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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언.
북한은 통미봉남(通美封南)이다. 그들의 대외정책은 미국과 직거래하고 대한민국을 무시한다는 원칙으로부터 단 한 치도 이탈한 사실이 없다. 문제는 통미봉남의 실체와 폐해를 제대로 인식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이다. 김정일 정권에 맹종하는 시대착오적 극소수 종북파(從北派)를 제외하고도,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조차 ‘어쨌거나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이어가는 편이 아예 접촉 자체를 단절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아니냐’고 발언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질문의 초점을 이렇게 바꿔보자. 만약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한반도의 대표성을 획득하고, 대한민국을 포함한 전체 한반도의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대한민국을 대신하여 모든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거듭 말하지만, 북한은 이러한 명분을 쌓기 위해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 왔다.
예컨대, 국가 대 국가의 행사로서 국기게양 국가연주 등의 프로토콜을 준수해야 하는 월드컵 예선 대 대한민국전 홈경기를 평양에서 개최하지 않았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렇게 했다. 단적으로 말해, 대한민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국가’로 인정하고, 이러한 행동을 명시적으로 혹은 묵시적으로 반복해서 추인하는데, 북한은 일관되게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한다면? 국제사회는 북한을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국가로, 대한민국은 북한의 인정을 받지 못한 나라로 인식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국제사회가 한반도를 대표하는 협상의 당사자로 북한 당국을 선정하더라도, 대한민국은 이를 반박할 뚜렷한 근거를 갖지 못한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북한은 통민봉관(通民封官)이라는 새로운 대남정책을 들고 나왔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와 달리, 이명박 정부가 무한정 대북 퍼주기 정책을 폐기하고 조건부 지원책으로 기본노선을 바꾸겠다고 천면한 직후에 생긴 변화다. 노동신문 사설과 자체 방송을 통해 ‘이명박 반역도당’ 운운하며, 그것도 하루에 수 십 번씩 반복해서 욕설을 해가며 협박을 하는데도 우리 정부가 굴복하지 않자 작전의 대상을 바꾼 것이다. 여기서, 김정일에 대한 비난은 아무리 미세한 것일지라도 반드시 시비를 거는 자들이, 심지어는 ‘위대하신 장군님이 반바지를 입고 계신 사진을 남조선의 신문들이 어찌 감히 게재할 수 있느냐, 장군님은 인민대중들에게 맨살을 보여서는 안되는 지엄한 존재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자들이 어찌하여 상대방은 조금도 존중해주지 않느냐는 이야기는 이 글은 논점을 벗어난 것이니 더 이상 거론하지 말기로 하자.
대한민국 정부와는 관계를 끊더라도 민간과는 대화의 통로를 열어두겠다는 이야기는 일견 대화의 전면단절이라는 파국을 조금아나마 막아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힐 수도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통미봉남과 마찬가지로, 통민봉관은 대한민국 정부를 국제사회와 국민으로부터 고립시키겠다는 철저한 의지의 확고한 표현이다. 문제는, 북한의 ‘민’이 우리가 생각하는 ‘민’과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사실이다. 대한민국과 북한 사이에는 어떠한 민간교류도 성립할 수가 없다. 법률과 인권사상의 보호를 받으며 자유롭게 자신의 행동과 삶에 결정권을 행사하는 ‘근대국가의 국민’이 북한 내부에는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의 실례가 이를 증명한다.
1.2006년 10월 31일 금강산에서 6,.15 남북 문학인협회라는 단체가 창립대회를 가졌다. 남과 북의 문학예술인들이 회원으로 참가했다는 이 단체의 염무웅(廉武雄) 남측 대표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남북 문단이 60여년 동안 둘로 나누어진 채 문학 활동을 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협회의 결성은 분단 문학을 극복하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 앞으로 남북 동포들에게 용기를 주는 창작활동을 통해 모국어공동체를 형성해나갈 것”이라며 “비록 문학이 현실적 힘은 없다지만 좋은 창작 활동을 해나간다면 평화적인 세계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단체의 결성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염무웅 위원장의 인식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본질적인 문제점을 내포한다. 첫째, 남과 북이 사용하는 ‘문학’의 기능과 역할 및 정의는 그 포괄하는 층위와 범위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 둘째, 인류 문명 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전체주의 사회인 북한의 경우, 예술가라는 직군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2.
