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30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양상훈 논설위원이 쓴 칼럼 <코리안 '이불 속 만세' 언제까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수년 전 한 외국 공항에서 겪었던 일이다. 외국 항공사 여객기가 활주로에서 되돌아오더니 비행기에 문제가 있다며 승객들을 다시 내리게 했다. 몇 시간이 지나도 항공사측에선 별 설명이 없었다. 그때 큰 소리가 나 돌아보니 카운터에서 승객 몇 사람이 항공사 직원들과 싸우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국 사람들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한국 사람들이 모였고 한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손해 본다. 떠들어야 한다"고 했다. 몇 사람 더 싸움에 가세하면서 한국인들이 집단 시위를 벌이는 모습이 됐다. 필자도 용기가 없어 데모를 못했을 뿐 화가 난 정도는 그들 못지 않았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승객들은 자리에 앉거나 가방을 베고 바닥에 누운 채로 이 떠들썩한 구경거리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대기 중이던 승객들이 어느 새 절반 이하로 줄었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후였다. 비행기가 이륙을 못하게 되자 항공사측이 승객들을 불러 호텔 숙박권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보니 남은 승객 대부분이 한국 사람들이었다. 항공사가 코리안들을 맨 뒤로 제쳐놓은 모양이었다.

    텅 빈 대합실에 한국 사람들만 남아 있던 그 장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것이 국제 사회 속에서 우리 코리안들의 모습인 듯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왠지 독도 사태나 광우병 사태도 그 공항 대합실 장면과 겹쳐져 보인다.

    1995년 우리 정부가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친다"면서 독도에 각종 초강경 조치를 취하자 온 국민이 환호했다. 그때 홍콩의 한 신문사가 아시아 지역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일본 입장을 지지하는 응답이 60%가 넘었다. 그 이유는 "한국이 말썽을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끼리 만세를 불렀지만 세계에 독도가 한·일 간 분쟁지역이라고 광고를 한 꼴이었다. 미국 지명위원회의 독도 표기 변경은 이런 광고가 쌓이고 쌓인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 역대 정부와 정치권은 앞뒤 재지 않고 흥분하는 국민 감정에 영합하고 심지어 이를 이용하면서 일본에 말려드는 길로 계속 걸어 들어갔다.

    국제통화기금(IMF) 2007년 조사에서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국가 위상은 GDP의 2.24배이고 한국의 위상은 GDP의 0.29배였다. GDP는 일본이 한국의 4.5배이지만, 국가 위상은 35배나 차이가 나는 셈이다. 미국 지명위원회가 독도 표기를 일본에 유리하게 바꾸게 만든 근본 요인도 결국은 이 엄청난 국가 위상의 차이일 것이다.

    일본의 위상이 GDP보다 두 배나 높은 것은 '재패니즈 스타일'을 좋아하는 세계인이 그만큼 많고, 한국의 위상이 GDP만큼도 아닌 그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은 '코리안 스타일'을 싫어하는 세계인이 그렇게 많다는 뜻이라고 볼 수도 있다. 미 국무부에서 한국과장과 일본과장을 모두 지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한국의 독도 점유는 유지된다"며 "그러나 한국 시위대가 일본 총리의 사진에 피를 바르며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외치면 한국인들의 이미지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물었다. 코리안 스타일로 무슨 득이 있느냐는 물음이다.

    국제 사회는 그런 생각조차 않는데 유독 한국 사람들만은 절반 이상이 "미국 쇠고기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고 믿는다. 아이들이 "죽게 됐다"고 울먹이고, 대규모 시위가 연일 벌어진다. 어느 외국 경제인은 "우스꽝스럽다"고 했다지만, 속생각은 그 이상일 것이다.

    우리가 국제 사회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식대로 길 막고, 드러눕고, 데모하고, 소리지르고, 때려부수고, 혈서 쓰고, 삭발식·화형식 하면서 살겠다면 국제 사회가 독도를 어떻게 표기하든 상관 않겠다는 각오도 같이 해야 한다. 그러자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2000년간 세계의 가장 변방이었던 우리가 국제 사회로 나아가자 40년 만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끼리 이불 속에서 만세 부르는 지금의 이 사고방식, 행동양식으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일 것만 같다. 어느 날 공항 대합실에 우리만 남게 된 것을 알게 됐을 때는 선진국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이미 치워진 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