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에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쓴 칼럼<‘얼룩소’에 관한 명상>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D-22 대선은 급기야 미궁에 빠졌다. 박정희 시대 이후 체육관선거를 비롯해 3김이 맞붙은 대선까지 수차례 선거를 치러 봤지만 이렇게 지독한 혼란은 처음이다. ‘지독한 혼란’, 그래, 이렇게밖에 묘사할 수 없는 정치현실을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다. 계체량을 통과한 선수들이 링 위에 오르긴 했는데 홍코너에 급히 모인 선수들 중 누가 싸울 것인지 미정이고, 청코너에 일찌감치 대기하던 선수는 자격 시비에 휘말렸다. 부정선수라는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청코너에 선수가 하나 더 등장했다. 대체 누가 선수인가?

    권투시합이라면 싱겁게 끝날 게임이었다. 헤비급 선수가 휘두를 한 방에 경량급 선수는 추풍낙엽처럼 나뒹굴었을 테니까. 그런데 경량급 선수들이 제기한 부정시비에 꽁꽁 묶여 잽 한 방도 날릴 수 없는 형편이다. 되레 공이 울리기 전에 난타를 당하고 있다. 뭐가 공정한 것인지 헷갈린다. 그 거미줄 같은 BBK의 내막도 그러려니와 그걸 촉발시킨 저의도 그리 흔쾌해 보이지 않는다. 의문은 꼬리를 문다. 그가 주가조작 사기사건의 주모자였다면, 서울시장은 왜 하도록 내버려두었을까? 금융감독원도 조사했고, 미국 법원도 판결을 내렸다고 하는데 새삼 이 문제가 원점으로 돌아간 배후는 무엇인가? 수십 박스 서류 더미에서 검찰이 새로운 단서를 발견한다면 그 뇌관을 과연 터뜨릴 것인가? 유권자들은 망연자실하다.

    심판은 사라졌고, 게임진행은 뒤죽박죽이다. 대선혐오증은 이런 혼선 탓에 더 증폭된다. 2007년의 표심은 ‘누가 피곤한 우리를 위로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저절로 진화하는, 유권자들이 손도 못 댈 만큼 자동 변형하는 저 괴물 같은 대선판에 어떻게 한 표를 던질 수 있는가. 물고 뜯어 지지율 높이려는 후진국 행태만은 일단 중단할 수 없을까. 차라리 100년 전 안국선이 썼던 『금수회의록』이 다소간 위로를 준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안국선은 이 신소설에서 온갖 짐승과 곤충을 등장시켜 인간을 나무란다. ‘입에는 꿀, 배에는 침을 숨긴 흉측한 놈’이라고 비난받아온 벌이 억울한 듯 말한다. “우리의 입은 꿀만 있되, 사람의 입은 단 때도 있고, 고추같이 매운 때도 있고, 비상같이 독한 때도 있어서, 돌아서면 흉보고 악담하며 수작하다가 총이 있으면 곧 죽이려 든다.” 짐승들로부터 박수가 터져 나온다. 개구리의 판결문은 간결하다. “우리는 관가 땅이면 관가를 위해 울고, 민가 땅이면 민가를 위해 울지만, 사람은 한번 벼슬자리에 오르면 붕당을 만들어 싸우고 헐뜯는다.” 100년 후의 풍경이 이 미물들이 말한 것과 얼마나 다른가.

    기왕 우화를 들먹인 김에 혼란의 책임을 물어 후보들에게 가상의 달걀세례를 퍼부으면 어떨까 한다. 화를 삭이기로는 이게 최고인데, 눈을 감고 잡념을 없앤 다음 명상의 문을 열면 준비는 끝난다. 놀라운 것은 깨끗한 이미지를 내세운 후보일수록 달걀세례의 충격은 커진다. 일종의 대조효과다. 가령 문국현 후보에게 ‘당신은 어디서 오셨나요?’ 하고 가상의 달걀을 던진다면 그의 클린 이미지는 금세 손상된다. ‘집권여당의 실정은 누가 책임집니까?’하고 정동영 후보에게 달걀을 던진다면 그 달변의 진정성은 여지없이 망가진다. ‘재수를 하고도 교섭단체 하나 못 꾸린 주제에’라고 한다면 아마 권영길 후보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을 것이다. 이명박 후보에게 ‘당신은 왜 그리 너저분해?’라고 달걀을 던졌다면? 별로다. 별로 손상될 게 없다. 얼굴이 말끔하지 않은 탓도 있거니와 그의 원래 이미지가 ‘얼룩소’여서 더욱 그렇다. BBK가 아니라 다른 오점도 많을 거라고 이미 유권자들은 인정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점박이 얼룩소인데 달걀에 토마토·밀가루·고춧가루를 섞어 던진들 한 점 얼룩을 더 보태고 끝난다. 이게 김경준 사건의 예정된 효력처럼 보인다. 김대업 사건과는 달리 지지율이 급락하지 않은 이유도 이런 민심 탓이다.

    ‘얼룩’보다는 어쨌든 피곤한 생계를 구출해줄 선수를 고대하는 게 민심이다. ‘정의로운 대한민국’에 걸었던 환상이 깨진 상처를 ‘반부패연대’가 아니라 ‘무능권력’ ‘막무가내 정권’에 대한 혐오감으로 치유하고 싶은 것이다. 오점이 많은 후보를 그래도 붙잡고 있는 유권자들의 안쓰러운 집착을 이명박 후보가 어떻게 갈무리할 것인지, 씁쓸하지만 그것을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