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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아래 주민들이 곤히 잠든 6일 일요일 밤, 북한측이 임진강 황강댐을 갑자기 방류하여 어린이 한명을 포함한 우리 주민 6명이 사망·실종되었다. 사전 통보도 사후 경고도 없었다. 우리측 전화통지문을 받고서야 북한은 "언제(댐) 수위가 높아져서 긴급 방류했다"고 말했다. 아무런 해명도 사과도 없었다. 최근 임진강 상류에는 큰비가 오지 않았는데 수위가 높아졌다는 것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많은 물을 방류할 때는 사전 통보 하겠다"는 말도 여러 번 들어온 소리다.
북한은 이미 2002년 1월에도 임남댐을 방류하여 북한강 일대에서 막대한 물난리를 일으킨 일이 있었다. 현지 주민들은 벌건 흙탕물이 "서서왔다"며 산허리에 휩쓸린 초목과 철교에 얹힌 나무등걸을 가리켰다. 당시에도 피해가 막심했건만 김대중 정부는 군사기밀이라며 숨겼다.
이 기밀 아닌 기밀은 신동아 5월호에 실린 필자의 논문에 의해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북한측이 여수로를 만들지 않은 채 담수를 강행하여 장마철에 물이 차올라 태백산맥 터널로 충분히 흘려 내보내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댐이 붕괴될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이 사실이 위성사진으로 판명되어 전 세계의 비난여론이 거세어지자, 북한은 그제서야 댐을 높이고 여수로를 만드는 공사를 서둘렀다. 정부도 부랴부랴 '평화의 댐' 증축에 나섰다. 그해 장마철에 임남댐은 붕괴위기를 간신히 넘겼었다. 만약에 별 대책 없이 임남댐이 붕괴되었더라면 20억t에 달하는 물이 쏟아져 내려와 수도권 일대를 덮쳐 수십만의 사상자를 냈을 것이다.
국제법상 국경을 가로질러 흐르는 국제하천은 상류국과 하류국이 '형평의 원칙'에 따라 협력하여 이용하도록 되어 있다. 상류국은 유사시에 하류국에 사전통보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상류국은 하류국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강물을 이용할 의무가 있다. 상류국은 고의 또는 과실로 하류국에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배상하여야 한다.
북한측이 임진강과 북한강의 이용을 둘러싸고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게 된 것은 물론 북한의 잘못이지만, 우리측에서도 역대 각 정권마다 북한에 대하여 법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탓도 있다고 생각된다. 1986년 금강산댐 사건이 터졌을 때도 전두환 정권은 금강산댐의 저수량을 200억t이라고 부풀려 국민을 수공의 공포 속에 몰아넣고 이를 정권유지에 이용했었다.
민주화 정권에서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영삼 정권은 1996년 11월 금강산댐 1단계 공사가 끝나 45㎞ 터널을 통해 동해로 물을 보내 발전에 들어갔는데도 이를 숨겼다. 김대중 정권은 6·15 선언이 있던 2000년 여름부터 임남댐의 담수가 시작되어 18억t의 물이 단절되어 북한강 유역의 주민들이 농업용수와 공업용수가 바닥이 나고 심지어는 식수에까지 문제가 발생하였어도 이런 사실이 보도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북한에 전력 원조라도 해야 할 판에 북한강 물을 막아 스스로 발전을 하겠다는데 이를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식이었다. 심지어는 통일이 되면 금강산댐도 우리 것이 될 텐데, 남북협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때에 그런 걸 가지고 다투어서 되겠느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안이한 태도가 오늘의 임진강 비극을 불러일으키는 데 일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북한측이 하류 주민의 피해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자행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집단적 살해다. 피해주민들은 북한측에 손해배상을 요구해야 한다. 피해실상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 전 세계 여론에 호소하여야 한다. 정부도 희생자들의 손해배상을 북한측에 요구하고 사과는 물론 책임자 처벌 등 재발 방지를 보장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만일 북한측이 이를 거부하고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기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 미국 등 우방국의 협조를 구하여 유엔 등 국제조직을 동원하여 북한의 비인도주의적 범죄행위에 대해 대응조치를 취하도록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