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대문으로 흔히 불리는 숭례문이 한 순간에 소실되었다. 그 곳에 610년을 굳건히 자리를 지킨 웅장한 건축물이 한 순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이 사건을 보면서 한국사회에 만연한 무책임한 적당주의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사건은 단순한 문화재 화재 사건이 아니라 한국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부실문화를 처절하게 고발하는 사건이다. 한국사회의 총체적 재정비가 필요하다.

    화재는 누군가에 의한 고의적 방화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가 단순한 정신병자든 아니면 정권교체에 불만을 품은 테러리스트든 상관없다. 이런 자들을 대비하여 경찰이 있고 소방서가 있으며 문화재 관리청이 존재한다. 경찰, 소방서, 문화재청 간에 화재 진화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말들이 왔다갔다 하지만, 모두 책임회피에 불과할 뿐, 이런 국가 기관이 정작 하여야 할 일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왜 존재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문화재관리청은 왜 존재하는지 근본적으로 그 존재목적과 존재의의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하여야 하며 특히 문화재관리청장은 거들먹거리기만 하였지 자신의 임기 내에 국보1호 소실이라는 엄청난 재앙을 방지하지 못한데 대해 석고대죄의 심정으로 통렬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문화재관리청이 존재하는 이유는 문화재 관리와 관련하여 일반인 이상의 주의와 전문적 능력과 윤리를 가지고 이런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재 관리는 소방서의 일반화재 소화 내규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직무유기에 가까운 태만과 무지와 무능의 총체적 부실을 보여주었다.

    화재가 5시간동안 확대되는 동안 문화재청이나 소방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동영상으로 보아서 소방요원은 먼 거리에서 건물 위로 물을 뿌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 동안 불은 내부에서 커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숭례문의 내부구조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할 문화재청은 단지 전화 몇 통을 하였을 뿐 건물의 특성에 맞춰 진화작업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전문적인 조언이나 지휘를 하지 못했다. 그저 일반화재 불구경이나 하는 듯이 무책임하고 무능력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다. 물론 경찰, 소방서에 대해서도 같은 비난을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은 자신들이 아무리 행패를 부려도 국가가 망하지 않을 듯이 행패를 부렸다. 숭례문 소실은 바로 이들의 이러한 자세의 결과로 보여진다. 예로부터 관리들은 가렴주구에는 열을 올렸으나 정작 민초들의 민생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외적이 침입하여도 관군은 일시에 무너지기 일쑤였고 오직 민초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서 정작 나라가 망하지 않았다. 같은 현상이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다.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자 한나라당 국회의원 공천에 대학교수들이 상당수 지원하였다고 한다. 이들의 본업은 교수다. 교수는 학생들 교육과 연구가 기본임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기보다 정치권에 기웃거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는 동안 교육은 부실해지기 쉽다. 이들은 교수로서도 정치인으로서도 전문직업인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그야말로 얼굴마담 노릇이나 할 정도의 위인들밖에 안 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누구도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지 않고 오로지 정치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래도 나라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는 것은 정치권에 기웃거릴 여유가 없는 민초들의 자질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민초들의 공공의식, 준법정신, 이타정신, 직업관 등이 정치권의 사람들보다 더 낫기 때문에 정치권의 무능과 행포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총체적 부실은 아이들의 교육에서부터 시작된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공공규칙을 지키고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남을 배려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자기 자식들을 지나치게 보호하여 규칙을 어겨도, 남에게 무례하게 굴어도, 해야할 일을 게을리 하여도 무조건 감싸는 식으로 자식을 길러왔다. 그리고 부모의 재력과 명성을 이용해 쉽게쉽게 자식들을 출세시켰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권세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이런 경향이 짙다. 흔히 말하는 노불리제 오블리제가 사라진 사회다.

    한 순간 숭례문이 불타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아찔함을 느낀다. 이 나라의 운명도 어쩌면 그와 비슷한 운명을 겪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아무리 행패를 부려도 나라가 끄떡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은 분명 어린 시절 부모에게 어떤 행패를 부려도 다 용인해주는 한국의 가정교육풍토에서 자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숭례문이 610년이나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불가사의한 현상이라고나 할까. 친북좌파 정권 10년에 그래도 나라가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오직 국민의 성숙한 나라사랑 덕분인 것 같다. 숭례문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문화재청도 이 기회에 손을 좀 봐야 하지 않을까?

    <객원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뉴데일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