대한민국의 예술가들은 근본적으로 개인의 자유가 예술 창작의 근간이며, 국가 권력이 이에 개입하거나 훼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굳게 믿는다. 나아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어떠한 압력에도 분연히 맞서 싸울 것임을 거듭 천명한다. 심지어는 좌파 성향의 단체로 분류되는 민예총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표현의 자유와 영상물등급위원회 개혁을 위한 포럼"이라는 단체의 결성 선언문에도 이 점이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2001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 김수용)와 문화관광부(장관 김한길)가 제출한 "영화의 상영으로 인한 실정법 위반의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위법행위 여부를 사전에 심의하는 것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인정하고 있다."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영화진흥법 등급보류 조항의 위헌을 결정하였다. 더불어 헌법재판소는 위헌결정문에서 "언론 출판에 대하여 사전검열이 허용될 경우에는 국민의 예술활동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침해하여 정신생활에 미치는 위험이 클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이 집권자에게 불리한 내용의 표현을 사전에 억제함으로써 이른바 관제의견이나 지배자에게 무해한 여론만이 허용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헌법이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는 표현의 자유가 개인의 인권일 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회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임을 인정한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다. 이에 따라 많은 시민단체와 문화단체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영상물등급위원회가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제조치를 취해줄 것을 기대하며 개혁적 조치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영상물등급위원회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에도 표현의 자유확대를 위한 개혁적 조치는커녕 "18세등급분류영화의 비디오 재심의 규정 신설", "제한상영등급분류 기준"의 강화, 비디오 등급보류 조항의 존치 등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검열기관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오며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우롱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문화예술계가 거듭 주장해 왔듯이 영상물등급위원회 및 등급심의 체계 개혁은 문화예술의 발전과 국민의 문화적 권리확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며,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 취지와도 부합되는 것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당연한 책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물등급위원회와 관련 당국이 아무런 가시적·명시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은 반문화적 행위이며, 직무유기 임이 분명하다. ... 우리는 이러한 결론과 다짐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표현의 자유와 영상물등급위원회 개혁을 위한 문화예술인 포럼"를 출범하며 이 성명서를 통해 발족선언을 대신한다. 앞으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비민주적인 흔적이 사라질 때까지, 우리 사회에 표현의 자유와 관객의 문화 향유권을 제약하는 제도와 관행에 맞서 싸우며, 지속적인 활동을 벌일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 ...영등위 개혁포럼"은 결성과 더불어 아래와 같은 사업들을 수행하기로 하였다.표현의 자유와 영등위 개혁을 위해 다양한 장기적 사업들을 펼친다.
① 표현의 자유와 영등위 개혁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연구하여 수립한다.
② 문화계, 법조계 등이 협력하여 표현의 자유와 영등위 개혁을 위한 각종 연구 개발 사업을 벌인다.
③ 표현의 자유와 영등위 개혁을 위해 형법체계 개선 등 제반 법률을 검토하고, 법제 정비 방안을 제시한다.
④ 표현의 자유와 영등위 개혁을 위한 토론회, 공청회 등을 개최하여 지속적으로 사회적 여론을 환기시킨다.
⑤ 표현의 자유와 영등위 개혁을 위한 홈페이지 운영한다.스크린쿼터를 유지하자는 문제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강경한 목소리를 내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하는 영화에술인들이 검열문제에 대해서는 정부의 간섭배제를 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논리적 일관성의 결여’는 이 글의 주요 논점이 아니므로 더 이상 거론하지 말기로 하자. 위 성명서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가 담보되지 않은 어떤 예술 행위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권력이 창작행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은 어떤 경우든 불순하며 부당한 일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정치권력이 정권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예술가들을 강제로 동원하는 일은 예술가들의 인권에 대한 직접적 침해다. 따라서, 인간의 삶을 집약적으로드러내고 형상화하여 인간성의 향상에 기여하는 신성한 소명을 지닌 예술가들이, 세계 각지에서 자행되고 있는 예술에 대한 강압적 간섭과 인권침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도덕적으로 정당할 뿐 아니라 작가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길이기도 하다.
