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신우 논설위원이 쓴 시론 '폴리스라인의 이쪽과 저쪽'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해하며 소개합니다.

    아들과 논산훈련소에서 헤어진 후 약 5주가 지났던가요? 어느 날 연락이 왔습니다. 전투경찰로 발령을 받았다더군요. 같은 병역의무인데 육군이면 어떻고 경찰이면 어떠냐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시간이 좀 흐른 후 아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지금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있다”고 하더군요. ‘쇠고기 시위’가 연일 계속되면서 질서유지 병력으로 동원됐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잠시 짬을 내 소식을 전한다며 금방 전화를 끊었습니다.

    시위대 가운데 한 여학생이 경찰 대원으로부터 발길질 당하는 모습이 인터넷과 방송을 탄 것은 바로 그 직후였습니다. 갑자기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같은 무렵 다시 전화가 왔기에 신신당부했습니다.

    “절대로 무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 정말로 힘들고 분노가 치밀 때는 네 스스로 ‘나는 없다’고 생각해라. 네가 없는데 어떻게 공포나 분노가 네 속에 싹틀 수 있겠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이제 살 만큼 살았다며 늘 스스로를 일깨우는 나조차도 불가능한 무아(無我)의 경지를 어린 자식에게 강요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여학생의 모교인 서울대학교가 시끄러워졌습니다. 서울대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에서는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경찰의 책임을 물었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여학생의 부모는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을 것입니다. 제 집사람도 툭하면 광화문 거리에서 밤을 지새웁니다. 아들이 어디 있는지를 어떻게 알겠습니까만 그저 현장을 같이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물며 직접 피해를 본 여학생의 부모야 오죽했겠습니까.

    전경을 자식으로 둔 아비의 심정은 그저 세상을 향해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사실 광화문에 서 있는 모든 전의경 대원들이 제 아들과 마찬가지이니 비록 늦었지만 저라도 대신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전의경도 그저 평범한 젊은이들입니다. 자기 앞에 거대한 군중이 몰려오면 공포감을 느끼게 되고 시위대의 행동이 거칠어질 때마다 극도의 불안과 흥분 상태에서 과잉방어가 나타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위대가 군중심리의 영향을 받듯, 이들 역시 집단심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저는 서울대 교수협의회가 성명을 발표할 때만 해도 죄스럽다는 생각과 함께 지식인 사회에 거는 또다른 기대가 있었습니다. 한국 최고 지성의 산실이니만큼 현 사태에 대해 학생과 스승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서도 한마디쯤 있을 줄 믿었습니다.

    그러나 없었습니다. 시위대의 목적이 무엇이든간에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앞날이 어떻게 되든간에 국가의 ‘법과 질서’는 국민 모두로부터 보호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정부가 밉다고 해서 시위대가 자신의 불법 행위를 정의와 동일시해버린다면 그 순간부터 법치(法治)는 부정당하고 맙니다. 저는 최소한 교수협의회로부터 이에 대한 뼈아픈 지적이 있을 줄 기대했지만 기대는 물거품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법과 질서, 그리고 그 상징인 ‘폴리스라인’은 철저하게 짓밟히고 있습니다. 젊은 전의경들은 이미 사회적 조롱의 대상이 된 지 오래고 경찰력은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대학교 민주화도 중요하지만 이 나라의 법과 질서도 중요한 것 아닙니까. 경찰과 국민은 이분법의 대상이 아닙니다. 경찰과 국민은 동전의 앞뒷면입니다. 앞면이 없으면 뒷면이 있을 수 없습니다. 뒷면이 없어도 앞면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폴리스라인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국민적 대타협을 이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그 피해가 결국 국민 모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타자의 불법으로 피해를 당해도 이미 무너진 법과 질서에 보호를 요청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자유민주주의자는 법을 소중히 여깁니다. 자유민주주의는 법치를 존립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이 사회의 지성들이 나서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