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입당 1년 9개월만에 집권여당 대표 자리에까지 오르는 행운을 거머줬지만 그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아직 한나라당의 파란옷이 썩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말하는 당 관계자도 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손잡았던 일 때문인데 쉽게 지워지지 않을 과거다.

    정 대표가 15일 중앙당 사무처 실·국장들과의 상견례에서 2002년 대선을 회고하며 "7년 전 일로 고생을 시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5번의 의정활동 때와 달리 그는 이제 든든한 둥지를 텄다. 2002년 못이룬 대권 꿈도 다시 꿀 기회를 찾았다. 그가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당 대표직을 활용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168석의 거대 집권여당 대표란 직함은 정치적 자신을 늘릴 절호의 기회임이 분명하다.

  • ▲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가 1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가 1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주위에서 일정표를 보고 놀랄 만큼 그는 취임 이후 광폭행보를 하고 있다. 분 단위로 일정을 쪼개 잡는다고 한다. 일정이 워낙 빠듯하지만 약속한 일정은 꼭 지키고 있다.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박진 외교통상통일위원장 주최 세미나에는 일정이 바빠 참석이 어려울 것이란 메시지를 전달했으나 결국 토론 끝 무렵 도착해 축사를 하는 열의를 보였다. 정 대표의 이런 행보는 여당 대표란 무거운 직책 때문일 수 있으나 그 이면에는 '이방인'이란 꼬리표를 떼고 당에 뿌리를 내려 자신의 대권 꿈을 이룰 토양을 만들겠다는 정치적 판단에서 일수도 있다.

    이런 정 대표의 행보에 당 내부 평가는 일단 긍정적이다. 정 대표 취임 뒤 당 지지율도 상승세를 타고 있고 그의 활발한 행보 덕분인지 박희태 전 대표 시절의 노쇠한 당 이미지도 벗었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평이다.

    자연스레 정 대표도 점차 자신감을 얻는 모양이다. 취임 초 조심스럽던 그의 발언에도 조금씩 힘이 붙고 있다. 이날 오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사회자가 정 대표를 소개하며 소속 의원들에게 박수를 요청했는데 박수소리가 생각보다 작자 정 대표는 "박수 많이 친 사람은 복 많이 받으실 겁니다"라고 농을 던졌다. 참석한 의원들이 크게 웃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박희태 대표가 사임함에 따라 대표직을 승계한 지 일주일 하고 하루가 더 됐다. 그동안 노량진 수산시장도 가보고 청와대 가서 아침식사도 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 동료 의원들도 내가 얼마동안 더 대표직에 있을지 모르고 나 자신도 모르지만 많이 가르쳐 주고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도와달라는 당부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리 힘이 실렸다. 그의 말에 회의장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러자 정 대표는 숨을 고른 뒤 목소리 톤을 높여 소속 의원들에게 "이럴 때는 박수치셔도 됩니다"라고 다시 농을 던졌는데 의원들의 박수소리는 처음과 비교해 확연히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