3.
그렇다면, 6,.15남북 문학인협회에 참여했던 대한민국의 문인들은 북한에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작가들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전체주의 사회인 북한에도 개인의 창의력과 개성을 발현하며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있다고 믿는 것일까? 나아가, ‘국민의 예술활동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침해하여 정신생활에 미치는 위험이 클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이 집권자에게 불리한 내용의 표현을 사전에 억제함으로써 이른바 관제의견이나 지배자에게 무해한 여론만이 허용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헌법이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창작의 자유가 모범적으로 지켜지고 있다고 믿는 것일까.
북한의 문학 이론서는 문학의 기능에 대해 “로동계급의 혁명적 문학은 지구 위에서 착취제도와 착취계급을 종국적으로 쓸어버리고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 복무하며 인민대중을 공산주의 세계관으로 무장시키며 온 사회를 혁명화·로동계급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임 kf은 무슨 뜻인가. 그 자체로 궁극적인 의미를 지니는 독자적인 활동으로서 자발적 의지와 선택에 따라 창작과 향수에 임하는 개인들의 복지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정치의 하위개념으로서 공산주의 이념에 종속되어 선전과 선동의 임무를 담당하는 것이 문학 고유의 기능과 역할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북한의 문학은 언제나 정치에 종속된 부가물이었으며, 문학인들은 개인의 의지가 작용할 수 있는 여지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상황에서 당의 지시에 따라 당이 정해주는 주제와 소재를 가공하는 ‘기계적 기능인’이었다.
4.
1940년대 중반, 북한의 문학예술의 중심 이념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social realism)'였다. 민족의 주체적 역량과 자주성을 강조하며 제국주의 배제를 부르짖으면서 외국인이자 제국주의의 화신인 레닌이 강조한 소비에트 문예운동의 이념과 실행방안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 사실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나마 소재선택 등에 있어서 예술가의 자유를 제한적으로나마 허용했던 이러한 움직임은 47년 이후 자취를 감춘다. 북한 문단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월북 문인들은 1947년 3월 "북조선에 있어서의 민주주의 민족 문화 건설에 관하여"라는 당 중앙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개인’이 아니라 ‘집단과 단체’에 소속된 부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문학인을 포함한 모든 예술인들은 당의 직접적인 지휘 감독을 받는 단체에 소속되어 건국사상 발양사업에 총동원되었으며, 단체에 속하지 않은 예술가들은 작품을 창작하고 발표할 어떤 수단도 가질 수 없었다. 그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1950년대에 접어들어 북한의 문학은 정치적 선전 선동 이라는 고유한 기능 이외에 ‘우상숭배의 도구’라는 기능을 추가로 탑재한다. 남로당의 몰락과 김일성으로의 권력 집중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조치였다. 한설야(韓雪野)를 주축으로 남로당 계열이 지도부를 장악했던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 해체되고, 1961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 창립되었다. 이른바 김일성의 유일사상을 지지 고무하는 ‘항일혁명문학’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문학을 개인의 신격화에 본격적으로 동원하는 체제가 완성된 것은 김정일이 문학예술계에 본격적으로 간여하기 시작한 1960년대 후반부터인데, 그는 1973년에 간행한『영화예술론』에서 ‘작품의 사상적 알맹이가 중요하며 소재, 주제, 작품의 전개에 이르기까지 사상의 핵을 견지하여야 한다’는 소위 ‘종자론’을 주창한다. 작품의 주제, 소재, 내용을 통제하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창작의 전과정을 규제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러이러한 작품을 만들라는 당의 지시가 내려오면 북한의 문인들은 먼저 작품 게획서를 제출합니다. 이것이 상부의 승인을 받으면 창작 초대소라고 부르는 집필실로 입주합니다. 한동안 거기 머물면서 작품을 씁니다. 완성된 작품은 다시 당의 최종 승인을 받아서 발표합니다.
