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선 공천문제와 관련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직접 반발하고 나선 지 수일이 지났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측은 '무시'에 가까울 정도로 대응이 없다. 다만 당 차원에서 이방호 사무총장 등이 안정된 국정인수를 이유로 한 공천 시기 조절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인적쇄신에 대해서도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고전적 원칙을 되내일 뿐이다.

    과반에 육박한 득표율에서 나타났듯이 '경제살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높은 국민적 기대를 바탕으로 새 정부 출범 준비에 충실하는 것이 명분과 실리에서 앞선다는 판단으로 비쳐진다. '계파싸움'에 뛰어들었다는 여론의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당내 갈등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당내 문제에 발목잡힐 여유가 없다는 이 당선자측의 추진 의지도 엿보인다. 구랍 29일 양자 회동 이후 박 전 대표는 "이 당선자가 공천 시기를 늦추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공천 문제를 언급했지만, 이 당선자측은 5일 "당시 중국특사단을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새 정부의 4강 외교에 중점을 뒀다. 공천 갈등과는 별도로 차기정부 국정과제라는 점에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은 박 전 대표는 중국특사 자격으로 14일께 방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천 시기에 대한 입장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지지자들 가운데 절반이 넘는 50.6%가 '새 정부 출범 이후로 늦춰야 한다'고 답한 것도 이 당선자측에 힘을 보태고 있다. 리얼미터가 4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서 새정부 출범 이전 공천해야 한다는 의견은 39.6%에 불과했다.

    유권자 절반 이상이 현재 지역구 의원이 교체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나타난 조사결과도 당 안팎의 인적쇄신론을 비판하고 있는 박 전 대표측을 압박한다. 같은날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지역구 의원이 다른 사람으로 교체를 원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무려 55.8%에 달했으며, '교체될 필요가 없다'는 쪽은 24.6%에 그쳤다. 특히 박 전 대표측 의원이 많은 대구·경북지역에서 57.8%가 교체를 희망한다는 점도 주목된다. "물갈이 주장은 수용할 수 없는 얘기"(김무성 최고위원),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 없다"(유승민 의원)는 등 박 전 대표측의 반발을 무색케하는 여론조사 결과다.

    또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박 전 대표의 언급 이후 김무성 유승민 김재원 의원 등 친박계열 의원들은 파상공세를 벌이고 있지만 명분마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미 반한나라당 의석이 국회 과반수를 넘기 때문에 2월 임시국회에서 공천탈락자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이해가 가지않는다"(김무성 최고위원)며 이 당선자의 발언에 반박하지만, 한나라당과 이 당선자측으로서는 정부조직법 개정과 각료 인사청문회를 원활히 처리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강재섭 대표가 "총선은 그 시기가 지극히 전략적이고 현실정치를 반영하는 것이므로 정치 일정에 따라 (공천시기는) 빨라지거나 늦춰질 수 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강 대표는 더 나아가 "정치개혁특위가 선거구 획정을 위한 합의를 해야한다. 어떤 지역구는 인구가 늘고 줄고 하는 것이 가닥이 잡혀야 공천 신청을 받을 수 있다"며 2월 국회 이후에야 공천이 가능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달 중순 총선기획단을 꾸리고 향후 일정을 마련할 이방호 사무총장은 "공천을 둘러싼 갈등은 이 때쯤 되면 항상 있는 것"이라며 "신경쓰지 않고 계획한 로드맵대로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의 '복심' 정두언 의원 역시 "공천 때가 되면 으레 시끄럽다"면서 "심각하게 다룰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정 의원은 "조용하게 공천하는 것 봤느냐"며 반문하면서 박 전 대표측에 "피해의식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일축했다. 주호영 당선자 대변인은 "우리 입장은 일관된 것이다. 강재섭 대표가 한 말이 정답"이라고 코멘트했다. 약간의 잡음이 발생하더라도 당 지도부가 정치 일정에 맞게 공천 문제를 끌고 나가야 한다는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