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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에 언론인 류근일씨가 쓴 '좌파 교과서의 독을 빼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의 발간은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에 이은 비(非)좌파 학계의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학문적 봉사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뉴라이트 성향의 교과서포럼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기파랑이 펴낸 〈한국 근·현대사〉는 그동안 한쪽으로 치우친 사관(史觀)으로 청소년들의 마음을 잠식하고 있던 좌편향 역사서들을 정면으로 치고 나간 '다른 목소리'라 할 수 있다. 좌파 민족주의, 민중주의, 수정주의 사관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면서, 그런 시각의 역사 서술이 왜 적실성과 보편성을 잃고 있는지를 〈한국 근·현대사〉는 냉철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요즘 세태에서 결코 흔치 않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힘겨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른바 '생계형 좌파' 몸짓이 마치 '지식인의 면허증'인 양 판치는 '먹물 포퓰리즘'에 비추어 볼 때 이에 대해 선명한 대척점을 설정한다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진보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것만큼이나 '불온한' 행위로 찍힐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서도 새 정부 주변의 일부 논자들은 굳이 좌우 이념을 따지지 말자고 말하곤 한다. 지식인 사회에서도 극좌 '민족해방론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좌편향 역사서들의 이념 공세에 반론은커녕 아예 입을 다물려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특정 이념을 물대포처럼 쏴 대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따지지도 말고 묻지도 말자"는 식이다.
좌편향 역사서들은 그동안 대한민국을 향해 문자 그대로 무자비한 '이념의 폭력'을 퍼부어 왔다. 한마디로 "분단의 책임은 미국과 이승만…" "6·25의 원인은 미국과 한국의 남침 유도 작전…" "대한민국 60년은 미국과 예속자본과 사대주의 세력이 득세한 역사…" "민족사의 정통성은 북한에…" "북한인권은 시비해선 안 될 내재적 문제…" 어쩌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료 자체와 맞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역사서들을 읽은 우리 2세 3세들은 대한민국을 도덕적으로 너무나 형편없는, '나라도 아닌 나라'로 간주하면서 북한을 그 어떤 근사한 민족주의의 승계자인 양 쳐다보게 될 개연성이 한껏 높아지기 마련이다.
새로운 대안교과서는 그것이 그런 게 아니라고 가르쳐 주는 일종의 '독(毒) 빼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분단은 남쪽이 아니라 구 소련과 김일성의 인민위원회 혁명이 먼저 한 것이고, 6·25는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이 치밀하게 계획한 침략전이었으며, 그 후의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발전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기적'이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대한민국은 '나쁜 나라'가 아니라 아주 잘 세운 '좋은 나라'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교과서가 담은 일제시대 서술이 당시의 '수탈'을 '근대화'로 격상시켜 봐주는 것 아니냐, 그래서 그때 '식민지 근대화'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처럼 그려주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다. 아마도 집필자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과 수탈은 그것대로 지적하면서, 다만 그 기간을 통해 사회경제의 얼개만은 이렇게 저렇게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려 했던 것 같다. '식민지 근대화'가 진행됐음을 인지하는 것이 곧 민족 독립과 투쟁의 당위성을 '신성모독' 하는 것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고, 독립 열망이 끓어오르는 기간에도 식민지에 공장 한 채가 더 세워질 수는 있는 문제일 것이다. 향후의 더 진척된 논쟁을 지켜볼 일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이념을 뺀 실용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지난 60년은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불의가 승리한 시대였다"고 하는 사람들이 또다시 턱밑까지 기어오를 때 이명박식(式) 실용주의가 과연 어떻게 대응할지 불분명하다. 그럴 경우 몸 바쳐 싸울 전사(戰士)들은 결국 〈한국 근·현대사〉 같은 담론을 생산한 집필진, 감수(監修)진, 출판인, 그리고 그 열성 독자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