직에는 배신이 존재하지 않으며, 어쩌다 배신행위가 있었다면 소속된 조직에서 쫓겨나(破門)는 것은 물론, 다른 조직으로 옮겨갈 수가 없을 정도로 야쿠자의 세계는 법도가 엄중하다.
                 최하 단위의 말단 구미(組)는 조금 더 큰 조직(역시 구미다)에 예속되어야 활동하기가 편하고, 조직의 권위가 높아진다. 다른 말로 설명하면 20명 정도의 수하를 거느린 작은 조직을 대여섯 혹은 여남은 개를 거느린 중간 보스의 조직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작은 조직은 중간 조직을  홍케(本家)라고 높여 부른다. 이때는 홍케의 오야붕(큰 구미초)이 거느리게 될 작은 조직을 엄격히 심사하여 받아드리게 되고, 그 징표로 사카스기(盞)라 일컬어지는 술을 나누어 마시는 의식을 통하여 형제의 의리를 돈독히 한다.

                   또 이들 중간 보스들은 자신들의 위엄과 조직의 권위를 위해 더 큰 조직에 예속된다. 대여섯여 개의 조직, 혹은 10여개의 기초조직을 거느린 이른바 중간보스를 또 20여명 이상을 거느린 조직이 소위 일본 폭력조직을 대표하는 야마구치구미(山口組)나 사카우메구미(酒梅組)와 같은 거대조직이 된다. 따라서 이들 대조직의 구성원은 1만 명을 훨씬 넘는다. 

                    사카우메구미는 1백 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큰 조직이며, 지금은 5대째 두령인 다니구치 마사오(谷口正雄)회장이 그 권위와 재력과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 조직의 내부에는 샤테이 가시라(舍弟頭), 샤테이(舍弟), 샤테이 호사(舍弟補佐) 등과 같은 중간간부들의 계급을 두어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이끌어 가게 한다.  조직의 큰 행사가 있으면 이들 중간간부들은 검은 색 정장에 각각 수술이 달린 금과 백급으로 된 배지를 달고 자신들의  권위를 과시한다. 
                  엄정하게 확립된 법도와 리더십이 없고서는 폭력집단의 역사가 1백년 이상임을 자랑할 수는 없지를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