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5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김두우 논설위원이 쓴 '정동영 죽이기, 문국현 띄우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요즘 한나라당 지지자들로부터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테러 가능성은 없나요” “대선 막바지에 여권에서 이명박 후보의 결정적 비리를 폭로한다는 설이 있던데요” “제3의 범여권 후보가 나온다던데요”라는 세 가지다. 가능성만으로 따지자면 ‘이 후보 위해설(危害說)’이 가장 낮다. 현행법상으로는 유력 야당 후보의 유고(有故)상황에서도 대선을 치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 경우 12월 19일 대선을 예정대로 강행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대통령이 선출된다 해도 정통성 시비를 벗어나기 어렵고 그 후폭풍의 강도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비리 폭로설’은 그런 대로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범여권 집권 세월이 10년이다. ‘이명박 X파일’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다만 폭로할 X파일의 파괴력이 정치공작에 대한 역풍을 뚫을 정도로 대단한 것인지가 관건이다. 범여권에서는 아직도 이 ‘한방’에 목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제3 후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요즘 범여권의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그런 낌새가 있다는 말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 경선은 처음에는 ‘이해찬 몰아주기’ 코드가 작동했다. 그래서 1차 선발을 거친 5명의 후보 가운데 친노 성향으로 분류된 한명숙·유시민 의원이 이해찬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런 ‘이벤트성 기획’은 미리 국민들의 예측을 벗어나지 못했기에 재미없는 3류 드라마로 전락했다.

    신당 경선에서 읽힌 그 다음 코드는 ‘정동영 죽이기’다. 경선 초반 손학규 후보가 1위로 나섰다면 손 후보가 공격 타깃이 됐을 것이다. 상당수의 진보·좌파 세력은 정동영과 손학규 모두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적자(嫡子)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친노 세력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정동영은 호남의 힘을 업고 우세한 조직력을 앞세워 1위로 치고 나왔다. 바로 정동영에 대한 대공세가 시작됐다. 신당 경선이 파행으로 치달은 것도, 버스떼기·박스떼기의 잘못도 몽땅 정동영의 책임으로 치부됐다. 경찰이 정 후보의 외곽조직에 대해 압수수색을 한 것도 시기적 미묘함이나 신속성으로 볼 때 균형감을 잃었다.

    이해찬이 신당의 후보가 됐다면 ‘문국현 바람’은 스쳐 지나가는 미풍처럼 가라앉고 말았을지 모른다. 이해찬이라면 친노도 진보도 수긍할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이게 실패하자 마지막으로 문국현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사실 ‘문국현 띄우기’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결정되면서 시작됐다.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는 오연호 대표가 기자로 등장, 문국현을 부각했다. 한 지상파 방송은 문국현을 범여권의 대안으로 거명했다. 최근에는 신당 경선이 흥행에 실패하자 진보 지식인과 시민단체들이 다시 문국현을 주목하고 있다. 벌써 신당 내에서는 문국현 신당으로 옮아갈 채비를 하는 의원들도 꽤 있다. 예를 들어 1단계로 5명, 2단계 10명, 3단계 20명의 신당 의원이 탈당해 문국현 지지를 선언한다면 어떨까. 그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가 현저히 높아질 것은 틀림없다.

    신당 후보는 9대 1의 경쟁을 뚫고 천신만고 끝에 후보가 됐지만 자칫 쪽박을 차는 신세로 전락할지 모른다. 문국현은 아무 경쟁 없이, 또 아무 흠집도 나지 않고 부전승으로 결승전에 올라가 신당 후보에게 단일화를 하자고 덤빌 수 있다. 그의 반(反)재벌 정책과 “이명박의 경제 성장주의 패러다임을 깰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는 주장이 노무현 정권 내내 집단우울증에 빠져 있던 좌파와 진보 세력에 일말의 희망을 갖게 했다. 문국현은 그들의 마지막 카드다.

    정치는 고정된 정물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 그래서 어떤 시나리오도 가능하지만, 역으로 어떤 기획과 음모도 뜻밖의 변수와 마주쳐 좌초되기도 한다. 문국현의 정치 역량과 과거사는 전혀 검증된 바 없다. 또 호남을 등에 업은 정동영이 이런 시나리오에 호락호락 동조할 리도 없다. 대선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