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5일 사설 '김형오 박희태 홍준표, 자리를 던져야 길이 보인다'입니다. 네티즌의 토론과 사색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3일 국회는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의사당 3층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농성 중인 300여 민주당 의원과 보좌관·당직자들을 국회 경위와 방호원 150여명이 해산시키려다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국회 사무처는 이날 네 차례에 걸쳐 민주당 농성을 해산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60여명이 다쳐 일부는 병원으로 실려 가기도 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런 국회는 없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18일 해머와 전기톱, 소화기를 동원한 난투극으로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고도 지금까지 17일째 농성과 대치를 계속하고 있다. 이제 국민들은 다른 나라 의회처럼 경제위기 극복 방안을 놓고 정부와 여야가 머리를 맞대는 것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나라 망신시키는 창피스러운 난장판만이라도 하루빨리 정리됐으면 하는 심정이다.

    여야는 한때 쟁점 법안 처리 방향에 대해 '가(假)합의안'을 만들었다. 지금의 국회 상황에 대해 여야가 각각 사과하고 한·미FTA 비준동의안, 출자총액제 폐지, 금융·산업자본 분리 완화 방안, 사회개혁 법안, 미디어 법안 등 27개 쟁점 법안들은 2월 국회에서 합의 또는 협의 처리하고, 50여 민생 법안은 이번 임시국회가 끝나는 8일까지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이 합의안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내부 강경파 목소리에 밀려 추인(追認)받지 못했다. 합의안이 무산된 이튿날인 3일 곧바로 난투극에 돌입한 것이다.

    여야 모두 이제 결단할 때가 됐다. 한나라당은 전체 국회의석의 58.2%나 되는 172석을 보유한 거대 여당이다. 그만큼 책임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당 지도부가 결단해야 한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홍준표 원내대표는 더 이상 당 안팎 기류에 휩쓸리거나 이곳저곳 눈치를 보는 행동을 해선 안 된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85개 법안을 지난 연말까지 처리하겠다고 하다가 갑자기 야당과 잠정 합의안을 만들었고, 당내 반발에 부닥치자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85개 법안 전체를 직권 상정해달라며 강경 쪽으로 다시 방향을 틀었다. 이렇게 오락가락해서 어떻게 야당을 설득하거나 압박할 것이며 국민에겐 뭐라고 할 것인가. 박희태 대표, 홍준표 원내대표는 협상을 하든 강행통과를 하든 끝나고 나선 자리를 내놓겠다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 자리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길이 보이고 결단도 할 수 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원혜영 원내대표는 당내에서 합리적 인사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그런 두 사람이 강경 투쟁의 선봉에 선 것을 아래로부터 밀려 전쟁에 끌려 나온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어쨌든 두 사람은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은 말로 지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지는 것이다. 그들 역시 자리를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

    김형오 국회의장의 처신도 시종일관 입법부 수장(首長)답지 못했다. 김 의장은 국회 대치사태가 벌어진 뒤 하루가 멀다 하고 성명을 발표하거나 기자회견을 해 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여야의 반발과 비판만 불렀다. 말과 행동에 자리를 건다는 박진감(迫眞感)과 진정성(眞情性)이 결여돼 있었기 때문이다. 김 의장 역시 한국 국회가 더 이상 세계의 조롱감이 되지 않게 하려면 여기서 자리를 건 결단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