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한-이라크 정상회담에서의 이라크 남부 바스라 인근 유전개발과 35억5000만달러 규모의 SOC 건설을 연계하는 양해각서(MOU) 체결은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대통령은 저서 '신화는 없다'에서 과거 현대건설 사장 시절 첩보영화와 같았던 이라크 시장 진출 과정을 소개했다.
1978년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던 이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탈피하기 위한 건설 시장으로 이라크를 택했다. 사담 후세인이 혁명에 성공한 이라크는 사회주의 국가로 돌아선 탓에 국교가 없는 한국 기업인들은 비자도 발급받지 못하는 상황. 이 대통령은 "후세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김일성일 정도로 정치적 장벽이 견고했지만 이라크는 '포스트 사우디' 시장을 찾아나선 현대건설에세 참으로 매력적인 시장이었다"고 기술했다.
"첩보 영화 주인공처럼 바그다드로 향했다". 현대가 이라크 제2의 도시 바스라 하수처리시설 1단계 공사 국제입찰에 참여해 낙찰되면서 이 대통령의 '첩보작전'은 시작됐다. 이 대통령은 국내 기술진과 근로자의 입국과 신변 보장 문제 등 이라크와 공사 진행을 위한 구체적 방법을 이끌어 내기 위해 쿠웨이트를 통해 육로로 이라크 바그다드로 향했다.
바그다드 잠행 끝에 만난 기관 담당자의 첫 반응은 "아니, 남조선 업자가 어떻게 이 공사를 따냈소?"라는 경악이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그 다음 반응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와하브 바그다드 시장과의 면담을 이끌어낸 이 대통령은 "가난 극복은 나 개인에게 주어진 과제이면서 동시에 국가적 사명이기도 했다. 나는 가난을 딛고 경제를 일으킨 우리 경험을 바탕으로 당신 나라에 와서 일하고 싶다"며 설득했다.
이 대통령은 와하브 시장과의 두번째 면담에서 거북선 모형을 꺼내놓고 "400년 전 일본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왔을 때 우리나라의 이순신이라는 명장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든 철갑선"이라고 설명한 뒤 "승리를 상징하는 이 거북선을 집무실에 두면 당신이 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선물했다. 미국에 대한 적대감으로 한국에 갖고 있던 와하브 시장의 선입견은 점점 무너졌다.
이 대통령은 '이라크 혁명 실세'들과 밤새워 술을 마시며 인적 네트워크를 넓히는 과정을 반복한 끝에 7억2000만달러 규모의 알무사이브 화력 발전소 공사와 8억2000만달러 규모의 사마라 팔루자 주택단지 공사 계약을 따냈다. 또 더 많은 한국 근로자들이 이라크에서 일하도록 하기 위해 현대자동차의 포니 픽업 50대를 기증하면서 양국 경협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이듬해인 1979년 초 이란 호메이니의 회교혁명이 일어났고, 1980년에는 이란·이라크전 발발로 인해 공들여 닦아놓은 건설 시장에서 탈출해야 했다.
이 대통령은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는 진다는 말이 있다"며 "이라크 상륙전에서는 보기 좋게 승전보를 올렸지만 이란·이라크 간의 진짜 전쟁 때문에 내 '전쟁'은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고 당시 심경을 토로했다. 이 '패배'로 인해 국내에서는 "이라크 공사 때문에 정주영 회장과 이명박 사장이 마침내 갈라선다"는 말이 퍼졌고 이 대통령의 회사 이적, 정계 진출설이 나도는 등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35억5000만달러 규모의 MOU에 '직접' 서명했다. 30년전 이라크 상륙작전이 마침내 결실을 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