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 '특파원 칼럼'에 이 신문 이하원 워싱턴 특파원이 쓴 '부시와 찍은 사진 이젠 잊어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조지 W 부시(Bush) 미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정몽준 특사를 면담한 22일은 특히 바쁜 날이었다. 막 중동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부시 대통령의 책상엔 결재 문서가 쌓여 있었다. 무엇보다 24일 미 의회와 함께 발표할 1500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점검하기 위한 대책 회의가 줄줄이 잡혀 있었다.

    정 특사 측은 이런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이 당선자의 친서를 전하고 사진이라도 한 장 찍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부시 대통령은 20분 동안 시간을 냈다. 정 특사와 함께 부시 대통령을 만난 한승주 전 외무부장관은 "부시 대통령과 이렇게 오래 정감 있는 대화를 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미국은 외교적 계산이 분명하고 빠른 나라다. 벌써 100년 넘게 '세계 경영'을 하고 있는 미국은 각국의 정권을 어떻게 다루어야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런 미국의 대통령이 단순히 이명박 신정부 출범을 환영하기 위해 그의 특사를 환대했다고만 해석하면 순진한 것이다. 그 배경엔 동맹강화와 함께 정치적인 반대급부를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

    부시 행정부는 노무현 정권과의 불협화음(不協和音) 때문에 자신들이 추진 중인 미사일 방어 시스템(MD) 구축은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또 주한미군을 들락날락하게 하는 전략적 유연성, 테러관련 물자 운송에 대처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등에 대한 한국의 입장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미국은 가능한 한 빨리 이명박 정부와의 신뢰관계를 만들어야 2012년 전시작전 통제권 이양 합의는 그대로 지키면서 다른 동맹 현안에 대한 논의에 착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 행정부가 지난달 19일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회의를 열어 가능한 한 이른 시기에 한미정상회담을 개최키로 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국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들은 우리에겐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MD 구축은 북한의 반발은 물론 엄청난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 PSI와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다시 제기될 경우 북한과 중국을 자극하고 반미감정의 구실을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이명박 정부는 다음 달 출범 후 조만간 제기될 이런 껄끄러운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우리의 이익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한미동맹을 격상시키면서도 우리의 이익을 배가시켜야 하는 전략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현재 서로 좋은 말만 오고 가는 이명박 정부와 부시 행정부의 신혼기는 곧 끝나게 돼 있다. 임기가 1년도 채 남아 있지 않고 여전히 이라크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은 마음이 급하다. 뭔가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유혹을 많이 느낄 때다. 이럴 때 국제정치의 오랜 연구주제인 '동맹과 자주의 딜레마'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필연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의 관계에만 매달릴 경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국익이 손실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정몽준 특사가 이명박 당선자를 대신해서 부시 대통령과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은 이제 잊어버려야 한다. 축배는 이 정도에서 그치고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우리의 이익을 최대한 증진시킬 대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