1990년대 이후 북한 예술계의 최고 창작 원리는 ‘주체사실주의’다. 이 이념이 김정일 시대의 예술활동을 관통하는 중심이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에 기초한 주체의 문예관’이라는 것이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이지만, 이 이론의 핵심은 ‘수령에 대한 충성’이다. 모든 문학 창작과 향유의 유일한 기준이 수령에 대한 충성을 얼마나 강조했느냐 하는 것인데, 그들이 ‘주체사실주의에 입각한 전무후무한 주체문학’이라고 주장하는 <불멸의 력사>만 보더라도 이 점은 분명하다. 이 작품은 김일성, 김정일의 일대기를 그린 대하 연작소설이다. 이 작품을 여럿 가운데 두드러진 작품이 아니라 ‘최고의 유일한 공식문학’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김일성 부자에 대한 우상숭배 작업에서 문학은 그 첨병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5.
항간에는 ‘조선민족제일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북한 문학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므로, ‘민족’을 매개로 접근하면 여러 가지 오해가 풀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민족’이라는 낱말의 어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말하는 ‘민족’은 ‘김일성 민족’의 줄임말이다.
‘김일성 민족’이란 종교와 신화의 개념이 부가된 말이다. 어떤 경우든, 민족의 중심에는 김일성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의 육신은 죽고 없지만 혼령이 남아 여전히 민족혼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개념이다. 김일성이 태양처럼 민족의 중심에 존재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동심원을 이루며 그의 주변에 위치하는데, 김일성을 제외한 다른 사람은 당과 수령에게 충성하는 과정을 통해 동심원의 안쪽으로 접근해 들어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김일성은 절대불변의 신적존재라 그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 민족 자체가 김일성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비로소 존재하며, 그의 존재가 없이는 우리 민족 자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놀랍고 해괴한 이론. 북한이 말하는 ‘민족’이란 단어에 내재한 진의는 바로 이것이다.
6.
북한과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증거로 공동의 언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드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중요한 개념을 두고 근본적인 견해차가 생긴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의사소통은 더 이상 이뤄질 수 없다. 다음 글이 그러한 실례다.
2005년 8월 25일자 진성호 기자가 쓴 조선일보 태평로 칼럼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진 기자는 네티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부실 도시락 사건과 신생아를 장난감처럼 촬영한 사건에는 흥분하고 분노하면서도 왜 ‘신생아를 엎어놓아 이틀 만에 숨지게 하고, 산모의 배를 걷어차는 북한사회의 인권문제에 대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느냐고. 진 기자는 이러한 사실이 국가인권위가 펴낸 북한 인권실태보고서에 모두 나오는 이야기라며 그렇다면, 즉 사실이 어떤지를 뻔히 알면서도 침묵을 지키는 것은 ‘좀 불공평한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문제는 일반 시민이 이러한 자료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신동아 2005년 9월호에 따르면 국가인권위는 ‘북한 인권에 대한 의견을 내면 인권위는 시민단체에 버림받아 존립에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인식 하에 보고서의 일반공개를 사실상 가로막았다.
두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인권위의 행태에 논리적 일관성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동년 8월 25일 한민족 인권수호 대학생 위원회는 국가 인권위 앞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침묵하는 국가인권위 규탄대회’를 갖고, 사진전시, 항의 퍼포먼스 등의 행사를 열었다. 그들은 국가인권위가 초등학생 일기검사, 중고등학생 두발자유화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물론, 천성산 도롱뇽이나 새만금 백합조개의 생존권 수호운동을 전개할만큼 정보 수집력이 뛰어나고 나아가 생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진 조직이라는 점을 잊은 듯 하다. 이렇듯 뛰어난 역량을 가진 단체가 지구상에서 자행되는 가장 심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사정이 이렇다면, 진성호 기자와 한민족 인권수호 대학생 위원회는 국가인권위가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이유를 먼저 살펴야 했다. 국가인권위는 기본적으로 북한에 인권에 관한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권이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다. 여기에 사태의 핵심이 있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 II>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로마인들은 문명이 가장 발달하였을 때에도, 전쟁에서 승리하고 난 후 적장을 그들의 마차로 끌고 와 살육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그들의 포로들을 곡마단의 맹수들에게 던져 주었다. 한 로마시민을 처형하려는 생각에 대해 열변을 토했던 키케로도 승리를 축하하는 이러한 끔찍한 야만적 행사에 대해서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야만족은 로마인과 같은 인류종족이 아니라고 본 것이 분명하다.
