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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실천이다". 이명박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선이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와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실적과 실천력을 중시하는 이 당선자와, 과정과 '말'로 대표되는 토론을 좋아하는 노 대통령의 스타일이 인수위 인선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지적이다.
이 당선자는 학자인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을 인수위원장에, 4선의 김형오 의원을 부위원장에 각각 임명하면서 '학자-정치인' 구도를 갖춰 노 당선자 당시 임채정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위원장에,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를 내세운 '정치인-관료' 모양새와 달랐다.
이 당선자는 또 3선의 맹형규 총괄간사를 비롯해 7개 위원회 간사 자리를 대부분 정책전문가형 정치인에게 맡겼다. 좌파 성향으로 분류되는 학자 출신 인사들을 대거 기용했던 노 대통령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다. 기획조정분과위 간사에는 박형준 의원, 정무분과위 진수희 의원, 행정분과위 김상희 전 법무차관, 경제 1분과위 강만수 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경제 2분과에 당 경제통 최경환 의원, 사회교육문화분과위 이주호 의원이 각각 중용된다. 외교통일안보분과위원회는 박진 의원으로 낙점될 전망이 유력하다. 당초 정무분과를 맡을 것으로 예측됐던 '복심' 정두언 의원은 당선자 보좌역으로 지근 거리에서 활약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아마추어 정부'란 비판을 받았던 노 대통령은 정무분과위 기획조정분과위 이병완 민주당 정책위 상임부위원장, 정무분과위 김병준 국민대 교수, 경제 1분과위 이정우 경북대 교수, 경제 2분과위 김대환 인하대 교수, 통일외교안보분과위 윤영관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사회문화여성분과위 권기홍 영남대 교수, 국민참여센터 본부장 이종오 계명대 교수로 7개 분과를 채웠다.
노 대통령의 인수위가 '말'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점도 다시 거론된다. 김병준 간사는 "정당명부제나 중대선거구제 등 정치제도를 검토할 것"이라며 인수위에 정치개혁 연구실을 설치한다고 '호들갑'을 떨다가 입법부와 마찰을 빚었다. "당과 별도로 인수위에 정치개혁 관련 입법을 다룰 소위를 두라"는 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또 기획조정분과위원으로 참여한 성경륭 한림대 교수는 "개혁 엘리트 1만명 양성"을 주장해 논란을 불러왔다.
또 노 대통령은 지난 2002년 12월 3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15개 언론사에 부과한 과징금 처분을 취소한 경위를 파악하라고 직접 인수위에 지시해 파문을 일으켰다. 논란이 일자 인수위는 당일 공정거래위원장으로부터 경위를 전해 들은 뒤 "더 문제삼지 않겠다"고 했다가, 이후 이 사실로 인해 노 대통령에게 질책당한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대기업의 구조조정본부 폐지도 인수위에서 거론되면서 파장을 일으켰다. 결국 인수위는 출범 나흘만인 2003년 1월 3일 언론의 인수위원 개별접촉 취재를 불허하고 나섰다.
이 당선자는 7개 분과 외에 5개 태스크포스(TF)로 구성된 국제경쟁력강화특위를 설치해 정권 초 즉각적인 공약 실행을 위한 토대마련에 나섰다.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이 위원장으로 유력하며 정부혁신 및 규제개혁TF는 박재완 의원, 외국인 투자유치TF 윌리엄 라이벡 금융감독원 특별고문, 한반도대운하TF는 박승환 의원 또는 장석효 전 서울시 행정부시장이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 및 에너지대책TF과 새만금TF, 과학비즈니스벨트TF도 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이같이 이 당선자가 '실천'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점은 노 대통령 당시 국민참여센터와 비교된다. 노 대통령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 인수위에 설치된 국민참여센터는 이종오 계명대 교수가 본부장을 맡았으며, 당시 당선자 홈페이지 등을 통해 국민과 곧바로 소통하겠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 당선자와 노 대통령은 당선 직후 보인 행보에서도 구분된다. 이 당선자는 곧바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주한 대사를 만나 4강외교를 다졌으며 한나라당 내 당권대권 분리 논란에 대해서도 "인수위도 준비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국민이 실망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 당선자는 강재섭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당과 청와대가 협력하는 게 필요하다"며 청와대 정무기능 강화, 당청회동 정례화 등에 뜻을 모았다. 당청정의 유기적 관계를 통한 효율적 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다.
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사진 찍으려고 미국에 가지 않겠다"고 큰소리친 점이나, 당선 후 당정 분리를 강하게 주장하면서 당시 민주당에 '개혁 가이드'를 제시한 후 '독자적'으로 청와대 운영을 해온 것과는 사뭇 다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