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장했던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한 나쁜 기억 때문이었을까.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9일 6박 7일간의 남태평양 3개국 순방을 다녀온 뒤 처음 가진 정례브리핑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제시한 '신(新)아시아 외교 구상'에 대한 일부 오해에 적극 반박했다.

    이 대변인은 "우리가 마치 4강 외교(미··중·일·러)를 소홀히 하고 아시아를 중심으로 신아시아 외교정책을 하는게 아니냐는 일부 걱정도 있던데 이는 기우"라며 "외교의 중심과 기축이 4강인 것은 당연하고 지난해 심혈을 기울여 순방하면서 어느 정도 기틀이 다져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외교의 외연, 지평을 확대해 아시아에 더 관심을 기울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2005년 3월 "이제 우리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며 "따질 것은 따지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면서 주권국가로서의 당연한 권한과 책임을 다해나가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정부 당국자가 곧장 미국으로 달려가 해명까지 하는 등 진땀을 흘렸지만 한미동맹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일본도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 노 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설익은 주장이라는 비판과 함께, '반미(反美)'와 '배일(排日)'로 압축 설명되면서 현실을 무시한 '허장성세'라는 지적이 국내외에서 일었다.

    이 대변인은 이러한 과거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당시 일간지 기자였던 이 대변인은 같은해 6월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쓴 칼럼에서 "노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론'을 거론할 것이라고 외교통상부는 밝혔다. 미국 쪽에서 그렇게도 거부감을 갖고 있는 균형자론을 '강의'하려는 것은 아닌지, '강의'가 우리나라에 득보다 실을 더 안기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지적했었다.

    이 대통령의 '신아시아 외교 구상'은 '동북아 균형자론'과 출발부터가 다르다. 4강 외교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국가이익을 극대화시키겠다는 의도가 들어있다. 이 대통령은 아시아 모든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FTA 허브', 아시아 국가의 자원.에너지와 한국의 기술력을 접목해 서로 '윈윈'하는 녹색성장 등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아시아 국가들과 보다 많은 협력을 통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샌드위치' 상황을 극복하기위한 방안인 셈이다.

    아시아를 중시하겠다는 구상과 기존 4강 외교를 수험과목에 빗대 "지금부터 국사, 지리를 열심히 하겠다고 했더니 국영수는 왜 소홀하냐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 대변인의 표현이 여기에 들어맞는다. 4강 외교라는 기본에 더해 아시아 외교 확대를 꾀하겠다는 뜻.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전과목 모두 열심히 해야할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과제는 남아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처한 현실은 말로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외교전략에 대한 중.일의 견제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 대통령은 취임 첫 해에 한미동맹을 복원하고 중일러 3국과 관계 격상을 이끄는 등 외교 성과를 거뒀다. '신아시아 외교 구상'이 주변 4강과의 관계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변국에도 심어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