위의 인용문이 보여주는 것처럼, 어떤 생명체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기준은 그 생명체를 인간으로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극적으로 갈라진다. 인류문명사에서 강간을 장려하고 결혼을 비난한 사회는 어떤 경우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단, 노예의 경우라면 기준이 달랐다. 노예의 주인들 끼리는, 노예를 강간하는 것은 그다지 비난받을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노예들과 결혼하는 것은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체제파괴적 행위로 인식되었다. 노예의 주인들은, 노예를 인간으로, 즉 ‘우리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이는 누군가를 절대로 인정하거나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국가인권위가 북한에는 인권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은 그들이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감금되어 상시적인 고문과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생명체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자체가 없는데 어떻게 문제제기를 하고 나아가 이를 거론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인권위가 초등학생 일기검사, 중고등학생 두발자유화 문제에 흥분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권리가 침해된 데 대한 인류애적 의무의 발로이고,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인권은 인간에게만 있을 수 있다’는 엄밀한 사실인식에 기초한 이성적 반응일 뿐이다. 이 점을 착각해서는 곤란한 일이다.7.
북한의 모든 문학 작품은 ‘로동계급의 전위당’인 노동당의 지도에 따라 창작·보급된다. 평양의 사회과학출판사가 1973에 펴낸『우리 당의 문예 정책』에도 ‘작가·예술인 등의 대열을 튼튼히 꾸릴 데 대한 우리 당의 정책’과 ‘문학 예술사업에 대한 당의 영도를 강화할 데 대한 우리 당의 정책’이 중요하다며 별도의 페이지를 할애하여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의 문학 예술은 절대로 혁명의 이익과 당의 노선을 떠나서는 안되며 착취계급의 취미와 비위에 맞는 요소를 허용하여서도 안됩니다. 오직 당의 노선과 정책에 철저하게 의거한 혁명적 문학 예술만이 진정으로 인민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근로대중을 공산주의적 인간으로 교양하는 힘있는 무기로 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는 북한의 문학이 당의 노선과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우회적 고백이다. 문학이 철저하게 당과 정치에 종속되어 지도 감독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그 얼마나 폭력적이며 반 인권적 선언인가. 민예총 홈페이지에는 문화에술에 대해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작가들이 국제적 연대를 만들어 투쟁에 나서자는 글이 실려있다.
우리가 지칭하는 폭력은 무력 행사만이 아니다. 무력이 행사되도록 방관하는 무관심과 이기주의도 폭력이다. 다른 지역, 타인들에게 자행되는 폭력을 용납하면 세상이 점점 폭력으로 넘쳐, 언젠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로 폭력이 돌아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간의 현실은 약육강식일 수밖에 없다는 체념이 폭력을 배양한다. 인간은 동물이 아니며, 국가와 집단과 개인들끼리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지금의 현실을 인간이라면 용인해서는 안 된다. 현실이 이토록 타락한 책임은 누구보다 먼저 인류의 윤리와 심성에 대해 고민해야 할 작가들에게 있다. 우리 아시아 작가들은 비통하게 반성하며, 문학으로써 사회와 역사를 고양시키는 숭고한 임무를 지고자 한다. 전쟁과 폭력을 종식시키려면 지역과 인종, 국적을 뛰어넘는 공감과 의지가 필요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문화의 교류요 문화를 통한 상호 이해다.‘북한’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실정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뉘앙스를 풍기는 이 글에서 인류보편의 분노와 사명감을 읽는다. ‘무력이 행사되도록 방관하는 무관심과 이기주의도 폭력’이라는 문장은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대한민국의 문인들이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된다는 절규이며, ‘다른 지역, 타인들에게 자행되는 폭력을 용납하면 세상이 점점 폭력으로 넘쳐, 언젠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로 폭력이 돌아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문장은 왜 우리가 폭력과 억압으로 점철된 북한 정권을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된다는 힘 찬 웅변이다. 윗 글은 최근에 쓰여진 최연홍 시인의 글과 글자 그대로 수미쌍관(首尾雙關)을 이룬다.
