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14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백화종 전무이사 대기자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영삼, 김대중의 퇴장과 함께 사라졌나 싶었던 정치 계보의 막강한 보스가 탄생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다. 이번 총선을 통해 당 안에 30여명, 당 밖에 26명의 국회의원 당선자를 사단으로 거느리게 된 것이다.
친이명박으로 불리는 주류의 실세들은 박근혜를 무력화하기 위해 그의 측근들을 공천 과정에서 거세했다. 그러나 낙천한 박근혜의 측근들은 친박연대 등 박근혜를 당수로 하는 망명 정당을 세워 선거에서 무려 26명이 당선됐다. 거꾸로 이재오, 이방호 의원 등 친이의 핵심들은 대부분 몰락했다. 박근혜계의 4·9총선대첩이라 할 것이다.
공천에 문제가 있었음은 선거 결과가 말해준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한나라당 후보인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후보를 공격 목표로 하는 망명 정당 후보를 지원한 이번 선거는 정당정치를 희화화한 것이었다. 박 전 대표의 처신은 분명 해당행위이지만 정치는 현실이고 법이나 논리로만 되는 게 아니다. 당은 더 큰 역풍을 우려하여 냉가슴을 앓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여 “속았다”며 이 대통령 쪽에 노골적으로 각을 세운 박근혜의 계보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비주류로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정권 출범 초 여권에서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일이다.
153석을 확보하여 원내 과반에 겨우 턱걸이한 이명박 정권으로서는 야당보다도 비주류의 눈치를 더 봐야 할 처지가 됐다.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비주류가 발목을 잡으면 원내 과반에 턱없이 모자라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당장 대운하 계획만 해도 야당과 함께 박 전 대표도 반대 입장을 밝힌바 있어 이들의 태도 변화 없인 추진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박근혜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당장 친박연대 및 친박무소속 의원들의 한나라당 복당 요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국회 모든 상임위를 장악할 수 있는 이른바 안정 과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선 이들의 복당을 허용하는 게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럴 경우 당내 박 전 대표의 세력이 커져 일이 더 꼬일 수가 있다. 자칫 국정의 주도권이 그에게 넘어가고 정권의 레임덕이 그만큼 빨라질 우려도 있다.
그래서 나오는 얘기가 선별 입당론이다. 친여 성향의 순수 무소속 의원들을 입당시키고 친박 의원들은 개별적으로 성향 등을 검토하자는 의견이다.
그러나 순수 무소속 의원들을 입당시킨다 해도 당내 친박 의원들이 발목을 잡는다면 어차피 원내 과반 확보는 안 되며, 당 밖의 친박 의원들은 선별 복당에 응할 리가 없다. 따라서 안정 과반 의석이 꼭 필요하다면 친박 세력의 실체를 인정하고 원하는 이들은 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로 하여금 진정한 ‘국정의 동반자’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설득하는 등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물론 탈당하여 아군을 공격한 인사들을 복당시키는 게 썩 내키지 않은 일이고, 한번 금 간 신뢰를 회복하는 일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 정치는 현실이고, 불가능도 가능케 하는 게 정치다.
가장 바람직하기는 국민이 국정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여당에 과반 의석을 주면서, 대신 과속이나 난폭 운전을 하지 말라고 여당 내에 비주류라는 브레이크를 달아주었다고 이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소야대의 정국을 다루듯 비주류나 야당들과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고, 국민을 향해 정치를 하는 것이다. 박 전 대표도 비주류의 보스라 하나 정상을 목표로 가고 있는 지도자인 만큼 국민을 무섭게 알고 겸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여당에 몸담고 있으면서 때 이른 권력투쟁이나 무리한 국정 발목잡기 같은 건 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