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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일산에 사는 주부 유진양 씨는 거실에 걸려진 그림 액자를 볼 때마다 흐뭇하다. 처녀 시절 좋아했던 화가의 작품이기도 했지만, 미술품은 부르는 게 값인 요즘 월 6만원으로 저렴하게 임대했기 때문이다. 유씨는 “3개월에 한번씩 갤러리에 가서 그림을 고르고 오면 업체 직원이 와서 그림을 교환해준다”며 “좋은 그림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어 아이들 감성교육에 좋다”고 말했다.
1998년 시작된 정수기와 비데 렌털 서비스는 알뜰한 가정주부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하다. 국내 정수기 이용의 70%가 렌털 방식으로 진행될 만큼 소비자 호응도가 높다. 최근에는 로봇청소기, MP3, 노트북 등 IT제품을 비롯해 그림, 인테리어 소품, 명품 귀걸이와 넥타이 등 생활밀착형 제품까지 등장했다. 바야흐로 렌털 품목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빌려 쓰는’ 제품군이 다양해지면서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대여할 수 있는 시대다.
◇ 합리적인 소비족의 똑똑한 습관
그림과 아트포스터를 비롯한 미술품 대여 사이트는 온라인 상에만 수십 개가 넘는다. 렌털 비용은 작품에 따라 달라지고 최저가는 8000원, 최고가는 15만원이다. 픽쳐인닷컴, 그림아트세상 등이 유명하며, 11년째 성업 중인 판화세계도 단골 이용객이 많다.
명품의류 대여업체인 에이스메이커는 샤넬, 돌체&가바나, 아르마니 등 여성들이 선호하는 800여 종의 값비싼 명품 의류를 예약한 날짜에 배송하고, 다음날 방문 회수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온파티 닷컴에서는 연주복, 드레스 등 남녀 파티복을 렌털할 수 있다. 피폭스는 의류와 어울리는 구두, 핸드백, 액세서리 등을 전문적으로 대여해준다. 이들 사이트는 대부분 100만 원 이상의 제품을 다루며, 구입은 부담스러워도 한번쯤 꼭 이용해보고 싶은 소비자의 심리를 공략한다.
각종 전시회 및 행사에 필요한 골동품과 인테리어 소품을 대여하고 싶다면, '옛날 사람들'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도자기나 민속품, 중국 엔틱 제품, 석물 등 소장하고 있는 품목이라면 모두 가능하다. 우리 정서에 맞는 다양한 디자인이 많아 국내 전문예술가 및 전시기획자들이 선호하는 편이다.
이 밖에도 디지털카메라, 즉석카메라를 비롯해 메모리카드까지 렌털할 수 있는 RenZ, 고가의 아기침대, 유모차, 육아용품 등을 3개월 기준으로 저렴하게 렌털 서비스하는 베이비앤 차일드, 운동기구 렌탈 사이트인 헬스AS 등도 알아두면 유용하다.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알고 싶을 경우, 렌털 전문 포털사이트를 이용하면 일목요연한 정보검색과 결제가 동시에 가능하다. 렌털엔조이는 노트북부터 행사용 렌터카, ABS 조립식 락커까지 폭넓게 구비된 종합렌털몰로, 한달 평균 이용객은 7000명에 이른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국가일수록 ‘구입에 앞서 미리 써보자’는 인식이나 ‘비싼 가격에 비해 활용도가 낮은 제품은 저렴하게 빌려 쓰는 게 낫다’는 실속형 소비문화가 빠르게 확산된다고 한다. 합리적 가격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똑똑한 습관이 불황일수록 강화된다는 것이다.
◇ 불황기 기업들도 렌털로 자본효율성 높여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삼보컴퓨터는 최근 일반 법인을 대상으로 하는 PC 렌털 사업을 대폭 확대했다. 기존 일정 규모 이상의 물량 렌털을 대기업 중심으로 공급했다면, 현재는 1대라도 중소 기업과 관공서 등의 고객이 필요하면 대여해준다는 입장으로 효율성을 높였다. 삼보컴퓨터 관계자는 “소자본으로 창업되는 신생 기업은 PC를 렌털 사용할 경우, 초기 투자 부담감을 해소하고 신제품 교체 부담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 워터파크, 유명 해수욕장 등 각종 레저시설에서도 렌털 서비스는 효율적이다. 레저시설 제작전문업체 하이스트시스템은 국내 최초로 특수 플라스틱 조립식 락커 렌털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존의 철재나 목재 락커의 경우, 평균적으로 제작기간이 10~15일 정도 소요되는데다 설치 후에는 이동이 불편한 단점이 있었다.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의 한 관계자는 “급증하는 성수기 방문객 수에 맞춰 락커를 추가 제작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여름에만 제공한 뒤 반환할 수 있는 렌털 서비스는 자본효율성이 높아 선호한다”고 밝혔다.
한재욱 하이스트시스템 부사장은 “강원 대명 오션월드, 서울 한강 수영장, 쉐라톤 워커힐 호텔 등에 2만 대 정도 나갔다”며 “주문제작으로만 가능했던 락커를 대여하면 30% 이상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렌털 산업은 불황일수록 강한 비즈니스다. 한국렌탈협회가 밝힌 전체 렌털 산업 규모는 연간 2조원대에 이른다.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등의 소형가전제품을 비롯해 IT정보기기, 일반 생활용품 등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렌털 전문업체는 2000여 개로, 다채롭고 세분화된 아이템이 소비자들의 렌털 마인드를 공략하고 있다.
대기업 위주가 아닌 영세업체들의 치열한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업계는 이와 관련해 소비자 권리 보호를 위한 렌털 서비스 전반의 체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