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8일 사설 '김대업의 입을 주목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대업씨가 최근 지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병풍'의 내막을 폭로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는 "2002년 대선에서 나를 의인이라 부른 (대통령) 측근들과 현 정부에서 잘 나갔던 사람들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라며 "내게 어떤 말을 했었는지, 어떻게 정권을 잡았는지, 어떤 말과 행동을 이중적으로 해왔는지, 나를 (어떻게) 속여왔는지 이제는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과거의 행동이 유별났던 사람이라 또 무슨 엉뚱한 말을 내놓을지도 모르지만, 이 희대의 정치 사기극의 숨어있던 배후들이 드러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병풍은 김씨가 2002년 대선 직전 "야당 후보측이 아들 병역 비리 은폐를 위해 대책회의를 했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된 잇단 공세를 말한다. 김씨는 야당 후보 부인이 병역 관계자에게 돈을 줬다는 내용이 담긴 녹음테이프도 공개했었다. 대선에서 야당 후보가 패한 뒤 이 두 폭로 모두가 허위이고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선거 후 여론조사에서 병풍은 유권자의 투표 방향에 결정적 영향을 줬던 것으로 나타났다. 만일 병풍이 없었더라면 노무현 후보가 당선돼 노무현 시대 5년이 열렸겠느냐고 반문해보면 이 사건의 중대성을 짐작할 수 있다. 병풍은 허위 조작으로 백을 흑으로 만들 수 있는 우리 선거판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김씨가 폭로하자 여당 전체가 나서 뒷받침하고, 검찰은 여기다 더해 수사를 지연시켜 국민이 이 사건의 진위를 모른 채 투표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전 TV 방송은 몇 달 동안 밤 9시 톱뉴스를 이 사건으로 채우다시피 했다. 이런 전방위적 공작이 예비역 의무 부사관 한 명의 힘만으로 과연 가능했겠는가. 2005년 국회에서 당시 이해찬 총리는 "필요하다면 (병풍 조작 의혹을) 과거사 조사 대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답했지만 물론 말뿐이었다.

    김씨를 변호했던 변호사는 결국 여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병풍 수사 검사는 나중에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병풍 바람에 가세했던 친여 신문 주필은 KBS 사장이 됐다. 이들은 병풍 주역들 중 겉으로 드러난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김씨는 이메일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386 측근들과 '현 정부에서 잘 나갔던' 사람들을 지목하고 있다.

    김씨가 갑자기 병풍 내막을 폭로하겠다고 나선 것은 마지막 특별사면에서도 자신이 제외된 데 대한 반발이라고 한다. 청와대가 법무부에 전달한 특사 검토 대상 명단엔 김씨가 들어있었으나 최종 단계에서 빠졌다. 청와대가 김씨의 입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써 본 흔적인 듯하다. 지금이라도 이 3류 조작 폭로극의 막전막후 인물의 배역을 밝은 햇빛 아래 드러내야만 추악한 정치 공작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