북한에 문학은 없다. 있다면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숭상문학 정도다. 통일 역시 김일성-김정일 식 통일이라면 이번 금강산 회동은 지극히 낭비적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본다. 레닌은 공산당 혁명이 성공하면서 문학을 공산주의 혁명 도구로 치부했다. 모택동과 김일성도 마찬가지다. 문학으로서의 문학은 반동이고 퇴폐적이고 친부르주아라며 숙청했다. 지금도 북한은 남한 문학은 물론 세계의 문학을 인간을 무기력하게 하고 퇴폐시키는 반동문학으로 단정한다.
그런 북한의 문인들이 남한 문인들과 만나 문학다운 문학을 논의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남한의 민족ㆍ민중 지향의 문인들과 공동의 영역이 있을 것 같지만 결국엔 아무런 결실도 보지 못하고 남한 시민들의 혈세 낭비로 끝낼 가능성이 높다. 북한과 만나서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온 회의를 아직 본 적이 없다.
문학의 최상위에는 당성이 있어야 하고 김일성 김정일의 가르침이 있어야 하는데 남한의 민중ㆍ민족
문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인들의 마음속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노동자, 농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모티브와 일치하더라도 북한의 김정일 명령 아래서 제작되는 문학은 너무 유치하고 단순하다.
북한은 1947년 9월 문학의 당성 원칙에 반대했던 시인과 작가들을 종파분자로 규정, 숙청했고 1955년 북조선 문학예술총동맹은 리순영의 서정시 ‘노을’ ‘봄’ ‘산딸기’, 안막의 ‘무지개’, 전초민의 ‘꽃씨’, 김영석의 소설 ‘이 청년을 사랑하라’가 전투성과 호소성이 부족하다고 숙청했다. 그 후 숙청은 없었다. 알아서 하니까.
북으로 간 상당수의 시인, 작가들은 작품다운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타계했다. 80년대, 90년대 김정일의 종자론, 공산주의 인간학, 우리 식대로 살자 등이 문학의 지침이 됐다. ‘꽃파는 처녀’ ‘피바다’ ‘한 자위단원의 운명’ ‘성황당’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가 북한에서 보는 불멸의 예술작품이다.
과학기술의 발전, 농업생산성을 강조하는 단편소설들이 눈에 띄어도 김일성 김정일의 가르침 안에서 가능하다는 모순에 빠진다. 김정일 스스로 모순을 느끼고 있지만 그는 그 모순을 깰 수는 없다. 그 모순의 타파는 자기의 파멸이기 때문이다.
... 북한엔 파스테르나크나 솔제니친, 조정래, 황석영 같은 작가가 없다. ... 앞으로 남북한의 문인들이 모여 북한에도 진정한 문학이 자리 잡도록 유도하기 바란다. 그리고 북한 사회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문학의 길을 열어야 한다. 환상이 아니길 바란다. 제발 문인들이 남한 시민들의 혈세를 환상으로 끝낼 일에 쓰지 않기를 바란다. 문인들도 세금을 눈 먼 돈이라고 보고 쓰면 곤란하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쓴 ‘의사 지바고’를 다시 읽기 바란다. 아니면 영화라도 다시 보시라. 금강산 모임에서 그 영화를 남북 문인들이 함께 감상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그렇다. 북한에는 문학인이 없다. 정치에 종속된 하위업종에 종사하며 선전선동에 동원된 2부리그 정치가들이 있을 뿐이다. 6,.15 남북 문학인협회를 포함한 모든 남북 문학인 교류는 그래서 근본적으로 성립이 불가능한 개념이다. 6,.15 남북 문학인협회가 ‘문학을 정치의 종속물이자 대중을 선종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확신하는 정치단체라면 그것은 또 별문제이겠지만. 공산주의 문학창작에 헌신했으되 그 역시 종파분자와 미제 앞잡이의 혐의를 쓰고 처형된 임화(林和)의 말을 살짝 비틀어 말하자면 ‘얻은 것은 값싼 민족주의로 포장된 센티멘탈리즘이요 잃은 것은 예술에 일생을 걸고 천착하겠다는 작가의 자존심이다.’ 남북 문학인 교류가 지닌 정치적 함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장원재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