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7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에 이 신문 이선민 논설위원이 쓴 '기로에 선 진보좌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 연말 대통령 선거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을 때 진보 좌파에서는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높았다. 정치권에서는 대통합민주신당이 '새로운 진보'를 표방했고, 민주노동당은 '종북(從北) 노선' 청산 논쟁을 벌이다 당이 쪼개졌다. 지식인사회는 '지속 가능한 진보'를 모색하는 토론회를 앞 다투어 열었고, 시민단체들도 조금씩 자기 쇄신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던 것이 반년 만에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진보 좌파 정당에서는 노선 전환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쑥 들어갔고 선명성 경쟁이 한창이다. 진보 좌파 지식인들은 '움직이는 10대 소녀'와 '디지털 유목민'이 주도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찬양하느라 바쁘다. 진보 좌파 시민단체들은 다시 깃발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2008년 촛불 항쟁'의 말석을 차지하고 자신들보다 훨씬 앞서가는 대중의 위대함에 감격하고 있다.

    진보 좌파가 그렇게 심각해 보이던 고민을 깨끗이 잊을 수 있게 한 1등 공신은 물론 이명박 정부다. 당선 직후부터 불거져 나온 서툰 국정 운영 구상은 내각과 청와대의 실망스러운 인선, 고집스럽게 포기하지 않는 한반도대운하, 그리고 급기야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이어져 진보 좌파가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도 다시 심기일전하게 만든 것이다.

    한·미 쇠고기 협정으로 촉발된 촛불 집회가 한국 민주주의에 충격을 던진 것도 사실이다. 촛불 집회는 정부의 졸속·부실 협상을 드러내고 문제점을 보완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인터넷시대에 직접민주주의가 어떤 방식으로든 대의민주주의에 도전할 것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진보 좌파의 몰락을 가져온 기본 상황은 그 동안 달라진 것이 없다. 촛불 집회에 기대어 당장 어부지리를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이 지금 정말 신경 써야 할 것은 장기 비전이다. 5년 뒤 선거에서 보여줄 청사진이다. 그 길은 결코 쉽지 않다. 국민을 사로잡을 새 이념·정책과 인물을 내놓는 것은 시간과 통찰력을 필요로 한다. 앞에 놓인 가시밭길을 생각하면 뜻밖에 주어진 '기회'에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

    촛불 집회 지도부에는 헌정(憲政) 질서와 법치(法治) 따위는 애당초 관심이 없는 반(反)체제 인사들이 있고, 그들이 드디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교육 개혁, 공기업 민영화 등 정부 정책 전반으로 전선이 확대되고, 촛불 집회장에는 이익단체들과 반미친북(反美親北) 집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회를 주었는데도 듣지 않으면 정권 퇴진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진보 좌파 인사들은 이제 이런 주장에 대한 지지 여부를 밝혀야 한다. 정상적인 선거로 집권한 합법 정부의 정책은 국회에서 논의되고 그 결과에 대한 심판은 다음 선거에서 국민이 내린다는 상식을 거부하는가에 대한 견해도 표명해야 한다. 한마디로 지금 혁명을 하자는 것인가 아닌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다. 상당수 진보 좌파는 직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정치 불안정이 상시화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정당정치를 복원해야 한다"(조국 서울대 교수)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이명박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김상곤 한신대 교수)고 주장한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지난 주말 재야·종교계 인사들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다수 의견은 국회가 나서 이번 사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일부는 '거리의 정치'를 옹호했다. 지나고 나면 우리는 누가 '지속 가능한 진보'이고 누가 '지속 불가능한 진보'인지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