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합민주신당(통합신당)은 22일 최고위원-상임고문단 회의를 열었으나 이날 역시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너무 엄청나서 책임을 어떻게 져야할 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책임질 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김근태 의원의 고민처럼 당 수습 방안을 마련하는 일은 쉽지 않은 분위기다.

    대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 사의를 밝힌 오충일 대표는 당 지도부의 만류로 결국 당무에 복귀해 이날 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회의에는 오 대표를 비롯, 김원기 김근태 김덕규 이용희 정대철 등 당 상임고문들은 물론 김효석 원내대표와 당 최고위원들이 모두 참석했다. 회의는 오 대표의 대표직 사의 번복 관련 입장 발표만을 공개한 채 곧바로 비공개로 돌렸다.

    오 대표가 김원기 의원에게 마이크를 넘겼으나 김 의원은 손사래를 치며 "우리끼리 얘기할 시간을 갖자"고 했고 이후 90여분 이상 비공개로 회의를 진행했다. 논의의 가장 큰 쟁점은 '새 얼굴'을 어떻게 선출하고, 누구를 내세워야 대선 완패 후유증을 최소화 하며 내년 4월 있을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지다.

    하지만 대선 패배 뒤 곧바로 '친노그룹 2선 후퇴론'과 '노무현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당내 각 계파간 앙금이 쌓이고 있어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날 2시간가량 회의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했고 오는 24일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열어 의견수렴을 계속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는 현 지도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는 구조 탓이다. 현 지도부는 각 계파 별로 안배한 비상대책위다. 때문에 지도부의 권한이 크지 않고 당을 이끌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도 "즉흥적으로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계획된 결론을 내릴 경우 오히려 (당이) 더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일단 최대한 의원들과 당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당의 진로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이는 각 계파간 입장차가 크기 때문이다. 현재 통합신당을 움직이는 그룹은 크게 6계파다.

    정동영 후보 그룹과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친노그룹,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측, 김근태 의원의 재야그룹, 문희상 의원 등의 중진그룹과 시민사회 출신 및 민주당 탈당파다. 그러나 이들 간 당의 진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다르다. 문제는 이런 이견차를 조정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현 지도부가 1월 선출한 당의 새 얼굴을 경선없이 합의추대로 하고자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 세력이 당권경쟁을 할 경우 당내 갈등은 걷잡을 수 없고 최악의 경우 당이 분열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당내에는 이번 기회를 통해 당 이미지를 확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않다. '친노그룹 2선 후퇴론'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도 이미경 최고위원은 당 이미지 재고를 언급하며 "이제 (국민들은) 개혁이란 말도 싫어한다"고 했다. 개혁을 주장했던 노무현 정권과는 결별해야 한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하는 발언이다.

    어떻게든 당에서 노무현 색채를 최대한 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이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친노진영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전 총리는 21일 대선 이후 처음 열린 지도부 회의에도 불참했다. 대신 20일 저녁 친노그룹 의원들을 모아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친노그룹 2선 후퇴'주장에 친노그룹 역시 맞대응 할 태세다.

    때문에 이날 비공개 회의에서는 일단 상대진영을 자극하는 발언을 삼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김원기 의원은 "이대로 가면 어느 특정지역 말고는 어렵다"면서 "하고 싶은 소리 다 하고 당이 흩어지면 (총선에서 국민들이) '이제 이 사람들 찍어줘야 겠다'는 마음이 생기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로 상처내고 당을 깨는 발언을 자제하면서 새 얼굴은 정치적으로 선택하면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며 합의추대에 무게를 실었다.

    좀 더 강경한 발언도 쏟아졌다. 당 수습을 저해하는 의원에 대해서는 출당을 시키자는 주장인데 한 최고위원은 비공개 회의에서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은 비워내자. 그 사람 하나 끌어안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 막말하는 사람은 윤리위원회에 회부해서 쳐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미경 최고위원 역시 "한 마디를 해도 조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