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잏보 22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대중 고문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사실상 임기를 두 달 남긴 대통령이 남은 기간 무슨 일을 저지를지 불안하다. 그는 레임덕에 눌러앉을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끗발’을 자랑(?)하는 정치인이다. 평양에 갔다 와서 쏟아내고 있는 말들과 드러내고 있는 행동들은 그가 대북문제, 한국의 안보문제에 대해 더 이상 숨길 것도, 거리낄 것도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 나라 대통령인지 헷갈린다. 드디어는 누구대로 가면 “나라가 망한다”는 극언을 입에 담았다. 그것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기 나라를 향해 할 소리인가?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실망했고 식상했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할 만큼 했고 비판할 만큼 했다. 때로는 설득하려고 했고 좋은 의미에서 충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모든 것을 악의적으로 간주했고 자신을 비난하는 모든 요소를 적(敵)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는 식으로 마음의 문을 걸어 잠갔다.

    일부 사람들은 노 대통령에 더 이상 신경쓸 것 없다고 했다. 이제 2개월 남았는데 떠들어 봐야 거기서 거기라고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는 퇴임 며칠을 앞두고도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결코 상식적으로 판단할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이 자신에 무관심하면 할수록 자신의 존재를 확인이라도 시킬 셈인 양 행동하고 있다.

    문제는 그의 북한에 관한 정책과 대북 행보다. 다른 것은 다음 정권에서 수정이나 복원이 가능 할 수 있지만 우리의 미래가 걸린 안보, 국방, 대미, 대북에 관한 문제는 그가 일단 저지르고 나면 지대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들이다. 그가 이런 중대한 문제에 ‘대못질’을 하는 경우 우리는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핵 폐기 불가론, 종전선언과 관련된 3~4자 회담, 경협의 역순(逆順), NLL 양보, 개혁·개방의 포기 등은 더 이상 방관하거나 방치할 수 없는 사안들이다. 청와대는 내일 방북 수행 기업 총수들을 불러 대북지원과 경협의 ‘선물’을 강요하다시피 할 모양인데 이것도 심각한 ‘대못질’이다.

    이것을 막을 방도는 없는 것일까? 법을 안다는 노무현씨가 검토 끝에 ‘임기 마지막 날 끊은 어음이라도 후임 사람이 존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가 끊은 어음을 부도 낼 방도가 전혀 없다는 말인가? 많은 선인(先人)들이 가르치고 많은 학자, 전문가들이 지적한 ‘정치 도의’니 ‘레임덕의 상식’이니 하는 말들은 집어치우자. 그런 말이 그에게 통했다면 그는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허(虛)를 찌르는 것을 쾌감으로 여기는 사람이기에 상식적인 예측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앉아 있을 수 없다. 일부에서는 탄핵을 거론하지만 그것을 밟을 시간도 없고 국회의 여건이 그런 극단적인 방법에 의존할 상황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역(逆)발상의 게임을 즐기는 노 대통령이 바라는 일일 것이다. 현재의 여건으로는 그것을 막는 길은 국회에 있다. 여야가 의견을 모아 결의안을 내는 것이다. 지금 노 정권이 밀어붙이는 대북, 안보, 경협의 당·부당을 논(論)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의 문제 전부를 다음 정권, 다음 대통령이 다루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금 노 대통령이 추진하는 문제들은 화급을 요하는 사항도 아니고 또 실현 방법의 구체성에서 많은 미비점을 지니고 있는 만큼 다음 정권이 추진하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사리에 맞는다. 여권의 단일화된 후보가 당선된다면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도 있고 새 대통령의 이념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좋은 기회’를 굳이 끈 다 떨어져 가는 ‘구(舊)대통령’에게 양보할 이유가 없다. 야당이 집권하는 경우 더더욱 재고의 여지가 있는 사안들이다. 여기에 여야 후보가 모처럼 합의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것이다. 여야 후보가 합의할 수 있다면 국회 의사로 남북공동선언의 구체화를 차기 정권에 넘기는 결의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유권자는 오는 12월과 내년 4월에 그 결과를 심판하면 될 것이다.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지금 남북문제의 기본 틀을 다루는 일을 임기 말 대통령의 업적주의나 포퓰리즘의 제물로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