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말 한마디’가 당내 묘한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박 전 대표는 15일 ‘이명박 체제’ 이후 단행된 당 사무처 당직자 인사의 ‘편파성’을 지적하며 “나를 도운 사람들이 죄인이냐”고 불만을 표출했다. 당내 현안에 대한 언급을 가급적 피해 왔던 박 전 대표가 기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직접 이명박 대선후보의 당 운영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 후보 측을 향한 박 전 대표의 불만이 표출된 시기도 묘했다. 이날 박 전 대표의 발언이 있기 전까지 한나라당 내에서는 ‘친이 vs 친박’이 부딪치는 상황이 이어졌다. 오후 2시 국회에서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토론 형식으로 열린 의원총회에서 친박인 유승민 의원은 ‘당론 채택 무기명 표결’을 제안해 친이 의원들의 반발을 샀다. 또 대운하 사업의 타당성 여부를 두고 경선 과정에서 벌어졌던 논쟁이 재연됐다.

    앞서 이 후보는 오전 8시 여의도 당사에서 첫 중앙선거대책위원회와 시도선대위 회의를 주재하면서 “과거 경선 과정에서 서로 갈라져 있던 것들이 16개 시도 선거대책을 세우는데 어떤 지장을 줘서는 안된다. 문제가 있다면 개인 욕망‧야망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친박 진영에 대한 ‘경고’ 차원으로 받아들여졌다.

    박 전 대표 측은 당직 인사에 대한 편파성을 지적한 박 전 대표의 발언이 당 대표를 지냈던 사람으로서 사무처 당직 인사의 부당성을 지적한 수준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이날 하루 동안 ‘친박을 향한 이 후보의 경고→친박의 대운하 공격→이 후보를 향한 박 전 대표의 불만 표출’ 순으로 ‘치고 받는’ 모습이 연출된 것과 맞물려 ‘사무처 당직 인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 후보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표현한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왔다.

    이명박 체제가 시작되면서부터 당직 인사를 둘러싼 ‘친박 배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달 7일 경선 이후 처음 가진 ‘이명박-박근혜 회동’에서도 박 전 대표는 “당협위원장 문제, 당 노선이나 운영 이런 것들이 기사화 많이 됐다”며 “이 후보가 잘 알아서 하리라 믿는다”고 이 후보의 당 운영 방식에 대해 우회적으로 지적했었다. 이 후보의 당 운영 방식에 대한 친박 진영의 비판적인 시선도 여전하다.

    한 친박 의원은 16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당의 화합이라는 게 불만을 얘기하지 말라는 건 아니지 않느냐. 여유 있는 사람들만 불만을 얘기하고 약자는 가만히 있어야 당이 화합되는 것이냐”고 말했다. 그는 “대운하도 국민 여론을 따라야 한다. 당 지도부가 의총까지 연 것은 대운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 아니냐”며 “정책에 대해 투표한 적은 얼마든지 있었다. 의견을 들어봐야 하지 않나. 왜 말도 못하게 하느냐”고 비판했다. 또 다른 의원은 “지금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기자들 전화도 못 받고 있다. 전화를 받으면 거짓말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경선이 끝나고 중앙선대위까지 출범한 상황에서 ‘당 화합을 해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친박 진영이 이 후보 측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며 당직 인사 등을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은 ‘현장 투표에서는 이기고 가중치가 있는 여론조사에 졌다’는 경선 결과가 한몫 했다는 분석도 있다. 박 전 대표 캠프에서 일했던 한 의원은 ‘친박 진영 탈당설’에 대해 “우리가 주인인데 왜 나가느냐”고 했다. 경선 결과 당심(黨心)은 박 전 대표에게 있었다는 점을 상기시킨 것이다.

    따라서 이날 박 전 대표의 “나를 도운 사람들이 죄인이냐”는 발언은 친박 진영의 이 같은 기류를 직접 대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한 박 전 대표는 이 후보의 ‘경고’를 몇 시간 뒤 바로 되받아치는 모습을 보이며 ‘선출직 최고위원직 교통정리’에 이어 또 한 번 자신의 건재함까지 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