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17일 국회를 찾아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표와 만나 정부조직법 개편안 처리 등 국정 전반에 협조를 당부했다. 이 당선자는 "(경제살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데) 여야가 같은 생각을 갖는 것이 이 시대에 맞는 길"이라며 "여야없이 협력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 당선자와 손 대표의 만남은 한나라당 경선을 앞둔 지난해 3월 당내 기반 마련에 고전하던 손 대표가 탈당한 이후 처음 마련된 자리. 한 지붕에서 갈라진 뒤 10여개월 지난 시점에서 한 사람은 대통령 당선자로서, 또 한 사람은 예비야당의 대표로서 마주하게 됐다. 당시 손 대표의 탈당설이 불거질 즈음, 이 당선자는 "여기(한나라당)도 시베리아고, 나가도 한(추운) 데 인데…"라고 했고, 보름이 지난 3월 19일 손 대표는 "이제 시베리아를 넘어간다"며 탈당을 선언하고 독자세력화에 나섰다. 이후 손 대표는 장외에서 이 당선자 대표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구상 비판에 앞장서왔고, 결국 신당에 입당했지만 경선을 통과하지 못한 채 정동영씨에게 대선 후보자리를 내줬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만난 이 당선자와 손 대표는 반갑게 맞으며 서로 축하인사를 건넸다. 손 대표는 예정된 면담시각 10분 전에 대표실에 도착해 우상호 대변인과 만남을 준비했고 이 당선자는 정시에 맞춰 임태희 비서실장, 주호영 대변인과 함께 밝은 표정으로 면담장에 들어섰다.

    현재 위치를 떠나 두 사람의 '인간적' 거리는 격의없는 대화에서 나타났다. 과거 서로 '형님, 아우'로 부를 만큼 가까왔던 두 사람은 대화 중간중간 두 손을 맞잡으며 교감을 나눴다. 전체적으로 원만한 분위기를 이어갔지만 전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최종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한 대화가 나올 때는 약간의 신경전이 펼쳐졌다.

    이 당선자는 먼저 손 대표와 민생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만들기에 대한 의견을 나눈 뒤 "그 점에서 여야가 다르다는 게 이상하다. 나는 같은 생각을 갖는 게 이 시대에 맞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손 대표도 "대표에 취임하면서 경제건설, 일자리에 관한 한 여야가 없다.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협조를 다짐했다.

    손 대표의 이같은 의사표현에 이 당선자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 내는 게 아닌가 기대한다"고 만족감을 나타낸 뒤 "여야가 같이, 여야없이 협력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손 대표가 "정부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국민 의사에 반하는 것도 있다"고 말하자 이 당선자는 "그 때는 지적해야한다. 그 지적은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서 "그런 것(지적)은 받아야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좋은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공감했다. 손 대표는 "가장 협조적인 야당이 될 거고, 동시에 단호한 야당에 되겠다"면서 이 당선자의 손을 잡으며 "그러니까 너무 심하게 대립하지 않도록 하자"고 말했고, 이 당선자는 웃음으로 답했다.

    이 당선자는 "손 대표가 하는 길을 아니까…"라며 친근감을 표하면서 "나도 다르게 하는 것이 있겠나. 바르게 하자는 것이다.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손 대표의 "내가 야당이 됐다"는 말에 이 당선자는 "아직은 아니다"고 인사치레했고, 손 대표는 "지금은 여당이 없다"고 맞받으며 가벼운 대화를 이어갔다.

    정부조직 개편안을 두고는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손 대표가 인수위가 발표한 개편안 자료를 뒤적이면서 "역사의 흐름에 반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면서 "이것 때문에 오신 게 아니냐"며 본격적인 대화를 준비하자, 이 당선자는 "손 대표가 됐을 때 그 전에 (면담) 스케줄이 있었다. 앞으로 이런 모습을 국민에게 보이는 것이 기대와 희망을 준다"고 가로막았다.

    손 대표는 "국민은 희망의 정치를 바란다. 되도록 싸우지 말고 잘 지내야한다"고 말을 받으면서도 "그러나 야당은 야당다와야한다"고 각을 고쳐 세웠고, 이 당선자는 "옛날 식이 아닌 새로운 식으로"라고 가로챘다. 손 대표도 끄덕이며 동의했다.

    외교통상부와 통일부를 통합한 것과 관련해 손 대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앞으로 (신당이) 구체적으로 면밀하게 검토하겠지만…"이라며 이견을 나타내자 이 당선자는 "(남북관계는 통일부만 전담할 것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확대해 부처끼리 다 협조해야한다"면서 "필요하면 일을 했던 (인수위) 사람을 보내 설명도 하겠다"고 말했다.

    손 대표가 각종 위원회 문제, 국무총리실 축소 등에 비판적 입장을 표하자 이 당선자는 "세부적인 설명은 나중에 하겠다"면서 "내가 볼 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손 대표는 이해할 것"이라며 여유있는 기대를 나타냈다.손 대표는 또 "내가 내건 산업화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 간다는 워딩까지 그대로 이 당선자가 빼앗아갔다"고 농담을 던지자 이 당선자는 "그러냐. 좋은 건 다 썼다"면서 "좋은 것은 여야를 떠나 해야지"라고 맞받았다. 이어 이 당선자와 손 대표는 비공개 면담을 갖고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 등 정국 현안을 놓고 논의를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