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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 연합’이란 게 있었다.
1997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선 패배 후 이듬해 8월 31일 당 총재를 뽑는 전당대회가 열렸다. 이 전대를 한 달쯤 앞두고 영남권 중진인 강재섭-강삼재 의원이 뭉쳤다. 강재섭 의원으로 총재 경선 후보를 단일화해 이회창 후보의 아성에 도전하려 했다.
그러나 한 달여 뒤 전당대회 날 경선 후보에 강재섭 의원의 이름은 없었다. 그가 중도 사퇴했기 때문이다. 강 의원의 중도하차를 두고 당 내에서는 “원래 온실 체질” “한데선 못사는 사람”이란 얘기가 나왔다.
그가 ‘5공 황태자’인 박철언 의원의 사조직 월계수회에 참여했다가 박 의원이 김영삼 대선 후보 선출에 반발해 탈당할 때는 김 후보 편에 선 것을 빗댄 얘기였다. 1998년 전대 이후 그에게는 “사람은 좋은데 무르다” “온몸을 던질 줄 모른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런 그가 달라졌다. 던지고, 버린다.
지난해 대선 후보 경선 룰 파동 때는 대표직은 물론 의원직 사퇴까지 내걸어 분란을 잠재웠다. 올해 초 공천심사 갈등 때도 대표직 사퇴를 불사하더니, 박근혜 전 대표가 공천책임론을 제기하자 ‘총선 불출마’ 카드를 던졌다. 10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선 그나마 대표직마저 조기에 던질 뜻을 밝혔다.
반면 공천심사 과정에서 자파를 챙기고, 박근혜파를 배제하려는 이미지로 비친 친(親)이명박계의 실세들은 어떤가. 이재오 전 최고위원, 이방호 사무총장, 정종복 사무부총장은 이번 총선에서 줄줄이 떨어졌다. ‘공천심사위원회의 저주’라는 말까지 나왔다.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서울 종로에 뛰어든 건 또 다른 ‘버림’이었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에게 석패했지만, 다른 지역 지원 유세까지 다니면서 민주당이 당초 기대보다 많은 81석을 차지하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그는 10일 당 대표 경선 불출마까지 선언했다. 의원직도 없고, 대표직도 잃겠지만 지난해 한나라당 탈당으로 생긴 ‘사실상 경선 불복’ 이미지를 완전히 벗고 적지 않은 정치적 자산을 쌓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동영 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가 서울 지역구로 동작을을 택한 건 패착이었다. ‘서울 남부벨트를 책임지겠다’고는 했으나 구여권 대선 후보 출신답지 않은 ‘계산’이 깔린 선택으로 비쳤다. 이런 선택을 할 때부터 그는 울산 동구라는 당선이 보장된 지역구를 던지고 올라온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민심은 무섭다. 버리고, 던지고, 손해 보고, 희생하면 반드시 보상해준다. 조금 많이 누리고, 오만하다 싶으면 반드시 빼앗는다.
대통령이 된 후의 공과는 접어두더라도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이라는 ‘희생’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에 온몸을 던졌기에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실적’이 검증된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 막판 ‘집 외에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버림의 미학’을 보여줬다.
이번 총선으로 국회에 첫발을 딛는 초선의원 130여 명이 이 점을 새겼으면 한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낙선자도 바로 이 점에서 위로받았으면 한다. 실패가 또 다른 성공의 출발점이 되는 게 정치의 세계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