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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2일자 오피니언면 '동서남북'에 이 신문 박두식 정치부 차장대우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선까지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대선 판을 지배하는 것은 네거티브의 유령이다. 후보·정당을 가릴 것 없이 입만 열면 상대편에 대한 비방·음해가 난무하고 있다. 자신의 상품을 선전해서 득점하기보다는 상대편 깎아내리기로 승부를 보겠다고 작심한 듯하다.
물론 네거티브는 선거 캠페인의 기본 요소 중 하나다. 가장 효과적인 선거 기법이기도 하다. 선거의 역사는 네거티브의 역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세계 최초로 대통령제를 도입한 미국의 예를 보면 이미 3대 대통령을 뽑는 1800년 선거부터 네거티브가 난무했다. 존 애덤스와 토머스 제퍼슨의 대결에서 양측은 “제퍼슨이 당선되면 살인, 강도, 강간, 근친상간이 공개적으로 행해질 것이며 땅은 피로 물들고…”, “애덤스가 왕정복귀를 꿈꾸며, 국민을 노예 상태로 몰아가려 한다”는 식의 공방을 벌였다.
이후 200년 동안 미국에선 대선이 끝날 때마다 “가장 추악한 선거였다”는 자성(自省)이 빠짐없이 등장하곤 했다. 그러나 새로운 선거전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네거티브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상대방을 낙인 찍고, 음해·비방하는 네거티브의 유혹은 그만큼 끈질기고 강렬한 것이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우리의 올해 대선도 ‘진흙탕 싸움’이란 평가를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어쩌면 역대 최고 수준의 네거티브 선거전이 될지도 모른다.
올해의 대선 본선은 평소보다 출발이 많이 늦었다. 대선에 나서는 범여권의 진용이 갖춰진 게 불과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출발 총성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선거전은 곧바로 네거티브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요즘 국회 기자 회견장은 상대 후보 공격을 위해 마이크를 잡으려는 각 당, 각 후보 진영의 공격수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국정 감사장은 욕설과 고함, 몸싸움의 경연장이다. 상대 후보의 과거 파헤치기에서부터 친·인척 관련 의혹까지 각종 폭로전이 펼쳐지고 있다. 상당한 증빙 자료를 갖춘 주장도 있지만, 일단 ‘터뜨리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한 것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전투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번 대선은 한나라당의 일방적 우위로 기울어진 선거 구도 때문에 더욱 네거티브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짧은 시간 안에 반전의 계기를 찾으려는 범여권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이 네거티브이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범여권은 “이명박 후보는 한 방이면 간다”는 말을 해 왔다.
‘큰 것 한방이 무엇이냐’를 놓고 범여권 내부에서도 여러 얘기가 있다. “뭔가 있다”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것은 없다”며 고개를 젓는 사람도 있다. 또 큰 것 한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다. 분명한 것은 50%대의 고공 비행을 하고 있는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꺾일 때까지 범여권은 손에 잡히는 대로 총 공세를 펼 것이란 사실이다. 한나라당도 앉아서 당할 이유가 없다. 2002년 대선을 네거티브 때문에 졌다고 보는 한나라당이기에 철저히 ‘이에는 이’ 하는 식으로 맞서고 있다. 마치 네거티브의 가속 페달을 밟는 일만 남은 듯한 상황이다.
금융 사기범 한 사람의 귀국을 놓고 한나라당과 범여권이 벌이는 공방은 진흙탕 싸움의 백미(白眉)이다. 범여권은 그를 구세주인 양 기다리고 있고, 한나라당은 전전긍긍하는 눈치다. 앞으로 5년간 나라를 이끌 대통령을 뽑는 선거의 운명이, 한·미 양국에서 형사 소추의 대상이 된 사람의 입에 달려 있다면 이보다 더한 코미디는 없을 듯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