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학규 대통합민주신당(통합신당) 대표는 애써 여유를 보였고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몸을 낮추고 말을 아끼면서도 짧은 발언을 통해 불편한 심기를 우회적으로 표출했다. 정 전 장관은 표정이 어두웠다.

    대선 참패 뒤 손 대표와 정 전 장관이 처음 만났다. 5일 아침 서울 여의도 한 호텔식당에서다. 당 쇄신이란 명분을 갖고 정 전 장관의 흔적을 지우고 있는 손 대표, 그런 손 대표에게 불만을 표출한 뒤 '제3지대 신당설'을 모락모락 피우던 정 전 장관은 일단 한 발 물러섰다. 4·9 총선을 코앞에 두고 양측 모두 분열이 마이너스가 될 것이란 공감대가 형성된 것인데 차기 대선이란 장기 레이스에서 경쟁해야 하는 만큼 두 사람의 협력적 관계가 오래 지속되긴 힘들 것이란 전망이 높다.

    취재진에 공개된 15분여간 대화에서 두 사람은 한 목소리로 '변화'와 '쇄신'을 강조하면서도 온도차를 나타냈고 길지 않은 대화 속에 신경전도 오갔다. 먼저 도착한 손 대표는 뒤늦게 온 정 전 장관에게 웃으며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라고 반기면서도 의아하다는 듯 "얼굴이 좋으신데요"하고 물었다. 대선 참패 뒤 자신의 측근들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고 '제3지대 신당창당'까지 머리 속에 그려야 했던 정 전 장관이 마음 편할 리는 없다. 3일 지지자들과의 산행에서는 눈물까지 흘린 정 전 장관이다.

    손 대표의 이런 인사말에 정 전 장관은 멋쩍다는 표정을 보였고 손 대표는 곧바로 "고생 많았죠. 마음고생 많이 하시고…"라고 말했다. 그러자 정 전 장관이 "(얼굴) 좋으신데요"라고 되물었다. 손 대표도 좋을 리 없는 상황이다. 자신의 취임 뒤에도 당 지지율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고 계획했던 민주당과의 통합도 진통을 겪고 있으며 새로 들어설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도 쉽지 않은 형국이다. 더구나 당 내부에선 공천을 두고 정 전 장관 측의 견제가 점차 심화되고 있다. 손 대표는 바로 "내가 좋을 리 없죠"라고 받아치고는 "정 의장은 워낙 미남이라…"라며 농을 던졌다.

    두 사람 모두 '변화' '쇄신' 희생' 등의 단어를 사용했지만 온도차를 보였다. 손 대표가 "팔자에도 없는 대표를 맡아서 반성하고 자숙할 시간도 제대로 갖지 못했다"고 하자 정 전 장관은 "김구 선생께서 독립된 나라에서 문지기라도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씀 했는데 나도 그런 생각"이라고 받았다. 정 전 장관은 당 복귀를 밝히면서 일정한 역할을 맡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정 전 장관은 배석자 없이 35분간 진행된 회동에서도 "어떤 역할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문지기 역할이라도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우상호 대변인은 전했다. 당내에서는 두 사람의 수도권 '동반 출격'이 거론되고 있다. 손 대표는 서울 중구, 정 전 장관은 종로구 출마설이 돌고 있는데 우 대변인은 이날 만남에서 총선 역할과 거취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담 초반 정 전 장관이 "댁이 어디죠"라고 묻자 손 대표는 자연스레 "신당동으로 이사하니까 중구에 출마하느냐고 하더라"며 거취문제를 꺼내기도 했다.

    우 대변인은 이날 회동에 대해 "두 분 관계가 악화됐다는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키고 단합과 화합을 보여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화합과 단합을 위한 정 전 장관의 구체적인 역할이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분열의 불씨는 남겨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