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 '포럼'에 정용석 단국대 명예교수(정치학)가 쓴 칼럼 '이명박은 왜 내부세력에 휘둘려왔는가'입니다.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당 내부 세력에 의해 휘둘리고 있어 그의 지도력을 의심케 한다. 이명박 후보는 여론조사 50%대의 지지율을 확보했으면서도 당내 박근혜 전 대표의 격한 불만과 이회창 무소속 예비후보의 출마 선언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명박 후보 측의 점령군 같은 기세에 박 전 대표 진영이 항거하자, 이명박 후보 진영의 제2인자인 이재오 의원은 “반성하라” “좌시하지 않겠다”며 협박했다. 여기에 박 전 대표는 “오만의 극치”라고 맞받아쳤고, 양측은 서슬이 퍼런 적대관계로 맞섰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는 박 전 대표 측의 지지없이는 대선 승리가 어렵다는 판단에서 박 전 대표에게 머리를 숙였다.

    이명박 후보는 박 전 대표 측의 요구대로 이 의원을 당과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요직에서 사퇴시킴으로써 박 전 대표의 마음을 풀었다. 이어 이명박 후보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모두 제가 부족한 탓”이라며 박 전 대표를 “정치적 파트너, 소중한 동반자로서 함께 나아가겠다”고 약속했다. 박 전 대표 사람들을 대선 운동중 기용하고, 내년 4월 총선 후보 공천에서도 독식하지 않겠다는 시사였다. 박 전 대표는 12일 이명박 후보 지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재확인해주며 이회창 후보의 출마를 “정도(正道)가 아니다”고 비판, 화답했다.

    이명박 후보와 박 전 대표와의 갈등은 권력 안배를 둘러싼 밥그릇 싸움이다. 이명박 후보 측은 당내 경선에서 승리했으므로 당 요직 독식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박 전 대표 측은 1.5% 차이로 석패한 자신들을 ‘죄인’ 취급해서는 안된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두 파벌 간의 밥그릇 싸움은 이명박 후보의 양보로 일단 봉합됐다.

    하지만 이회창 후보의 탈당과 대선 출마는 이명박 후보의 모호한 보수 노선에 대한 이념적 반발을 내세우면서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비판 받아왔다. 이회창 후보는 자신이 출마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이유로 ‘법과 원칙 존중’ ‘햇볕정책 거부’ ‘기회주의 배격’ 등을 들고 나섰다. 특히 그는 “이명박 후보나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이 매우 모호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실상 이명박 후보는 그동안 ‘실용’ 운운하며 한나라당 후보로서 지켜야 할 정통 보수노선을 일탈했다. 심지어 그는 “한나라당 색깔…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정통 보수 노선을 정체불명의 ‘실용’으로 세탁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득표만을 의식한 기회주의적 자세가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이 ‘실용’에 세탁돼 정통 보수성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1948년 건국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면서 면면이 이어져온 정통 보수는 실종되고 만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회창 후보의 대선 출마는 정통 보수의 깃발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회창 후보에 대한 24%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그것을 보여준다.

    이명박 후보는 박 전 대표를 뒤늦게나마 끌어안은 것처럼 확실한 정통 보수 노선을 수용함으로써 이회창 후보 또한 포용해야 한다. 만약 이명박 후보가 이회창 후보의 정통 보수 노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이번 대선은 이명박 후보의 ‘모호’한 보수와 이회창 후보의 확실한 정통 보수 세력으로 나뉘어 대결할 수밖에 없다. 내년 4월 총선도 그런 구도로 분열될 게 뻔하다. 보수 세력의 분열이고 갈등이며 자해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 후보 측은 이회창 후보의 출마를 “정권교체 훼방꾼”이라고만 폄훼할 게 아니라 자신들이 얼마나 정통 보수를 훼손했는지를 반성하며 이회창 후보를 포용해야 한다. 그것이 보수 정당으로서 한나라당이 살고 대선에서 이기는 길임을 덧붙여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