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종호 논설위원이 쓴 시론 '해괴망측한 일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괴상한 일을 일컬어 해괴(駭怪)하다고 한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너무나 어이가 없는 일은 망측(罔測)한 일이다. 그 사전적 의미 그대로 참으로 해괴하고 망측한 일이다. 초등학생들이 그러라고 누가 시키거나 부추기지도 않았는데 서울 도심의 사찰 마당에 차린 농성장 방명록에 대통령에게 퍼붓는 욕설을 공공연히 글로 적을 수 있단 말인가.

    ‘이명박 게셰끼, 야 이 병신 넌 호주산 우린 죽으라고? 니가 그러면 난 널 살인하겠다.’ ‘이명박 너 죽을래, 니 미쳤나.’ 이런 욕설을 쓴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측은 “한 농성자가 아이들에게 ‘이명박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고, 욕을 해도 되고 반말을 해도 된다’고 부추겼다고 한다. 어떤 아이는 비속한 말을 쓰고 초코파이와 부채를 받았고, 그 옆의 아이는 욕을 쓰고 사탕과 젤리를 받았다”고 학생들을 상대로 한 조사 결과를 밝히는데, 농성자측은 “말도 안된다. 보수 언론이 누명을 우리에게 덮어씌우려는 것 같다”면서 “정부가 얼마나 잘못했으면 아이들이 그랬을지 정부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이 어찌 해괴망측하지 않은가. 수배중인 자가 그 욕설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으며 혼자만 보겠다고 학생들을 속인 뒤 인터넷을 통해 유포했을 개연성이 큰 사실 또한 마찬가지다.

    더 해괴망측한 것은 그 농성자들이 불법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 영장이 발부돼 공개 수배중인 범죄 혐의자들이라는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불법 폭력 시위를 막으려다가 경찰 수백명이 시위대에 맞아 다치는 나라는 없다고 경찰 스스로 강조하면서도 수배자가 눈앞에서 공공연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며 법 집행을 사실상 회피해온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찰을 비롯한 종교 시설의 마당이 제정(祭政)일치의 삼한 시대 소도(蘇塗)일 수 없다는 사실은 종교 지도자에서부터 경찰 간부, 국정 책임자 등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죄인일지라도 그를 붙잡아 형벌을 가하는 것은 하늘에 올리는 제사에 부정을 타게 한다는 이유로 도망해 들어오더라도 붙잡지 않았던 구역이라고 전해오는 고대의 소도를 재현하는 시대착오적 행태가 적나라하지 않은가. 그러고도 OECD 가입 12년째로 선진국 문턱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내세운다는 것은 더없이 민망한 국가적 창피가 아닐 수 없다.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의 엄정하고 정당한 법 집행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강조한 사실, 그 사실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다시피 한 것도 그렇다. 경찰의 엄정한 법 집행은 당연한 책무여서 그러지 않을 경우에는 문책하겠다고 했으면 모를까.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며 관할 분야의 국정을 제대로 챙기기에 머리를 싸매고 있을 장관이 어떻게 지극히 당연해 하나마나 한 말을 굳이 강조하고 또 그것이 주요 기사로 취급되는가. 상식과 비(非)상식, 정상과 비정상이 흔히 뒤집히며 뒤죽박죽으로 엉켜온 현실이 여전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정상적인 21세기 문명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차마 믿기 어려운 해괴망측한 행태는 정치권도 다르지 않다. 제1 야당인 민주당 지도부가 6일 하루 동안에 보인 행태는 비근한 예의 하나일 뿐이다. 당 대표를 포함한 간부 국회의원들이 임기 개시 두 달 이상 지나기까지 원(院) 구성의 발목을 잡으며 국회를 외면한 채, 편파 방송과 무능 경영의 장본인으로 초법적 존재와 다름없이 처신해왔다는 국민적 지탄 속의 한 공영방송 사장을 옹호하기 위해 방송통신위원회·검찰청 등 여기저기로 몰려다니며 항의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당일의 해괴망측한 행태만 해도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범법 혐의로 출국 금지된 네티즌까지 초청한 촛불집회도 열어, 자신을 추하게 비치게만 했을 뿐 결국 이루지는 못할 그 사장의 자리 집착을 거들었다.

    이처럼 해괴망측한 일이 일상화해가는 현실에 대해 순리와 상식을 믿는 국민 다수는 언제까지 절망과 분노를 삭이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