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석영 돌출발언에 대해 어떤 評者는 "광대 황석영으로 하여금 놀게 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남북관계가 지금처럼 경색된 국면에서는, 그리고 좌우가 다같이 '올드'에 머물러 있을 수록, 황석영 같은 狂詩劇 연출자의 놀이공간을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다. 評者는 이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이번 황석영 돌출의 문제점을 길게 나열하는 '알리바이 남기기'도 잊지 않았다.

    다른 많은 사람들 역시 황석영의 광대 기질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가 한 두 번 이런 쇼맨쉽을 부린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익히 다 알고 있다. 그리고, 舊좌파의 고질적인 '발끈'과 '너는 변절자' 운운 하는 상투적인 버르장머리와는 달리, 그를 처음부터 '그저 그렇고 그런 정도의 인물'로 치부해 온 자유민주 진영은 그의 하이 코미디를 우습게 경멸할지언정, 그것을 그렇게 심각하게 중요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해도 그를 그 評者처럼 "그래, 너 어디 한 번 마음껏 놀아봐라"며 마냥 놔둘 수만은 없는 것이 한반도의 예사롭지 않은 현대사였다. 대한민국은 황석영 같은 광대에게 '네 마음대로 해봐라'를 허용했더라면 그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던 나라였기 때문이다.

    해방공간의 汎좌파 '민주주의 민족통일전선'이 대한민국 건국노선을 거의 90% 숨죽여 버리다싶히 했을 때, 6.25 남침으로 나라가 아예 송두리 째 없어질 뻔 했을 때, 그리고 김일성의 4대 군사노선을 대한민국의 산업화 노선으로 뒤집어 놓으려고 했을 때, 그 때 만약 황석영 같은 '뭐가 뭔지 모를 중도'의 광대놀이 따위가 딴 판을 벌려 제멋대로 놀 수 있었더라면 대한민국 건국도, 9.28 수복도, 세계 10위의 산업국가도 십중팔구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 황석영 式 광대놀이는 중간의 많은 군중의 시선을 대한민국의 생존 투쟁으로부터 그의 '재미있는' 狂詩劇으로 돌려놓았을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대한민국을 결과적으로 無主空山이자 '관중 없는 소수파'로 전락시켰을 것이기 때문에.
    황석영 式 광대놀이는 그래서 중간의 많은 군중을 대한민국으로부터 빼내 그들을 '중립화' 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기 십상이다.

    이래서 황석영 式 광대극에 대해서는 군중이 그 쪽에 한 눈 팔지 못하게 분명한 반론을 펴야 할 일이지 "네 마음껏 놀아봐라"며 흥을 돋워 줄 일이 아니다. 한반도와 대한민국의 상황은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스타 중독자를 제 맘껏 놀게 해도 괜찮을 만큼 그렇게 여유롭지도 한가롭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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